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리얼리티 TV예능 무척 나가고 싶어요”
MBC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 '우리 동네 음악대장' 하현우에게 왕좌를 내놓을 때까지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여전사 캣츠걸’은 뮤지컬계의 실력자 차지연이었다. 작년 모노드라마 <그라운디드>에 이어 올해 <아마데우스>로 연극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놀랍게도 <아마데우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살리에리이다. 지구음악사에서 최고의 천재음악가로 손꼽히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극도로 질투하며, 신을 저주했던 그 살리에리 말이다. 그리고 최근 극장가에는 차지연이 출연한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이 극장판으로 개봉되었다.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천상의 탤런트’를 보여주고 있는 차지연을 만나 무대 위, 무대 밖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나, 살리에리
- 피터 세퍼의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연기했다. 아마도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놀라운 캐스팅이었다. 영화를 처음 본 게 언제였는지. 살리에리를 연기한 소감부터.
차지연: “작품이 초연될 때 너무 궁금해서 영화를 찾아봤었다. 내가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텍스트가 너무 좋았다. 어쩌면 작가가 그리 주옥같은 대사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본 기억이 있다. 배우니까 살리에리의 대사에 공감하는 게 많았다. 텍스트가 너무 짱짱하다. 세계적인 작품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차지연: “젠더프리 작품이라고 해도 배우가 남성캐릭터이고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이전에 몇 차례 젠더프리 연기를 했기에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지 않다. 살리에리로 무대에 섰을 때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 혼자 다른 곳에 있는 사람같이 느껴지지 않을까. (노래)넘버가 아니라 텍스트로만 만나야하는 것이라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시간이 걸렸다. 작품을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기뻤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지만 끝까지 관객과 만날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 '더데빌', '광화문연가'에 이어 ‘아마데우스’에서도 젠더프리 연기를 하셨다. 연출자가 보기엔 차지연 배우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끼기에 캐스팅하는 것 같은가.
차지연: “우선은 외형적으로 중성적인 면도 있다. 키도, 체구도 역할을 맡았을 때 비주얼적으로 동떨어진 느낌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거침없이 시도해 볼만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 모습으로 남성 캐릭터의 매력을 발휘했을 때 어떤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무엇보다 어떤 작품이든 연습과정부터 공연 마칠 때까지, 초연 재연 가리지 않고 한순간도 허투루 하지 않고 절실하게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믿어주시는 것 같다. 젠더프리의 선두주자같이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만나다보니 이렇게 온 것이다. 뭔가를 노린 것은 전혀 없다.”
- 배우로 느끼는 살리에리의 매력은 무엇인가.
차지연: “공연을 하면 십분 공감할 것이다. 자신이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을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간다. 결국 그런 속에서 계속해서 자학하게 된다. 스스로 자기영혼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 사람에게 연민을 갖게 된다. 차지연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도 귀 막고 못난이라고 생각한 긴 세월이 있었다. 그럴 때 운명적으로 살리에리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엾고, 안타까웠다.”
차지연: “그리고 여배우로서 살리에리를 연기할 때는 처음 시도해 보는 디테일한 신이 있었다. 남성적 느낌, 파워, 절도 있는 모습과 함께 여성이기에 거침없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짜릿함이 있었다. 어떤 것? 예를 들면 콘스탄체와 연기할 때 텐션이 넘친다. 입에 넣을지 말지 같은 디테일한 터치들. (손을 펼쳐 보이며 허공을 가른다) 시도해 볼 수 있는 재밌는 요소였다. 저의 그런 모습을 받아준 콘스탄체 배우들이 고맙다. 팔목을 확 낚아채거나, 카테리나를 거침없이 끌어당기고 안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장점 아니겠는가.”
- 살리에리는 신의 재능을 받은 ‘1인자’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인물로 심리학에서 많이 언급된다. <복면가왕>에서 장기집권한 차지연 배우가 뮤지컬계에서 활동하면서, 결코 오르지 못할 절망감을 느껴 본 적이 있는지.
차지연: 너무 많아요. 전 저를 잘 믿지 못하는 병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작품마다 무섭고 두려워한다. 10년 넘게 했으면 이제 조금이라도 자신감을 가질 만한데, 단 한 작품도 그런 적이 없다. <서편제>도 그렇다. 재연, 삼연, 사연을 하더라도 매번 내가 몰랐던 것을 찾아내게 된다. ‘어떡하지’,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닌데’, ‘연기를 엄청 잘하는 것도 아닌데..’ 이게 저의 병이에요. 심각한 병이에요. 그래서 주변 분들이 고생을 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니 늘 부족한 사람으로서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다.”
- 그럼 행복한 살리에리와 불행한 모차르트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차지연: “행복한 살리에리! 1인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저것도 내가 해야지’ 하는 것도 없다. ‘맡겨주신 것 잘하겠습니다’이다. 모차르트처럼 다 가지고 불행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 연극의 경우 대사 량이 많았다. 어떻게 암기하는지.
차지연: “무조건 외워야 한다. 사람인지라 까먹을 수도 있잖은가. 그래서 비슷하게라도 하려면 그 상황을 숙지해야한다. 대사는 무조건 계속 외워야한다. 특히 <아마데우스>는 한 회도 빠지지 않고 1막 1장에서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런스루’를 다하고 나서 관객을 만났다. 마지막 공연까지. 저의 자부심이자 자랑거리이다. 당연한 것인데 말이다.”
● “그라운디드, 또 하고 싶어요”
- 작년에 출연했던 <그라운디드>도 차지연 배우인생에서 중요한 작품이 될 것 같다.
차지연: “<그라운디드>는 작년 가장 행복한 작업이었다. 1인극이라는 부담이 있었지만 주위에서 응원해 주신 덕에 무사히 마쳤다. 공연장 근처 서울의 숲에도 많이 갔다. 스태프랑 행복한 기억이 많은 작품이다. 연극에 대한 매력에 푹 빠진 것 같다.”
- 작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무대에서 공연된 <잃어버린 얼굴1895>가 극장판으로 만들어졌다. 큰 스크린에서 본 소감은.
차지연: “일단 부끄러웠다. 평소에 나 자신을 모니터링 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멋있는 척 하는게 아직 부끄럽다. 그래서 스크린에 내 얼굴이 크게 등장할 때 ‘윽`’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랬다. 동시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관객과 거리가 있어서 무대 위 연기의 디테일한 것을 잘 볼 수가 없다. 손 떨림 같은 것을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는 그것을 캐치하여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이건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점은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차지연: “배우들은 무대 위에 설 때 자신의 모습을 상상 하잖아요. 감정 연기를 하면서 이렇겠지 하고 상상하는데, 스크린으로 다시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마주할 때 놀라게 된다. 그리고 상상한대로 잘 살아있을 때도 놀란다. 그런 것을 보고는 다음번 무대에 오를 때 보완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그 동안 출연한 작품 중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겼으면 하는 작품이 있는지.
차지연: “<그라운디드>. 진짜 멋있을 것 같다. 공연할 때 진짜 많이 생각했었다. 연출도 스태프들도 무대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았다. 1인극이다 보니 다 할 수 없어서 가슴을 치며 아쉬워했다. 스크린으로 옮기면 정말 멋있을 것 같다. 강추다. 정말 많은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요즘 시대에 주는 메시지도 클 것이다.”
차지연이 작년 출연한 <그라운디드>는 우란문화재단과 프로젝트그룹 일다의 공동기획으로 무대에 오른 모노극이다. 미국 극작가 조지 브랜트의 <그라운디드>는 에이스 전투기 조종사가 임신으로 비행이 아니라 공군기지에서 드론을 조종하는 임무를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스크린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장을 감시하며 적들을 공격하는 한편, 퇴근 후에는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보내면서 발생하는 괴리감에 점차 혼란을 느끼게 된다.
● “예능도 잘 할 수 있습니다”
- 최근 TV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했다. 예능 출연에 대한 생각은?
차지연: “저 예능 하고 싶어요! 토크쇼는 못할 것 같다. 재치나 순발력이 없다. 하지만 생활연기는 잘 할 자신이 있다. 사실 제가 허당인데 <집사부일체>에서 저의 모습을 친근감 있게 보여준 것 같다. 저 밝은 사람이다.”
- 혹시 관심 있거나 출연하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차지연: “나영석 피디님 프로그램. 직접 밥 해먹고, 설거지 하는 그런 것. 저 설거지 잘하고, 살림 잘해요. 손도 크고 음식도 잘 해요. 아, 참 <유퀴즈>! 저 1회부터 다 봤어요. 증거자료도 다 있다고요. 다시보기로 다 봤어요!”
- 4월에 방송되는 SBS드라마 <모범택시>에 출연한다. 어떤 역할인지.
차지연: “어둠의 세계를 장악하는 대모 역할이다.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인물이다. 악행을 일삼는다.”
차지연: “10년 전에 카미오처럼 드라마에 잠깐 나왔던 적이 있다. 정말 촬영장 견학 온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한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다. 살짝 경험한 것도 있고, 현장에서 많이 챙겨주셔서 열심히 찍고 있다.”
- <모범택시>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데, 자신의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차지연: “아마 원작과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을 것이다. 다른 역할과 믹스된 부분도 있더라. 다양한 느낌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 뮤지컬계의 여왕으로서 많은 작품에 섭외가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혹시 작품 스케줄이 겹칠 때, 하나를 선택해야할 때는 어떤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는지.
차지연: “무조건 대본이다. 작품의 텍스트가 제일 중요하다. 대본이 허점 없이 잘 짜인 작품이라면 그 어떤 변화무쌍한 상황에 맞부딪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대본이 좋다고 생각되면 무조건, 망설이지 않고 직진한다.”
- 데뷔 15주년을 맞았다. 지난 15년을 돌아본다면.
차지연: “후회가 많이 된다. 인간적으로, 유연하게, 지혜롭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을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일도 많았다. 제 삶에 치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속상하기도 하고 후회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마음에는 진실이 있으니깐. 언젠가는 저의 진심을 알아주시겠지 마음으로 무대에 임한다.”
● 라이브 공연의 매력은 최고!
- 영화나 드라마와 비교했을 때 공연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차지연: “현장감이 주는 기쁨이 크다. 라이브의 매력은 그런 것이다. 그 때, 그 시간, 그 장소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다. 매회 같은 캐스팅이라도 매번 다른 느낌이다. 비슷하지만 섬세한 차이가 있다.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관객 분들이 그 매력에 흠뻑 빠지는 것이다. 컨디션, 날씨, 함께 하는 배우들에 따라 그날의 공연에 영향을 준다. 그게 공연의 매력이다. 그 어떤 음악도 라이브로 들을 때 최고의 기쁨일 것이다. 그 리얼리티는 대체불가인 것 같다.”
- 최근 작품 외에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있는지.
차지연: “음악이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좋아한다.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다. 가까운 곳에서 작업 중이다. 제가 악기도 치고 있다. 소소한 기쁨인 셈이다. 언젠가는 좋은 곡들이 나올 때 여러분에게 선보일 것이다. 뮤지컬 무대 넘버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다.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일상의 삶과 께 할 수 있는 노래를 생각한다. 여백이 많아, 쉼표가 많은 노래로 찾아뵙고 싶다.”
차지연: “공연 계획은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 당분간 드라마 <모범택시> 열심히 하고, 다음 작품 작품에서도 실망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항상 궁금함과 생각나는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건강관리 잘 하셔서 아프지 마세요.”
압도적인 가창력, 엄청난 무대 장악력, 그리고 섬세한 연기력으로 매 작품에서 관객을 완전히 매료시키는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배우 차지연은 2006년 '라이온 킹'에서 주술사 '라피키' 역을 맡으며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불후의 명곡'과 '복면가왕'을 통해 명불허전의 가창력을 뽐냈었다. 차지연의 다음 스테이지는 무대 위가 아니라 SBS드라마 <모범택시>를 통해서이다. 4월에 방송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