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 감독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스크린으로 옮기며 화려하게 데뷔한 김도영 감독은 두 번째 작품으로 시리도록 아픈 중국청춘의 드라마 <먼 훗날 우리>를 한국적 상황으로 리메이크한 <만약에 우리>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로버트 드니로와 앤 헤서웨이가 주연했던 할리우드 영화 <인턴>을 다시 한 번 한국적 상황극으로 리메이크 작업에 도전한다. 이들 유명작품을 만들기 전, 단편영화 <자유연기>로 각광을 받았던 김도영 감독을 기억하기에 감독을 직접 만나 ‘한국적 재해석’의 의미를 들어보았다. 최민식, 한소희가 주연을 맡은 <인턴>은 오늘(16일) 개봉한다.
Q. 이번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있는 할리우드 작품을 리메이크 하였다. 잇달아 리메이크 작품을 연출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특히 주목한 지점은?
▶김도영 감독: “리메이크의 무서움을 알기에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원작의 힘이 너무 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된 작품을 어떻게 변주할 수 있을까. 원작과 너무 달라지면 ‘인턴’ 같지가 않을 것이고, 그대로 따라가면 왜 굳이 하는 것일까. 이런 고민 속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 기호(최민식)가 주는 상징성이라든가, 선우(한소희)로 대표되는 인물의 시대적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인턴'
Q. 오래 전에 기획된 작품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는지.
▶김도영 감독: “제가 듣기로는 한 5년 정도의 과정을 거쳤던 것 같다. 그동안 만들어진 시나리오가 몇 권 있었고. 그걸로 왕혜지 작가님하고 같이 만들어갔다.” (‘만약에 우리’를 완성도를 보고 픽 되었나?) “‘만약에 우리’의 후반 무렵에 제안이 들어왔었다. <만약에 우리>가 아직 공개되기 전이었으니 그게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영화 때문에 다시 리메이크 제안이 들어온 것은 아닐 것이다.”
Q. [만약에 우리]와 [인턴]의 차이라면.
▶김도영 감독: “[만약에 우리]를 하면서 리메이크 작업이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엔 조금 겁 없이 했었다. 저는 연극배우 출신이어서인지 옛날 작품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거부감이 있거나 두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근데 영화는 조금 다르다. 무게감이 좀 달랐던 거 같다. <인턴> 제안이 들어왔고, PD가 같고, 최민식 배우가 이미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번이 아니면 언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제가 배우 출신이고, 연기선생을 오래 활동 했었다. 연출로 넘어오면서 ‘액팅’이 주는 에너지랄까 그런 것에 주목했다.”
Q. [인턴]은 어떤 영화인가.
▶김도영 감독: “대상에 대해 어떤 이름을 붙이는 시대인 것 같다. ‘MZ’니 ‘386’이니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신조어도 만들고, 이름을 붙인다. 자기랑 다른 이름을 가진, 다른 라벨이 붙은 타자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화합하고, 서로 수용하고, 우정을 쌓을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오는 감동이 있을 것이다.”
Q. 오래 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와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에 연기자로 나왔다. 그런데 당시 이름이 다르다. 감독이 되면서 바꾼 것인가?
▶김도영 감독: “연극을 굉장히 오래 했다. 그러다가 <오아시스>에, <말아톤>에 나왔던 것이다. <말아톤>은 제 동기인 정윤철 감독 작품이기에 어떤 역할이라도 필요하다면 해주겠다고 했었다. 이름 관련해서는 아이 이름을 지으러 갔다가 제 이름이 안 좋다며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 이름을 받았는데 아이 낳고 쓸 일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가정방문>이라는 첫 단편을 만들었다. 임신 기간에 편집했고, 애 낳고 미장센영화제 갔었다. 영화제가 꽤 즐거웠었다. 그 기억이 저를 계속 연출을 하게끔 이끌었던 것 같다.”
김도영 감독
Q. 강말금이 출연했던 단편 <자유연기>가 꽤 유명하다.
▶김도영 감독: “첫 단편 만들고 연극학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런데 연출을 너무 하고 싶어서 영화과 수업을 하나 들으면서 단편을 찍었다. 그걸 포트폴리오 삼아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 지원했던 것이다. 그 때 만든 작품이 <자유연기>이다. 경력단절된 배우가 오디션에 도전하는 내용이다. 사실 제 이야기이다. 애 낳고, 경력이 단절된 연극배우가 유명 감독의 오디션을 보러 가서 자유연기를 하는 것이다. 강말금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 해주었다. 이후 강배우는 김초희 감독 영화에 캐스팅되었다. 그 영화는 저한테도 많은 걸 가져다주었다. <82년생 김지영> 연출도 제안 받고.”
Q. 같은 여성서사를 다룬 <인턴>의 선우와 비교하자면?
▶김도영 감독: “경단녀 배우보다는 훨씬 성공한 여성이다. 남들 보기엔 성공을 했지만 늘 예민하게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불안한 여성이다. 그런 게 약간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자유연기>는 8년 전 작품이고, 오리지널 <인턴>은 11년 전 작품이다. 이런 이야기가 지금 한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여성을 많이 만나봤다. 굉장한 성취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자책하는, 아이를 키울 경우 그런 불안감이 더 크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항상 열심히 달려가지만, 자기에 대해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좀 많이 외로운 시대잖아요.”
Q. 아이, 육아 이야기를 하니, <인턴> 한국판에서는 아이 키우는 이야기가 빠졌다.
▶김도영 감독: “패션업계에서 자기 브랜드를 키워 가는 사람들을 인터뷰 해보니 아이가 있을 때는 양상이 다르게 펼쳐진다. 영화처럼 3년 안에 그 정도의 매출을 이루려면 정말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 그런 이야기까지 펼치자면 결이 복잡해질 것 같았다.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고, 이런 성장 드라마를 깔끔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 만나보면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토로한다. 아이를 많이 안 낳는 시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 '인턴'
Q. 한국적 상황을 설명하거나 보여주는 또 다른 설정이 있다면.
▶김도영 감독: “공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여기에 등장하는 소품은 다 국내 브랜드를 사용했다. 선우라는 인물 자체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세계적으로 키워 가고 싶은 꿈이 있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국내 브랜드를 쓰려고 했다. 핸드폰도, 노트북도, 의자, 조명, 소파 모두 국산 브랜드이다. 무엇보다 등장하는 인물이 정말 우리 옆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게 우리의 이야기이고, 한국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니.”
Q. 음, 그럼 왜 굳이 일본까지 가서 이자카야(일본식 술집)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김도영 감독: “일단 미국은 땅덩어리가 너무 넓어서 안 된다. 만약에 지방이라면 기호가 운전해야할 터인데 그건 너무 아닌 것 같았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정도라면 제주도가 적합한데 그곳에서 CEO를 만나는 것도 어색하다. 그래서 일본으로 결정된 것이다. 늘 있는 공간이 아닌 곳에 갔을 때 약간 마음이 열리고 솔직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일본으로 정했다.”
Q. 남편 직업이 교수이다.
▶김도영 감독: “일단은 제가 그 직업에 익숙하다. 강사이니 집안일을 하면서도 매일 나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교랑 바람을 피우는데 이것도 흥미롭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사실 아내가 돈도 더 잘 버니 신경 쓰일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 갔을 때는 그런 지위가 전복된다. 이 남자의 욕망이 여자가 단지 예뻐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결핍이 있다.”
Q. 최민식과 한소희의 이자카야 장면에 대해. 오리지널의 술 마시는 장면과는 다르다.
▶김도영 감독: “원작의 베드신도 그렇고 그게 좀 불편했다. 세월이 지나 시선이 달라진 것도 있고. 안전한 각색이라기보다는 그 장면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대본에는 ‘대표님. 만약에 대표님이 제 딸이라면 저는 이렇게 얘기했을 거 같아요. 정신 차려.’ 이렇게 나가는 것인데 선배님이 촬영 당일 소희의 얼굴을 먼저 찍어보자고 하셨다. 그 장면에서 한소희 배우가 예상치 못한 어떤 자극을 받으면서 큰 울림이 있는 연기를 펼친 것이다. 그날 선배님은 두 가지 버전을 찍었다.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 편집 때 그걸 선택한 것이다. 너무 선을 넘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그 판단이 훨씬 좋았다. 최민식 대배우는 한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고, 매번 아이디어를 갖고 오신다.”
Q. 이 영화의 주제를 감독이 직접 말한다면, ‘좋은 어른’에 대해서도.
▶김도영 감독: “기호와 선우가 서로에게 무언가를 준다. 서로가 그렇게 우정을 쌓는 이야기이다. 이자카야에서 했던 말은 선우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선우가 CEO발표를 하는 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했을 때 ‘네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그게 정말로 우리한테 하고 싶었던 말인 거 같다. 좋은 어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고. 일단은 선을 잘 지키는 것과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하고, 격려가 필요할 때 격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걸 기꺼이 좀 나누는 것이 좋은 어른이 아닐까.”
Q. ‘인턴’처럼 ‘만약에 우리’도 리메이크 작품이다. ‘만약에 우리’에서 보여주는 중국 청춘이 부딪치는 현실을 한국적 상황으로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도영 감독: “그렇다. 대륙의 그 느낌을 살리기가 너무 어렵다. 대륙의 그런 열차나 폭설이 우리에겐 없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느낌을 대체할 수 있을까. 대신 우리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리메이크를 할 때는 그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인턴>도 마찬가지이다. 뉴욕의 그 느낌, 실리콘밸리의 그 느낌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까. 이 이야기가 유효하려면 어떻게 바꿔야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Q. 창작의 영감은 어디서 주로 받는지?
▶김도영 감독: “영화 보면 에너지가 엄청 생긴다. 확실히 도움이 된다. 최근엔 ‘오디세이’나 ‘옵세션’ 같은 작품. 이런 영화를 보면 의식이 고양되는 것 같다. 좋은 작품 보려고 한다. 책도 읽고.” (감독님도 ‘옵세션’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그런 영화 좋아한다. 블랙코미디, 호러 이런 장르를 되게 좋아한다. 드라마를 한번 만들면서 인연이 닿아서 이렇게 온 것이다. 그러면서 공부도 많이 되었고. 기본적으로 그런 작품들을 굉장히 하고 싶다. 재밌어 한다.”
영화 '인턴'
Q.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김도영 감독: “시리즈물을 준비 중이다. 영화는 오리지널로 하나 만들고 싶다. 아직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말씀 드리기는 어렵다. 대단한 야망을 가진 게 아니라 이 이야기가 할 만한 이야기인 거 같아서, 도전이 될 것 같다.”
Q. 요즘 한국영화는 극장 공개 후 글로벌 OTT에서 공개되면 글로벌한 인기를 누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판 <인턴>의 경우 해외 영화팬의 반응이 어떨 것 같은지.
▶김도영 감독: “<인턴>은 우리와 거의 동시에 외국에서도 개봉하는 걸로 알고 있다. 외국 투자자가 와서 봤는데 와 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 우리 제품 쓰고, 한국 풍경 많이 담으려고 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문화권이든, 어느 시대든 소구될 내용이다. 인기가 있을 것 같다. 기대하고 있다.”
Q. 출판사라면 영세기업을, 패션업계하면 준재벌이 연상된다.
▶김도영 감독: “맞다. 기호가 다니던 출판사는 지도책을 만들던 곳이다. 지도는 요즘 유용하지 않다. 내비게이션이 있으니. 그런 게 기호의 존재와 겹쳐지는 것 같다. 한때는 유용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쓰임이 없다는 느낌.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극중에서 기호는 내비가 알려주는 길 말고 자신이 잘 아는 길을 찾아 운전한다. 그런 오래된 지혜, 아날로그 감성을 같이 표현해 보고 싶었다.”
Q. 한소희 배우의 매력은?
▶김도영 감독: 선우가 갖고 있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면모를 한소희 배우가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한소희 배우의 얼굴은 너무 좋다. 예쁘다고만 하기엔 부족하다. 예쁜 배우는 많지만 한소희 배우에게는 알 수 없는 음영 같은 게 있다. 그런 게 선우랑 잘 맞닿았다. 한소희 배우는 예술가적인 면모가 있다. 거실의 그림도 배우가 그린 것이다. 패션에 대한 감각은 말할 것도 없고.“
”이자카야 장면에서 좀 감동받았다. 자신을 내던지면서 연기를 했고, 생각보다 깡다구가 있다. 최민식 같은 선배 앞에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굉장히 가능성이 많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얼굴에 가림막이 없다. 투명하다. 어떤 색깔이든 넣으면 그게 다 나오는 배우이다. 굉장히 기대되는 배우이다”
김도영 감독
Q. 배우를 해봤으니, 감독이 되고 나서 다르게 보이는 것이 있는지.
▶김도영 감독: “연기자를 바라보는 눈이 되게 편안해졌다. 배우일 때는 너무 연기를 잘하고 싶었다. 연기를 하는 것 자체를 고뇌한 것이다. 연출이 되니까 그 자리가 엄청 편안하고 배우를 바라볼 때 되게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된다. 제가 컨트롤하는 걸 더 좋아하는 거 같다. 배우는 선택받아야함 하는 직업이다. 좀 더 주도적인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연출이 더 편안한 것 같다.”
Q. ‘자유연기’ 때 생각이 나는지.
▶김도영 감독: “영상원 두 번째 작품이었다. 중급과정에서 서너 개를 준비해서 교수님 찾아갔었다. 블랙코미디나 호러도 있었다. 그런데 ‘웬만하면 드라마 찍어라. 영화학교까지 왔으니 드라마 한 번 하고 가야지.’라는 것이었다. 저는 되게 엉뚱한 것 좋아했었다. 그렇게 드라마를 찍은 것이다. 어쨌든 내 이야기였기에 진정성이 있었고, 진짜 공부가 많이 되었다. 오랫동안 연기를 했고, 연기 선생을 했었지만 클라이맥스에서 배우에게 어떻게 지시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고민을 많이 했었다. 박종원 감독님 찾아가서 재촬영해야할지 물어봤다. 선생님이 ‘한 번 찍고 앞으로 영화 안 찍을 것이면 재촬영 하고, 계속 영화를 찍을 거면 한 학기 내내 그 장면을 어떻게 살릴 건지 고민하라’고 하셨다. 그게 도움이 되었다. 한 학기 내내 진짜 고민을 많이 했다. 연기 선생이 아니라, 연출자 마인드로 세팅된 것이다. 그전까진 약간 연기 선생님처럼 컨트롤을 했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다. 굉장히 공부가 되었다.”
최민식, 한소희가 주연을 맡고 <자유연기>, <82년생 김지영>, <만약에 우리>의 김도영이 감독한 영화 <인턴>은 2026년 9월 16일 개봉한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