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극장개봉이 좌절되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에 공개된 한국영화 ‘승리호’는 2092년을 배경으로 우주쓰레기 청소선 ‘승리호’ 선원들의 모험을 담고 있다. 김태리는 ‘태극기’ 문양 선명한 승리호의 장 선장으로 우주대모험을 이끈다. 김태리는 “장르의 특성에 너무 함몰되지 말자. 우리 크루들간의 가족적인 모습을 보여주자, 우주가 아니라 지구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화상으로 진행된 김태리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전형적이지 않은 장 선장
“장 선장에게 매력을 느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 선장 한 사람만이 주인공이 아니라 4명이 다함께 ‘으쌰으쌰’하며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이 좋았다. 어떻게 만들어질지 궁금했다. 장 선장 캐릭터에 매력을 느껴서 도전한 것 같다.”
김태리는 터프한 승리호 여전사 ‘장선장’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보통 시나리오 읽으면 그 안에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나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조성희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상상할 수 없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전사같지 않은, 우락부락하지 않은 김태리가 선장 자리에 앉아있을 때의 전형적이지 않은 모습을 생각하신 것이다. 감독님이 그리는 우주세계가 어떨지 궁금했다.”
- ‘승리호’가 공개되고 나서 많은 나라에서 넷플릭스 차트 1위를 했다. 소감은.
“영화를 열심히 만들었다. 함께한 스태프와 감독님이 기뻐하실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 오는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다.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가 외국에 소개되는데는 시간이 걸리고, 한국에서 일단 잘 되어야 빨리 소개된다. 이렇게 동시간에 볼 수 있다는 것이 관객으로서도, 참여했던 배우로서도 신기하다.”
- 여성 리더를 연기한 소감은.
“일단,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어서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선장’이라는 타이틀이 있으니 신경이 쓰였다. 관객들이 생각하는 어떤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미지를 깨는 것이 어려웠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너무 완벽하지 않은, 크루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나만 잘난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시나리오에서 많이 찾아냈다. 꽃잎이를 대하는 장면에서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족의 느낌이 들도록. 그런 작은 부분들을 찾으려고 했다.”
- <영웅문>을 읽고 있는 장면이 있다. 혹시 읽어보셨는지.
“안 읽었다. 무협물은 좋아한다. 오빠 덕분에. [소년챔프] 많이 봤고, 무협지도 봤다. 삼국지도 보고. <영웅문>은 감독님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가져와서 쓴 것이다. 그런 자잘한 것이 선장의 성격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 “무언가 심장이 아팠을 것이다”
- 김태리가 생각하는 장 선장은 어떤 사람인가.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다. 평범한데 똑똑하다는 점이 다르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 생각으로 UTS를 박차고 나와서 할 일을 위해 설리번에게 총까지 들이대는 것이다. 마지막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나서고 말이다. 다른 인물들은 여러 일을 겪으면서 선택하는 과정이 있다면, 장 선장은 오랜 세월 마음속에 품고 있던 단순하지만 큰일을 하게 된다. 그 과정은 <1987>에서의 연희와 같다고 생각한다. 연희가 광장에 나오게 되는 계기가 뚜렷한 게 아니다. 무언가 심장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신념으로 자기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김태리 배우는 <아가씨>도, <미스터 선샤인>도, <승리호>도 조금 놀라운 캐스팅이었다. 자신의 캐릭터의 한계는 어디까지 라고 생각하시는지?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게 잘 어울리는 캐릭터는 잘 모르겠다. 한계라면 언제까지 절 캐스팅해 주는지에 달린 것 같다. 그동안 여러 가지 캐릭터에 저를 잘 녹여 내주신 것은 배우로서 크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다양한 시대를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하는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운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
- 조성희 감독이 김태리 배우를 ‘큰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모르겠어요. 감독님은 저를 본래의 저보다 높게 평가하시는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쑥스러워하셨다. 저를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아마 그렇게 봐 주신 게 ‘선장’ 역할 주려고 그랬던 것 같다.”
- 선글라스를 쓴 장 선장의 스타일이 멋있다. 이번 배역과 관련하여 김태리씨의 의견이 있었는지.
“모든 것은 감독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조성희 감독님이 10년 전부터 구상한 것이 재현된 것이다. 내가 생각한 것은 헤어스타일뿐이다. ‘태리씨 편한대로 하세요’라고 말씀해 주셨고, 이전에 화보 찍을 때 했던 머리 스타일을 제시해서 채택된 것이다.”
- <미스터 션샤인> 이후 다시 총을 잡았다. 어땠나.
“아, 저 총 잘 쏘아요.”
- 우주선 조종은? 크로마키(블루스크린) 연기 소감은?
“운전은... 너무 어려웠다. 감독님이 시범을 보여주는 것에 도움을 받았다. 가장 편한 움직임을 찾으려고 했다.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것이 다이니 어떤 모습이 알맞을까 확인했다. 크로마키 촬영은 늘 어려운 것 같다. 최대한 뻔뻔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지금 여기 있다’며 끊임없이 상상하며 연기했다.”
- 배우들 케미는 어땠나.
“너무 좋았다. 이번에 매체인터뷰 한다기에 다 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각자 해서 조금 아쉽다. 촬영할 때 선배님들한테 기운을 많이 받았다.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저는 인복이 많은 것 같다. 좋은 선배님들만 만난 것 같다.”
● “재미가 짱”
- 김태리 배우에게 작품 선정의 1덕목은 무엇인가.
“재미가 짱인 것 같다. 시나리오를 재밌게 봤다면 답이 좀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것 같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땡기는 작품이 좋다.”
- 차기작도 SF로 알려졌다. ‘승리호’ 출연해 봤으니 차기작에서는 김태리의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태리는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가제)에 캐스팅되었다)
“‘승리호’는 멋있는 첫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큰 영광을 안겨준 셈이다. 한국에서 이제 구현 못할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 SF든 미래이야기이든 상상이 풍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신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소속사에서 SNS를 한다는데 직접 할 생각은 없는지.
“SNS를 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시간을 너무 빼앗길 것 같다. 딱히 할 이야기도 없는 것 같고...”
- 그동안 작품에서 김태리가 연기한 모습은 다들 주체적인 인물이다.
“저도 주체적인 사람인 것 같다. 최대한 소신을 갖고 모든 것에 임하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런 인물에 더 끌리는 모양이다.”
- <승리호>는 2092년이 배경이다. 지구는 디스토피아적 모습을 띄고 있다. 김태리가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은 어떤가.
“저는 조금 각박한 미래를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생각밖에 없다. 그래도 요즘 한국에서 미래를 다룬 소설과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이런 세계가 있을 수 있겠구나 상상하면 재밌다.”
- “정의롭지가 않아.”라는 대사가 멋있었다. 김태리가 뽑은 명대사, 명장면이 있다면.
“나도 ‘정의롭지 않아’그 대사를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극중에서 그 대사가 처한 상황에 맞는 것은 아니다. 크루들과 함께 속물적인 모습이 보이는 부분이다. 그런 대사를 쓴 게 이중적이어서 재밌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은 정의로운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말을 내뱉으니. 그런 애매모호함이 재미있었다.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오프닝에서 승리호를 소개하는 전투 씬이 너무너무 멋있었다. 우리 ‘승리호’를 말해주는 시퀀스 같다.“
- ‘승리호’ 멤버에서 베스트 케미를 뽑자면?
“꽃잎이다. 꽃잎이가 만인이 연인이다. 다른 사람을 꼽자면 업동이 할게요. 가장 먼저 크루로 맞은 친구이자, 가족이자, 로봇이다. 툭툭 내뱉는 말속에 뭔가가 있다. 셧다운되었을 때 업둥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게 보였을 것이다. 업둥이와는 단짝친구다.”
- 촬영장에서는 배우들과 어떤 이야기 나누나. [승리호] 찍을 때 개인적인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영화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요즘 사는 낙이 무언지, 무슨 영양제 먹는지, 그런 이야기 한다. 생활에 관련된 이야기. 또 재밌게 본 영화 이야기도 하고. 운동도 같이 한다. 같이 배드민턴도 치고. 그랬다.”
“‘승리호’를 찍을 때는 ‘승리호’만 열심히 했다. 요즘은 딴것도 해보려고 한다. 취미생활 말이다. 딱 하나만 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 균형감 있는 생활을 해야겠더라.”
“오늘 인터뷰자리가 ‘승리호’와 함께 하는 마지막 스케줄이다. 이것 끝내면 ‘승리호’와는 빠이빠이하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가 중요하다. 오래오래 사랑받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김태리, 송중기, 진선규, 유해진, 리처드 아미티지 등의 배우들이 출연한 <승리호>는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전 세계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김태리- ‘승리호’ 스틸/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