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매의 집'(09)과 '짐승의 끝'(10)으로 주목받은 조성희 감독은 송중기-박보영 주연의 <늑대소년>(12)으로 판타지 멜로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16)로 다시 한 번 조성희 판타지를 밀어붙인 그가 <승리호>를 타고 왔다. 이번에 그의 등엔 넷플릭스 로켓이 장착되었다. 공개와 더불어 호평과 혹평이 교차하는 가운데 ‘승리호’는 전 세계 넷플릭스 차트 상위에 랭크되었다. 조성희 감독에게 극장판 영화 <승리호>의 운명에 대해 물어보았다.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는 점에 대해선 아쉬움보다는 감사한 점이 크다. 해외관객 분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넷플릭스로 관람할 때에는 환경에 따라 극장과 비슷하게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선보일 수 있어 기쁘다. 감사하다.”
● 극장용 오디오 설계, 그리고 넷플릭스 공개
- 영화가 공개된 뒤 오디오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극장용을 넷플릭스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었는지, 예상 못한 이슈가 있었는지.
“사운드와 관련해선 작업을 많이 했었다. 극장 내 많은 스피커를 채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시청환경에 따라. 5.1채널, 애트모스, 스테레오 채널 등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극장 개봉에 맞춰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업을 했었다. 스테레오로 합쳐졌을 때 잘 안 들리는 부분도 발생하고, 윗부분이 조금씩 깎이는 부분이 생겼다. 대사가 먹먹하게 들리는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만약에 스테레오 환경이면 핸드폰으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영화계에서 우주SF물을 최초로 완성시켰다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지금도 한국영화의 드라마장르는 계속 넓혀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 이 영화가 기획될 당시에도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다수 준비 중이었다. 지금 촬영 중인 작품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장르의 많은 작품들이 나올 것이다. ‘최초’ 타이틀 단 작품이 많아질 것이다. 부담보다는 기대가 된다. ‘승리호’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 대한 기대가 크다.”
- 넷플릭스차트를 보면 전 세계 16개 국가에서 1위를 했다. 소감은.
“영화를 빨리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한국에서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린 셈이니 기쁘다.”

● 김태리는 ‘영웅문’을 읽는다
- ‘승리호’ 선장 김태리가 극중에서 김용의 무협소설 <영웅문>을 읽고 있고, 유해진(업둥이)은 릴케 시집을 읽고 있다. 이 컨셉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영웅문>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촬영 때 종이책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무협지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 현장에서 그 책을 읽은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승리호 탑승 인물 중에 큰 뜻을 가진 사람은 선장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큰 뜻을 품고, 악당을 암살하려고 했으니. 현장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극중에서 김태리가 읽고 있는 책은 김용의 ‘영웅문’이다. 고려원에서 출판된 김용의 사조삼부곡(사조영웅전-신조협려-의천도룡기)의 첫 번째 권이다. 우리나라가 베른조약에 가입하기 전에 출판된 소설이기에 해적판이면서도 해적판은 아닌 셈이다. 물론, 지금은 정식판권계약으로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
“업둥이가 시집을 읽는 것은 원래는 다른 일을 하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촬영 전날 지붕수리 같은 작업보다는 시집을 읽는 게 어떨까 싶었다. 표지를 헐레벌떡 만들어 촬영에 임했다. 겉모습은 사람 비슷하게 되었으니 내면을 채우는데 관심을 가지는 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 장면 찍게 되었다.“
● 자동로딩 기능 “유해진입니다”
- 업둥이 로봇은 유해진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자동적으로 유해진이 떠오른다.
“내가 유해진을 캐스팅 했다기보다는 그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업동이는 유머도 많고, 나름대로 독특한 면이 있다. 그에게 생명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배우는 유해진 배우라고 생각했다. 더할 나위 없이 적확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들으면 유해진이 바로 연상되는 것은 감수했던 부분이다. 관객에게 워낙 익숙한 목소리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둥이를 살아있는 캐릭터로 만들어주었다.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로 빈 부분을 채워주었기에 결과적으로 많은 덕을 본 셈이다.”
- 김태리의 선장 캐릭터에 대해서.
“그가 리더로 보이길 원했다. 컴퓨터를 다룬다든지, 손재주가 뛰어나다든지, 활을 잘 쏜다든지 하는 것 보다는 모든 것을 잘 아우르는 캡틴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는 사건의 실체에 관심을 가지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전체를 위해서 일을 꾸려나가는 철학이 있는 큰 인물로 보이길 원했다. 김태리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구구절절한 사연도 좋지만 항상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인물로 그려지기를 원했다.”
- <승리호>를 제작하면서 우리나라 특수효과의 위상, 제작 수준이 어땠는지.
“기술적으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작업과정에서 가장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났다. <승리호>를 하면서 많은 구상을 했다. 근사한 크리처를 만들고 싶었고, 거대한 도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도 싶었다. 그런 전체적인 작업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번 우주SF를 하면 모두 열의를 갖고 CG작업에 임했다. 감동적인 순간이 많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다고 생각했지만 더 근사한 장면을 만들어 주었다.”
- 극중 악당, 빌런이 서양인으로 설정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인종, 국적, 언어가 나온다. 악당의 모델이 된 기업인이 있다. 미국인이다. 극중에 등장하는 ‘UTS’가 국가 자체로 보이기도 한다. 거대기업을 운영하는 백인남성이다.”
- 감독님의 전작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강조하는 장면이 많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렇다.
“의도적으로 어린이 캐릭터를 넣었다기보다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영화 전체에서 도덕적인 균형감을 은연중에 느끼게 하는 것 같다. 어린아이들은 사실 무결한 존재이다. 그런 인물이 있어야 전체적으로 영화가 균형에 맞는 것 같다. 박예린은 오디션을 볼 때 가장 능숙한 면을 보여줬다. 제작진이 그렸던 꽃잎이 이미지에 맞는 쾌활하고 밝은, 개구쟁이 같은 면이 있었다. 첫눈에 반한 그런 느낌이 있었다.”
● “2092년의 세계는 이럴 것이다”
- 영화의 배경이 서기 2092년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다지 미래적인 모습이 아닌 것 같은 컨셉이 나온다. 2092년의 기술적 진화에 대해서 어떤 설정을 가져갔나.
“2092년을 설정한 이유가 있다. 과학기술 수준은 중력을 극복하고 간단한 장치로 우주선 안에서 걸어 다니는 수준이다. 나노봇을 이용하고 우주공간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런 것과 함께 한편에서는 수레를 끌고 다니고 재래식 공구로 기계를 수리한다. 그런 모습이 공존하는 세상은 한 세기, 100년을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한 세기가 지나면 공구가 사라질 것 같다. 향후 1~20년 내에 중력문제는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 지점을 설정했다.”
“주인공들은 육체노동을 한다. 다칠 수도 있다. 세련된 삶이 아니라 고된 일을 하는 캐릭터를 원했다. 그런 인물이 자연스레 녹아든 헤비 인더스트리도 있고, 최첨단도 있다. 그런 대비를 보여주고 싶었다. 수레 장면을 보면서 ‘저 시대도 저래?’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어떤가. 바둑을 두는 AI가 사람을 이기고, 눈앞에서 증강현실이 보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벽에 못을 박을 때는 망치질을 한다. 2092년이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보셨나요
-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스타워즈 에피소드4>의 데스스타 공략전을 떠올린다. 이번 영화에서 ‘스타워즈’의 영향이 컸는지 ‘가오갤’이 컸는지.
“두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지만, 다른 작품도 많다. 이것저것 찾아본 게 많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속 캐릭터들은 어딘가 괴팍하고 각자 아픔이 있다. 그런 캐릭터의 특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을 많이 참조했다. 특히나 개인적으로 많이 본 것 중 하나가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시리즈이다. 많이 봤다.”
- 차기작으로 생각 중인 작품이 있는지.
“몇 가지 염두에 두고 있다. 지금 바로 촬영할 작품은 없다. 시나리오를 써야하니. 개인적으로 해 보고 싶은 것은 무섭게 생긴 괴물을 좋아해서 늦기 전에 크리처물을 하고 싶다.”
- ‘승리호’에 대한 비판은 참신성 부족, 신파조에 대한 문제이다. 감독이 생각하는 '승리호'만의 차별성은.
“영화를 만들며 걱정했던 부분은 우주공간에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지구를 구하는 사람이 한국사람이고, 그 사람이 한국말을 할 경우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 캐릭터 자체에 위화감이 많았다. 그런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나오는 히어로를 생각했다. 자잘한 돈걱정, 계주가 도망간 문제 등,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사람이 주인공이란 것이 우리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개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투 치는 장면은 원래 카드였다. 연출부가 카드 말고 화투를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우주선 안에서 화투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 안 어울리면서 신선함을 줄 것이다. 이미지의 충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 영화를 만들면서. 구현하기에 제일 힘들었던 부분.
“구현하기 힘들었던 것은 역시나 CG 쪽이다. 폭발장면과 나노봇 효과 등을 묘사하는 것이 난이도가 높았다. 디자인요소가 많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우주선 낙하하는 꿈 장면이 시간이 많이 걸렸고, 작업자들이 끝까지 고민한 장면이다.”
● 한국영화가 가야할 길, 다양성
- 호평만큼 혹평도 쏟아지고 있다. 완성도 높은 그래픽에 반해 스토리가 진부하다는 반응이다. 감독님으로선 아쉬운 점이 없는지.
“우선 영화 봐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아쉬움이 있었다면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음 영화에선 완벽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까지 낯설게 할 것인지 고민했었다. 이 영화가 너무 멀리 나아가지 않은 것은 잘 한 선택 같다. 설정, 인물, 언어. 이런 것이 자칫하면 낯설게 보일 수 있다. 이 영화는 가족들이 두 시간 신나게 볼 수 있는 오락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낯설어지면 위험해질 것 같았다. 미국에는 참신한 SF가 많다. 정말 실험도 많이 하고. 돌이켜 보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이렇게 봐주시는 것만도 응원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오면 더 이상 한국감독이 만들었고, 한국배우가 나온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때는 정말 많이 나갈 수 있는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자투리 질문.
- 펩시가 나오는 이유는?
“익숙하고 생활감 있는 소품이 나오길 원했다. 또 펩시의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 승리호 우주선 번호 KOR-SH7901은?
“그냥 좋아하는 숫자배열이다” (네이버 영화정보에 조성희 감독은 1979년생으로 나와 있다)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리처드 아미티지(악당)이 출연하는 영화 <승리호>는 지난 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190개 나라에서 일제히 공개되었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조성희 감독 - 영화 ‘승리호’ 스틸/ 넷플릭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