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KBS [독립영화관] 시간에는 신아가-이상철 감독의 2019년 극장개봉작 <속물들>이다. 신아가, 이상철 감독은 이 작품에 앞서 <밍크코트>를 함께 내놓으며 한국 독립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감독의 취향으로 보아, 독립영화계의 패기로 보아,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제목으로 보아 이 영화는 ‘한국의 치부’를 통렬하게 까발릴 것으로 보인다. 타깃은 어디일까. 미술계이다. 물론, 미술계는 상징일 뿐이다. 어느 곳이든 똑같을 것이다. 물고 물리는, 속고 속이는,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적절히 이용하고, 적절히 내뱉어버리는 그런 사회적 기제를 다룬다.
영화는 선우정(유다인)이 자전적 소설 ‘우정이 불타고 있다’를 공모전에 내기 위해 출판사 편집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나는 예쁘죠. 다른 재능도 있어요. 욕먹는 것”이란다. 선우정은 미술작가이다. 그런데, 그가 업계에서 유명해진 것은 다른 유명작가의 작품을 카피하다시피 하는 ‘차용미술’을 내세운 것이기 때문. 전시회에 내걸린 작품은 아예 ‘표절1’, ‘표절2’식의 이름이 붙어있다. 원작자가 항의하고, 소송을 걸고 난리지만 당당하다. “이것 때문에 당신 그림값이 세 배 뛰었지 않느냐.” 그런 그를 둘러싸고 미술관 큐레이터가 접근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학교동창이 나타나고, 미술관장과 미술계의 거장이 뒤섞여 엉망진창의 미술계 디스전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물론, 평론가연(然)하는 사람들과 미술담당 기자도 한축을 이룬다. 다들 하나같이 ‘속물들’이다.
유다인이 연기하는 인물은 선우정이다. 신아가-이상철 감독은 오래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특정사건을 모티브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아하고 고급스럽고 훌륭할 것 같은 예술계도 알고 보니 밑바닥부터 시궁창 냄새가 넘쳐나고, 이 바운더리에 발을 디딘 모든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못 잡아먹어 안달이면서 결국 한통속이라는 슬픈 그림을 완성시킨다.
물론, 영화 ‘속물들’은 미술계/전시계를 둘러싼 역학관계, 갑을 간의 모순을 극대화 시켰을 뿐이다. 사실이냐 아니냐, 과장을 했냐 안했냐는 의미 없는 지적일 것이다. 하다못해 최근 나온 문학시상식 대량표절 사건만 보더라도 정상적 사회에서 그런 커다란 구멍이 있을 수 있느냐 의문을 갖게 되니 말이다.
특정 커뮤니티의 부패(?)상을 이렇게 놀랍도록 한 자리에 꼴라쥬한 것은 적재적소에서 기름을 끼얹는 배우들의 열연 때문일 것이다. 선우정을 연기한 유다인과 그의 ‘먹물+속물’의 진상을 보여주는 심희섭, 송재림, 그리고, 업계에 오래 굴러먹으면 저렇게 될 것 같은 유재명의 존재감, 그리고 캔버스를 마구잡이로 찢어버리는 옥자연의 모습이 영화를 생생하게 만든다. ‘옥자연’은 최근 드라마 <경이로운소문>에서 악귀 백향희로 나왔던 배우이다.
선우정의 표절 전시회 그림에는 작가 찰스장의 그림이 사용되었단다. 유현경 작가의 그림도 등장하고, 음악을 맡은 인디밴드 레드로우도 화면에 잠깐 나온단다.
감독은 선우정(유다인)을 흙수저로 묘사했고, 저렇게 발버둥치는 것은 ‘콤플렉스’라고 설명했다. 흙수저와 금수저가 침을 튀며 밥그룻 싸움 하는 것을 보면 절로 우울해질지 모르겠다. 영화가 이렇게 현실사회를 모질도록 채찍질하는 경우가 있다니. 한국독립영화의 패기이리라. 오늘밤 12시 10분, KBS 1TV에서 확인해 보시도록. (KBS미디어 박재환)
찰스장은 이 장면 뒤에 이어지는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는 모자쓴 남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