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쉬리'의 박무영, '올드보이'의 오대수,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 '범죄와의 전쟁'의 최익현. 그리고 이순신과 홍범도를 연기했던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배우 최민식이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우리 곁의 아저씨로 돌아왔다. 할리우드 영화를 리메이크한 김도영 감독의 <인턴>이다. 37년 근무한 회사를 퇴직하고 신생 패션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하여 깐깐한 젊은 CEO 한소희와 3개월의 짧은 신세대 체험을 하게 된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중 소년'에서 소심한 인문대 교수 역을 맡아 연기생활 숨고르기에 들어간 듯한 최민식 배우로 다시 만나 연기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영화 <인턴>은 추석 시즌에 맞춰 16일(수) 개봉한다.
Q. 언론시사회에서 <인턴>을 보고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최민식: “내 연기를 보고 그런 게 아니라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며 뭉클해졌던 것이다. 애쓴 게 생각이 나서. 새 작품이 선보여질 때마다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우려도 된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항상 드는 생각인데 아쉬운 게 계속 보인다. 이렇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포만감보다 아쉬운 점이 많다. 어쩌겠는가. 100프로 만족하는 영화는 없다. 김(도영)감독 고생했고, (한)소희도 고생했다.”
Q. 영화의 중심에 최민식이 있다. 한소희 배우와의 연기는 어땠는지.
▶최민식: “좋았다. 언제 한소희 배우와 같이 작업해 보겠는가. 언감생심이지. 한소희 배우가 궁금했다. 그동안 밤길 가다가 마주치기 싫은 얼굴들, 그런 남자배우랑 작품을 많이 했었다. 전생에 무슨 복이 있어서 이런 기회가 다 있나. 세대가 다르니 잘 화합해서 열심히 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 친구 목숨 걸고 연기하는 게 보였다. 자기가 이 역할을 하고 싶다고 피력했으니까. 캐스팅 절대 권한은 감독에게 있다. 자기가 제일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선우’랑 비슷한 것 같았다. 까다롭지 않을까 했었는데 소탈하고, 쿨하고, 자세가 아주 좋았다. 그렇게 대해주니 선배로서 고맙죠.”
영화 '인턴'
Q. 김도영 감독과의 준비는.
▶최민식: “김 감독은 배우출신이다. ‘82년생 김지영’과 ‘만약에 우리’도 잘 봤다.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이 있고, 배우출신이기에 연기자의 심리상태를 잘 아는 감독이라 자리를 잘 깔아주었다. 그 위에서 잘 놀았다. 그래서 얻은 결과물이 이것이다.”
Q. 남성배우와의 장르물 많이 했다. 이런 작품을 택한 이유는?
▶최민식: “장르에 따라 더 힘들고 덜 힘들고 한 것은 없다. 삽질하고 도깨비와 싸우는 육체적 힘든 일은 없을지라도 예민하게, 감정선 놓치지 말아야하는 연기는 똑같다. 배우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창작하는 사람이 경계해야하는 것이 매너리즘이다. 이게 대중에게 어필할 작품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나 스스로 새로운 시도를 해본 것이다. ‘최민식이 저건 안 되네’ 소리를 듣더라도 한번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 자극제가 된다.“
Q. ‘리메이크 절대 안하겠다’고 말했는데, <인턴>이 힘들었는가?
▶최민식: “농담으로 한 말이다.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학작품과 음악을 보면 기존에 나온 작품들을 다시 만든다. 과거에 <햄릿>이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생각해 보라. 말론 브란드나 비비안 리의 연기를 뛰어넘는 배우는 없다. 그래도 스타니슬랍스키(Stanislavski)의 매소드 연기에 도전을 한다.”
Q. 한소희 배우와 MZ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느낀 것이 있는지.
▶최민식: “되게 유연하다. 그리고 쫄지를 않는다. 대담한 것이다. 내가 액션 연기할 때는 ‘레디~’ 할 때부터 떨고 긴장하다 NG냈었다. 그런데 젊은 배우들은 ‘감독님 한 번 더 할게요’ 이런다. 우리시절에 그랬다간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주저하지 않고 용감하게 표현한다. 나도 전염이 되어 그렇게 놀게 되더라. 이런 작품은 ‘계급장 떼고’ 이렇게 해야 한다.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감정신 있다. 그때마다 모드 전환을 해야 한다. 작품이 요구하는 것, 신에 따라 필요한 것을 찾아야한다. 후배와의 유대관계가 긍정적이었던 것은 작품과 관계가 있다.”
최민식
Q. ‘꼰대’의 이미지를 넘어 ‘좋은 어른’의 전범을 보여준다는 평가에 대해.
▶최민식: “갈등과 반목이 팽배한 시기에 좋은 리더가 사회를 잘 이끌었으면 하는 갈망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Q. 인생후배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민식: "퇴사하세요.“ (예?) ”아니 제가 뭐라고 뭐 이 시대의 젊은이들한테 뭔 말을 하겠느냐. 그런 감이 되나. 그냥 버티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말 하는 것도 좀 웃긴다. 그냥 알아서들 하세요. 제 경우를 비춰 봤을 때는 마음 가는 대로 해왔다. 그러니깐 후회는 없었다. 후회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다. 설령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내가 선택한 거잖아. 그러면 굳은살이 생기고, 다음에는 좀 더 신중해지고, 더 현명해질 것이다. 주변에서 어른이고 뭐고 간에 충고해 주는 거는 그냥 하나의 참고 사항일 뿐이다. 결국은 내가 직접 겪어봐야 된다는 것이다. 솥뚜껑이 뜨거운지 차가운지는 만져봐야 안다."
Q. 오리지널 <인턴>에서의 로버트 드니로와 차이가 있다면, 최민식 본인과의 차이는?
▶최민식: “극중 기호의 키워드는 ‘여유’이다. 최민식 같으면 그냥 사표 던지고 바로 나왔을 것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어린 친구들과 그러겠는가. 내가 뭐 굶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가 그 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옛날에 그가 근무한 곳, 그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고향집 가는 느낌이 들 것이다. 직장 문화가 다르니 못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한 번 들여다본다면 재밌을 것이다. (로버트 드니로가 보여준) 서양의 아저씨의 아우라 보다는 한국아저씨가 궁금하다. 영화 후반부에 조언하는 장면이 그렇다. 아버지 세대나 저희 세대나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것이다. ‘내 아들 같아서, 내 딸 같아서 하는 이야기인데...’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감정이입이 되어 ‘너 정신 똑바로 안 차릴래?’하는 것이다. 그게 우리 작품의 차이인 것 같다. 노(老)신사가 아니라, 한국의 아저씨인 것이다.”
영화 '인턴'
Q. <맨 끝줄 소년>에서도 직장인인 셈이다. 영화배우와 직장인을 비교해 보면?
▶최민식: “프리랜서가 좋다. 한 때는 직장이니 부러웠다. 영화사나 투자사 사무실을 가보면 각자 자기 자리가 있고, 책상엔 노트북이 있고, 모니터 옆에 인형이 있다. 달력도 놓여있고. 나도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한 번도 그런 걸 안해 봤으니. 그런데 뭐 좋아하지는 않는다. ‘실버 인턴’도 안할 것이다. 굳이 한다면 여행 좋아하니 여행사 가이드가 어떨까. ‘보거나 말거나, 그냥 몇 시까지 어디로 모이세요’하다가 바로 잘릴 것 같다.”(하하하)
Q. 개봉을 앞두고 새로운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긴장은 되지 않는지.
▶최민식: “솔직히 긴장은 안 된다. 대신 궁금하다. 우리나라 관객 분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봐주실지. 관객 분들한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추석 때 볼 만한 가족영화예요.’ 뭐 이런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궁금하다. 최민식이랑 한소희가 리메이크한 영화래. 궁금해? 그냥 한 번 볼까. 그런 마음으로 와서 보시면 좋겠다. 저희와 소통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관객에게 지지를 받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다.”
Q. 최고의 연기자 소리를 듣는 최민식 배우의 연기론은 어떤 것인가.
▶최민식: “지금부터인 것 같다. 그동안 많은 작품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각인된 작품이 있다. 그런 영화는 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훌륭한 감독과 훌륭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작품들이었다. 저는 제 역할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매너리즘에 빠지지 말자, 과거에 만족하지 말자. ‘내가 왕년에는 이런 작품 했었지’ 이런 마음먹으면 큰일 난다. 전 지금부터 보여드릴 게 더 많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더 좋은 작품에서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물로 소통하고 싶다.”
Q. 외길 연기 인생 말고, 다른 길을 걸었다면?
▶최민식: “대학 다닐 때 알바한 것 외에는 없다. 다른 건 생각조차 안 한 것 같다. 연기 말고 다른 것을 한다면, 그런 능력이 있다면 음악을 하고 싶다. 음악처럼 다이렉트로 꽂히는 게 없다. 직접적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어떻게든 사람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예술이다. 음악은 정말 위대하다. 클래식이든 팝이든 음악을 하고 싶다. 그런데 노래방 가면 점수가 영 안 나온다.”
Q. 이런 말랑말랑한 연기는 ‘꽃 피는 봄이 오면’ 이후 보기 힘들었던 것 같다. 보통 배우들은 강약강약으로 숨고르기를 하는데, 최민식 배우의 작품 선택은 어떤 식인가?
▶최민식: “내가 그렇게 고른다고 해서 와 주지도 않는다. 제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그 이야기가 저를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그 세상에 뛰어 들어가고 싶은 걸 선택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작품을 해 왔다.”
“괜히 겸손 뜨는 것이 아니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 ‘너무 좋다’가 아니다. ‘저걸 왜 저렇게 했지?’ 그런 게 보인다. 이번에 <인턴>을 한 것도 그런 매너리즘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이다. 나를 둘러싼 여러 이미지가 있잖은가. 이번에 그걸 확 뒤집어보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대중들에게 어필이 되든 안 되든 간에. 그런 시도 자체가 절 흥분시킨다.”
대한민국 명배우 최민식이 들려주는 인생수업 <인턴>은 9월 16일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