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흑백에서 컬러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IMAX에서 AI에 이르기까지 영화를 담아내는 기술은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지만 영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 변하지 않은 영화의 본질에 무게감을 더한 것 중의 하나가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운동, 누벨 바그(Nouvelle Vague)일 것이다. 1950,60년대에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끌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등이 기존의 영화양식과 문법, 그리고 관습을 탈피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박물관이나 챗지피티에게나 물어봐야할 ‘누벨바그의 유산’을 극장에서 만나본다.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 감독의 1974년 작품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라는 기이한 제목의 영화가 한국의 극장가에 개봉한다. 셀린느와 줄리가 누구인지, 그들이 왜 배를 타러가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새로운 물결에 배를 띄워보자. 런닝타임 3시간 13분의 장거리 운항선이다.
공원 벤치에 앉아 무료하게 책을 읽고 있는 줄리(도미니크 라부리에) 앞으로 한 여자가 황급히 지나간다. 얼마나 급한지 가방에서 인형이 떨어지고, 스카프가 날아가는 것도 모른다. 셀린는 “이봐요”하며 쫓아가지만 여자는 바람같이 사라진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토끼를 쫓는 소녀처럼) 이렇게 줄리는 셀린느(쥘리에트 베르토)를 처음 만나게 되고 곧바로 친구가 된다. 영화는 이제 줄리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셀린느를 보게 된다. 도서관 사서이자 오컬트에 심취한 줄리와 카바레 마술사인 셀린느는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한다. 관객들은 줄리가 일하는 도서관에서의 황당한 일탈과 셀린느의 카바레에서 펼치는 어설픈 마술 공연을 보며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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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두 사람의 ‘유령의 집’ 이야기를 하며 그 집에 다녀온 모험담을 펼치기 시작한다. 자크 리베트 감독은 특이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즉, 같은 상황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셀린느와 줄리의 이야기는 유령의 집 앞 계단을 배회하더니 이제 뜬금없이 홀아비 올리비에의 집안 사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아내를 잃은 올리비에, 어린 딸 마를렌이 있고 카미유와 소피가 올리비에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셀린느는 어느새 그 집 간호사 겸 마들렌의 유모가 되어 딸을 돌보며, 카미유와 소피의 행동을 지켜본다. 그러다가 어느새 이번에 줄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 ‘다른 집’과 ‘나사의 회전’의 내용이라고 한다) 셀린느와 줄리는 로맨스의 독자에게 이야기를 돌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자크 리베트 감독은 마치 연극을 펼치듯이 셀린느와 줄리, 그리고 올리비에 집안 인물들의 연기를 반복시킨다. 마치 카메라 앵글만 바꾸고 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사실, 그 집을 나서면 셀린느와 줄리는 그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거나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법의 약(LSD)이라도 되는 듯 봉봉 사탕을 번갈아 먹는다. (기억의 파편을 맞추는 것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1974년에 만들어진 ‘누벨 바그’의 지독한 실험작 <셀린느와 줄리>의 이야기 진행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2배속으로 보는 OTT’세상에서는 이야기의 중복, 상황의 중복, 역할의 반복 같은 설정이 ‘흥미롭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은’ 이야기 방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어쩌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로스트 하이웨이>나 셀리는와 줄리의 유쾌하고도 수상한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해석하려는 호기심이 더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배를 타러 가는가? 마지막에 호수에서 배를 탄다. 셀린느와 줄리가 탄 보트 옆으로 올리비에와 여자들이 배가 스쳐지나간다. 이 영화의 프랑스 제목을 영어로 그대로 옮긴 것이 ‘Celine and Julie Go Boating’이다. ‘vont en bateau’라는 표현이 ‘그들이 배를 탄다’와 함께 ‘이야기에 휘말려 들다’나 ‘허풍이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다’ 등의 의미로 쓰인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첫 장면을 생각한다면 “엉뚱한 망상이나 환상의 세계로 끌려들어간다”는 의미가 제대로 들어맞는 것 같다. 영화가 만들어진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감독과 누벨 바그의 낚시질이 제대로 작동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엔 공원에서 셀린느가 책을 읽고 있는데 줄리가 황급히 지나간다. 뭔가를 떨어뜨리고 저쪽으로 사라진다. “이봐요~” 그렇다. 이번에 셀린느가 줄리를 쫓아가는 것이다. 두 번째 배를 타기 위해서. (박재환)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 (Céline et Julie vont en bateau) ▶감독:자크 리베트 ▶출연: 쥘리에트 베르토, 도미니크 라부리에, 뷜 오지에, 마리 프랑스 피지에 ▶수입/배급: 라이트하우스 ▶개봉: 2026년 9월 30일/ 3시간 13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