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밤 방송되는 KBS 1TV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오하늬 배우가 출연한 두 편의 독립 단편영화 <세계화 시대의 진화>(2017)와 <다정을 위한 시간>(2019)이 시청자를 찾는다. 두 편 다 김지현 감독의 작품이다. 오하늬 배우는 김혜수 주연의 <미옥>으로 제1회 신필름예술영화제(2017) 신인상 수상을 수상했고, 드라마 <조선 로코 – 녹두전>과 최근 개봉한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오하늬 배우는 독립영화관 스튜디오를 찾아 인터뷰도 진행한다. 방송은 오늘 밤 12시 10분!

갑질 사장, 계약직 비서, 그리고 사장의 딸
영화 <다정을 위한 시간>은 알 수 없는 ‘고구마’ 상황으로 시작된다. 어느 관공서에서 막 사장 이임식이 끝났다. 그동안 직원들을 상당히 달달 볶았을 것으로 보이는 ‘갑질’ 사장(강숙)이 떠나가는 것이다. 사장실엔 정리할 것도 많이 남았을 텐데 비서는 휴가라며 나가버린다. 얼떨결에 계약직사원 하나(오하늬)에게 떠나가는 사장의 마지막 비서업무가 맡겨진다. 하나에겐 저녁에 오랜만에 딸 보러 올라오신 아버지와 저녁약속이 있는데 말이다. ‘전 사장’의 갑질은 하나의 그런 개인사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회사에 찾아온 자기 딸 ‘다정’(조영선)에게만 관심이 있다. 얼떨결에 비서업무를 맡게 된 계약직 사원 하나는 다정과 기이한 저녁 한때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영화를 보면 하나의 상황이 딱하다. 자기 일도 아닌데, 상황에 따라선 모든 것이 자기 일이 되어 버리는 마법의 계약직 사원 하나는 매몰차게, 나 몰라라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봉착한다. ‘다정’이와 함께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다정이가 말하는 소원은 사실,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4월에 내리는 눈’처럼 관객은 하나의 마음만큼 다정의 사정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다정을 둔 엄마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갑질하는 사장이 아니라 유리천정에 매달린, 장애아이의 엄마의 처지를 말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다정을 위한 시간>은 2019년 30분
연출/각본:김지현 출연:오하늬, 조영선, 강숙, 홍희용, 지민영
촬영:태만호 녹음:정상현 편집:김지현, 김병수
프로듀서:박현석 배급:필름다빈
김지현 감독은 <다정을 위한 시간>을 통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다음은 [독립영화관] 상영에 맞춰 진행한 감독 인터뷰 내용이다.
Q. <다정을 위한 시간>을 연출했다.
“회사에 잠시 다녔었는데, 조직 내에서 일을 해보니 사람을 아주 쉽게 미워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너무 많아 보였는데, 그런 감정을 정리하고 돌아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퇴사하고 나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해하는 얘기를 쓰고 싶어 쓰게 되었다.”
Q. 전작 <세계화 시대의 진화>에 이어서 이 작품에서도 오하늬 배우가 출연한다.
“후이 피게이레도('세계화 시대의 진화'에 배우로 출연하기도 함)의 영화에서 처음 봤던 오하늬 배우는 예민한 감정을 잘 표현하는 순진한 느낌의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진화’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오하늬 배우의 입체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또한 오하늬 배우 자체에 대해서 신뢰감이 생겨서, <다정을 위한 시간>의 ‘하나’ 역을 위해서 굳이 다른 배우분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Q. 오하늬 배우는 계약직 사원 ‘하나’를 연기한다.
“주인공 ‘하나’는 시키는 일 다 하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고분고분한 사람은 아니다. 을도 병도 아니고 정 쯤 되는 자신의 위치 때문에 시키는 일을 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반발도 많이 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씩 성질도 내고 가끔은 부당하게 맡은 책임을 나 몰라라 내던져 버리기도 한다. 누군가는 ‘다정이를 버리고 가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이기적이다’라고 말하지만, 저는 하나가 솔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아주 잃어버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자기 처지에서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작게나마 변화하기를 바랐다.”

Q. 오하늬 배우뿐만 아니라 다정 역의 조영선, 사장 역의 강숙 배우도 출연한다. 강숙 작가는 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보드 작가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 캐스팅 과정에 대해.
“강숙 작가는 원래 대학원 선배의 단편영화에서 처음 보고, 보통의 중년 배우분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평소 날카로운 인상이 아닌데도 카리스마가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는데, 알고 보니 유명한 스토리보드 작가이셔서 놀랐다. 작가님이 가진 자연스러운 카리스마, 한 가지 일을 오래 했고 그 분야에 아주 전문적인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감을 ‘정선’ 캐릭터에 부여하고 싶었다.”
“다정 역할을 위해 청소년 배우들의 오디션 영상을 보았다. 당시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얻어 많은 청소년 배우를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조영선 배우를 보자마자 ‘이 친구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영선 배우는 연기를 하기 위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친구이다. 눈빛이 강렬하면서도 순한 느낌을 오가기 때문에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만나보면 아주 밝고 정말 귀엽다.”
Q. 영화의 배경은 ‘악명 높은’ 사장의 퇴임날 이야기이다. ‘사장’인 정선은 어떤 사람인지?
“나이가 있는 여성리더에 대한 소문은 종종 ‘여자가 독하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하다.’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남성중심적인 조직 문화에서 살아남아 리더의 자리까지 간 분들인데, 당연히 열 배쯤 열심히 일하고 훨씬 더 우수한 성과를 내야 인정받을 수 있는 문화였다고 생각한다. ‘정선’ 역시 한 회사의 리더로, 일하는 사람이지만, 똑같이 다정을 보살피는 데 있어 남편의 노동이나 책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저는 사실 ‘아빠는 뭐하냐...’라고 생각하는 관객분들이 있기를 바랐는데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게 느낀다. 여튼 저는 정선이 아주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경쟁자인 남성 동료들을 제치고, 때로는 나보다 성과가 낮은 남자 동료나 후배가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걸 보며 굴욕감도 맛보고, 뒷담화도 많이 듣지만 무뎌지려고 애쓰고, 일하면서도 육아와 가사노동의 무게를 결코 내던질 수 없는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저는 궁극적으로 하나가 사장을 이해하길 바랐던 것 같다.”
Q. “엄마가 영화감독은 빚만 많이 지고, 굶어 죽는대요. 그래서 방송국 피디하라고 해서요.”라는 말을 하지만, 다정이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다정이는 영화도 좋고 드라마도 좋은데,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해서 ‘아 그럼 드라마를 찍어야지~ 어차피 둘 다 좋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드라마는 ‘보검이 오빠’ 나오는 걸 좋아할 것 같고, 영화는 <인터스텔라> 좋아한다. 제가 <인터스텔라>를 이해하기 어려워했던 것처럼, 다정이도 이해를 못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영화를 멋있는 우주 나오는 가족영화로 생각해서 감동 받은 것 같다. 앞으로 다정이는 엄마가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어할 것 같다.”
Q. 다정이와 헤어지면서 하나가 “다정이가 원하는 것 중에 하나만이라도 이루어지게 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감독님 소원은 무엇인가요?
“소원이 항상 똑같다. 항상 이전에 찍은 영화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준값을 낮춰놔서 다행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제게는 매우 이루기 어렵고 거창한 소원이다.”
Q. 두 작품과 오하늬 배우와의 인연을 말씀해주신다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우를 화면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것처럼, 저도 다른 사람의 영화를 보고 만나게 되었다. 그걸 첫 만남이라고 친다면, 저는 아직도 그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처음 오하늬 배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기차에서 내리는 컷이었는데, 정말 맑고 신선한 느낌으로 스크린에 나타나서 너무 좋았다. 처음 등장부터 뭔가 공기가 바뀌는 느낌이어서, 제가 갑자기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제가 화면에서 만난 수많은 배우들 중 오하늬 배우와 두 편의 단편영화를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인연인 것 같다.”
Q. 오하늬 배우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오하늬 배우님, 두 편의 영화 현장이 모두 무척 빠듯한 일정이었다는 점에 항상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서 최고를 보여주려고 노력해 주셔서 항상 감사드려요. 현장에서의 하늬 배우님을 떠올려보면, 내가 ‘좋은 배우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 경험이었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를 다 만들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데, 다음 현장에서는 더 나은 감독이 되어서 다시 함께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Q. 차기작은.
“차기작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쓰려 한다. 일단 요즘 떠오른 이야기는 장편이어서 장편을 쓰려 한다. 아주 초기 단계이지만 여자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Q. 마지막으로 시청자분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독립단편영화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이 영화가 시청자분들께 어떤 감정이든 드릴 수 있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 김지현 감독과의 인터뷰는 KBS독립영화관 송치화 작가와의 서면인터뷰로 진행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