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드라마 <런 온>은 묘한 매력의 드라마이다. 어떻게 보아도 청춘남녀의 달콤한 멜로이면서도 캐릭터와 대사에 공을 들였다. 이런 캐릭터의 대향연에서 극중 오월영화사 대표 박매이를 연기하는 이봉련에게 시선이 간다. TV에서 가끔 만나는 대표적 단역/조역 배우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정이 간다.
이봉련 배우는 2015년 뮤지컬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로 데뷔했다. <응답하라 1994>(2013)에서 여수 친구로 잠깐 등장한 뒤, ‘송곳’, ‘드라마스페셜-정마담의 마지막 일주일’, '내일 그대와', '당신이 잠든 사이에',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등의 TV작품에 출연했고, 영화는 '옥자', '택시운전사', '버닝', '암수살인', '엑시트', '82년생 김지영',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에 나왔었다. JTBC드라마 <런온>에 앞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위트홈'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런 온>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이봉련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물론, 코로나 예방을 위한 온라인영상 인터뷰이다.
● 런온, 내가 가장 많이 나온 드라마
“<런 온>과 <스위트홈> 사랑해 주시고, 관심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들뜬 마음입니다. <런 온>에 참여하게 되어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참여한 작품 중에서 출연신이 가장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런온>은 평생 가장 많이 나온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현장도 따뜻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출연한 배우들과의 케미가 돋보였다. 특히 오미주(신세경)와의 씬이 좋았다. 대사도.
“신세경 배우와의 케미가 좋았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제가 준비한 것을 잘 보여주었구나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싶었었는데 결과물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신세경씨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랑스런 동생이었다.”
- 극중 박매이는 예술영화를 주로 하는 영화사 대표이다. 연기하며 공감한 지점이 있었는지. 배역을 위해 준비하거나 만난 사람이 있다면.
“공감한 지점이 있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하였고, 메이저 영화에서 조단역을 많이 했다. 극중에서 맡은 역할은 독립영화사. 배급제작사. 소규모 영화사 오너이다. 나는 독립영화 챙겨보는 사람이다. <독립영화관>도 즐겨 보고. 동료배우들 많이 출연하고, 단역이지만 참여한 영화도 있다. 그런 작업 자체가 갖고 있는 뜨거움이 있다. 고군분투, 열악함 속의 절실함 등에 공감한다. 극단에 속해 있는데 연극에서 작업하는 과정이 비슷하다. 지원금을 받아도 자본은 모자라고, 예산을 쪼개서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그런 상황이 열악할수록 열정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공감을 했다.”
“배역을 위해 따로 준비한 것은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만나러 갈 기회가 없었다. 한 독립영화사 대표를 롤모델로 했는데, 관련기사와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독립영화도 챙겨보고. 본 영화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주의 깊게 보고 그랬다.”
- 박매이의 쿨한 성격과 사투리 설정에 대해.
“드라마 들어갈 때 대본가이드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원하고 쿨한 성격은 나와 닮은 지점이 있기도 하고 정반대 지점도 공존한다.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이상적인 캐릭터 같다. 많은 경험을 끝에 체화된 것 같다. 누군가 이야기하며 조언할 때 말을 툭툭 던진다. 목매어 살지 말라고. 동생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는 이상적인 캐릭터 같다. 저도 동경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 넷플릭스 <스위트홈>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명숙이라는 캐릭터를 맡았다. 평들이 좋다.
“좋게 평해주시고, 많이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모차 끌고 다니는 역할인데 촬영할 때 쉽지 않았다. 경험해서도 안 되는 일이거니와 한 인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일이니. 내가 이 안에서 아이들을 지켜야한다, 그렇게만 신경 썼던 것 같다.”
- [스위트홈]에서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시즌2에 나올 수 있는지.
“‘스위트홈’에서의 괴물은 그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욕망의 결정체이다. 명숙 캐릭터는 가슴 아프게도 자기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지키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서 괴물이 되어간다. 그런데 누구를 공격하는 괴물이 아니다. 아무것도 공격하지 않는 괴물이다. 시즌2가 제작이 된다면 아마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아쉬움이 있지만, 시즌2가 나오면 또 시즌1을 보는 분들이 있겠죠. 그랬으면 좋겠다.”
● 내 인생의 조력자들
- 극 중 매이처럼 본인에게도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면.
“남편이 내 인생의 조력자이다. 극단에서 만난 선배이다. 컨트롤타워이기도 하고. 제가 감당 못할 때에도 한 마디면 해결되는 사람.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매이 같은 조력자이다. 친하게 지내는 언니도 조력자이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연기한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배우가 직업이다. 당연하지만 연기를 할 때 동력이 떨어질 때가 있다. 자신이 없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동력이 조금씩 사그라질 때. 그럴 때면 다른 배우들의, 다른 작품을 본다. 그들의 연기를 보면서 새로운 동력을 찾는다. 자극제가 된다. 주저앉아버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 동의하고 공감이 되는지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인 것 같다.”
- 자신의 작품에 자극을 준 배우가 있다면.
“신세경씨와 임시완 배우와 같이 연기한 신이 많다. 그분들이 <런온>에서 편하게 해주었다. 큰 도움이 되었다. <스위트홈>에서는 근육괴물을 연기한 배우가 자극을 주었다. 물론 절 막 때리는 역할이지만. 현장에서 열심히 돌아다니는 스태프들이 동력이 되고, 자극이 된다. 자극을 주는 건 배우만이 아닌 것 같다.”
- <런온>을 찍으며 인상적이었던 촬영 장소는.
“포항.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가 괜찮았다. 바다가 보이고, 미주와 함께 영화장면에 투입되는 신이다. 현장에는 실제 스태프도 있고, 액자구성으로 촬영스탭으로 등장하는 희한한 장면이었다. 촬영할 때 묘한 느낌이 들었고 재밌었다.”
- 독립영화 크레딧을 유심히 살펴본다고 그랬는데.
“외화번역가인 오미주가 자신의 이름을 보기 위해 크레딧을 항상 기다리는 장면이 있다. 나도 그런 식이다. 함께 작업한 스태프가 궁금하기도 하고. 의상, 음악, 분장... 그동안 이 일을 해오면 아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스태프들의 수고를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너무 중요해요.”
- 매번 다채로운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소화한다. 이봉련 배우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은.
“조금 익숙한 느낌과 아직 잘 모르는 생경함이 동시에 있는 것 같다. 제가 가지고 있는 눈매, 목소리. 그 때 그 역할에 잠깐 출연하면서도 꼭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운 좋게 캐스팅된 것도 있고.”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덧붙인다.
“장점은 생긴 대로 많이 꾸미지 않고 연기를 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배우 하겠다고 했을 때 ‘쌍꺼풀수술 할거냐, 그럴 것이면 하지마라’ 하셨다. 할 마음도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너 얼굴로 할 수 있는 것 많을 거다’ 그런 이야기인 셈이다. 친근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내 주변에 있을법한 사람과 맞닿아있어서 그럴 것이다.”
● 연극은 나의 토양
- 뮤지컬무대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연기의 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뮤지컬로 시작했다. 뮤지컬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연극을 하고, 매체 활동도 하게 되면서 여기까지 왔다. 연기자의 꿈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공연 스태프가 되었다. 조연출. 그러다가 뮤지컬 연기를 해보고 싶어서 극단 오디션을 보았고 데뷔를 하였다. 준비해서 왔다기보다는 얼떨결에 온 면도 있다. 그렇게 16년차 연기자가 되었다.”
- 코로나19로 인한 '햄릿' 공연이 취소되었다. (지난 연말 국립극단은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준비했다. 기존 덴마크 왕 햄릿이 아니라 ‘공주 햄릿’으로. 이봉련은 ‘여자 햄릿’이 되기 위해 준비를 했다)
“3개월 정도 연습했었다. 공연하려고 달려온 것이 허망했다. 공연이 취소되니 허탈했다. 연극은 저의 토양이다. 큰 의미를 둔다기보다는 늘 해오던 일이고, 할 일 없으면 할 줄 아는 게 없네요. 그런 의미이다. 무조건 같이 가야하는 그런 것 같다.”
- '런 온'은 각자의 트라우마와 상처를 이겨내고 위로가 되어준다.
“상처를 입고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덮어진다. 그런데 또 다른 상처가 생긴다. 평생 살면서 그런 것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이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게 상처받고 동력이 되어 살아가는 것 같다. 매이 같은 사람이 지금 내 주위에 있는가, 과거에는 있었나? 그런 사람이 없다면 내가 지금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은둔한 무림고수
- 영화 <세자매>에 잠깐 출연한다. 그 영화 너무 좋았다.
“아직 영화를 못 봤다. 대본을 봤으니 내용은 알고 있다. 대본과 다르게 나오는 것이 많으니. 읽은 거랑 찍은 것이 다르잖아요. <세자매> 찍을 때 참 좋았다. 영화관 가서 보고 싶다. 코로나 상황이 괜찮아져서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오시고, 배우들도 무대인사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세자매> 같은 독립영화가 계속 되어야한다. 끊임없이 이야기가 만들어져야한다. 독립영화에 힘을 실어야한다.”
- 도전하고 싶은 장르, 연기가 있다면.
“연극 ‘햄릿’을 준비하며 검술, 액션 훈련을 받았다. 액션을 배우고, 현장에서 합을 짜고 완벽하게 씬을 찍어내는 것은 배우들과 액션팀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다. 그런 류의 장르를 하고 싶다. 은둔한 무림의 고수 역할을 해보고 싶다.”
- 차기작은.
“<런온>으로 조금 익숙해진 얼굴인데, 빨리 차기작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런온> 재방송으로도 많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3월에 극단에서 연극 <코스모스>를 할 예정이다. 무대에서 먼저 인사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아무튼 건강하세요.”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이봉련/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