폭군 연산군의 시대에 광대 장생과 공길을 내세운 ‘왕의 남자’와 항일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별을 노래한 ‘동주’의 이준익 감독이 이번엔 조선시대 실존인물 정약전(1758~1816)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 <자산어보>로 돌아왔다. ‘자산어보’는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설경구 분)이 흑산도 앞바다, 연해에 서식하는 물고기와 해양생물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청년 창대(변요한 분)와 벗이 되어 가는 모습을 담았다.
변요한은 바다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청년 ‘창대’를 연기한다. 성리학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길이라 믿으며, 물고기를 잡는 것보다 글공부에 치중하는 청년어부다. 드라마 <미생>(2014)과 <미스터 선샤인>(2018)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변요한이 이제 창대로 마음을 잡을 예정이다.
● 흑백의 세상, 자산어보
- 이준익 감독이 <동주> 이후 다시 흑백으로 영화를 찍었다. 흑백의 세상으로 들어간 소감은.
변요한: “감독님이 흑백으로 찍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주>도 물론 봤고. 배우로서 궁금증이 있었다. 이렇게 직접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었다. 첫 촬영을 하고 모니터를 보면서 생소했다. 색채감이 없으니 배우의 목소리와 눈빛, 주위 형태들이 온전하게 합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흑백의 새로운 미장센이 나오더라. 오히려 컬러라면 놓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보였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은 무엇을 하려며 하지 말라고 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미세한 호흡, 작은 떨림, 발성, 발음, 이런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게 더 진실 되어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창대가 내 마음에 채워진다면 결승선까지 무리 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변요한 배우는 독립영화로 단련된 젊은 배우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독립영화에 출연하던 때를 되돌아볼 때 자신의 연기세계에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변요한: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말뿐인 연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시나리오 들어왔으니 연기해야지 하는 생각은 저의 가치관과 맞지 않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고 싶다. 도전하면서 조금이라도 성공하고 싶다. 실패가 있고 기복이 있으면 더 전진할 것이다. 시행착오가 인생의 지혜를 주는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나를 계속 확장시키고 싶다.”
- 시사회 때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의 어떤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나.
변요한: “15개월이라는 촬영 기간이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극장에서 봤을 때 헷갈렸다. 흑백으로 찍었지만 컬러 세상이잖은가. 그걸 다시 흑백으로 보니 그 때 기억이 났다. 제 영화가 아닌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집중하면서 영화에 빠져드니 안보이던 형체가 나타났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기다렸던 영화였다. 설레고 감사한 마음에 기쁨의 눈물이 난 것이다. 사실 그 순간 참아야하나 아주 잠깐 생각했다. 0.1초.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경호하시던 분도 눈물을 흘리더라. 어떤 뜨거움이 밀려왔다.”
● 창대, 젊은이의 그릇
- 창대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변요한: “연기를 할 때 내가 그 인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지 생각한다. 제가 확장시킬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면 작품에 피해가 갈 것이니 그 역을 맡지 않아야한다. 그런데 <자산어보>의 창대는 저랑 닮았다고 생각했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과도 닮은 것 같다. 좀 있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되더라. 그래서 정말 잘하고 싶었다. 서툴지만 진실 되게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장에서 많이 배웠다. 선배님에게, 스태프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웠다.”
- 영화 촬영 전에 흑산도를 가 보았다는데.
변요한: “정약전 선생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궁금하기도 했고, 그곳을 보고 싶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찾아갔었다. 어떤 분이었을까. 그분의 발길이 어디까지 닿았을까. 연기하면서 그분을 만나니 뜨거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위대하고,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 정약전을 연기한 설경구 배우는 어떤 선배였나.
변요한: “후배 연기자를 이해해주시는 좋은 선배이다. 술도 잘 드신다. 체력도 좋다. 배우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줄넘기를 천 번하고 현장에 오신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후반부에 늙은 장면이 나온다. 정말 그때는 ‘늙은 마음’으로 오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줄넘기를 그렇게 하시니 후배 배우로서 달리기라도 해야 했다. 따라갈 수밖에 없는, 보면 배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 이준익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떤 작품이 특히 <자산어보>로 이끌었나.
변요한: “다 좋아한다. <동주>, <왕의 남자>, <라디오스타>, <평양성>, <즐거운 인생> 등. 제가 어렸을 때 인천CGV에서 안 봤던 작품이 없는 것 같다.(변요한은 인천출신이다!) 감독님을 동경해 오면서 이번 14번째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준익 감독님은 지금도 뜨거운 열정으로, 초심을 갖고 있다. 자신이 모르면 모른다고 젊은 사람에게 질문하는 감독이다. 배우를 믿어주시는 감독이고. 다른 사람의 약점은 눈감아주신다. 그런 점에서 많이 배웠다.”
- 이준익 감독의 이야기꾼의 매력을 느끼는지.
변요한: “살면서 별것 아닌 것에 감명 받고, 그런 것 때문에 반성하게 된다. 영화라는 것이 판타지이고, 멋진 것들이 많다. 그런데 영화라는 것은 우리 삶에 가장 밀접하게 붙어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그걸 제일 잘하시는 것 같다. 별 것 아닌 장르, 이야기를 펼쳐놓으시더라도, 제가 그 씬에 들어가서 연기를 해보니 알겠더라. 어쩌면 정말 별것 아닌 것을 놓치고 살았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해
- 촬영할 때 쉬는 시간은 어떻게 보냈는지. 함께 낚시라도 즐기셨는지.
변요한: “연기할 때는 신나게, 쉴 때는 즐겁게. 이번 작품에 많은 선배님들이 우정출연을 하셨다. 한 분 한 분 오실 때마다 좋은 추억을 남기도록 노력을 했던 것 같다. 한 잔 하고, 자연도 보고 그랬다. 명사십리 바닷길도 걷고 음악도 듣고 힐링도 하고 그랬다.”
- 배우님이 생각하는 '진짜 배우'는 무엇인가요.
변요한: “모르겠습니다. 진짜 배우가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그릇이 작은 것 같다. 그래서 넓히고 싶다. 10년 넘게 연기했지만 똑같은 딜레마이다. 더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다. 발전하고 싶다. 나중에 저를 보고 ‘쟤 배우였어’라고 하시겠죠. 그게 저의 목표입니다.”
<왕의 남자>, <사도> 등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빚어내는 장기를 가진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는 31일 개봉된다. 영화는 흑백으로 완성되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너무나 아름다운 흑산도 바다 풍경이 스크린에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