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가 곧 개봉된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줄곧 수정 보완작업에 매달렸던 나 감독은 기자시사회 이후, 그리고 기자 라운드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다시 미국으로 가서 후반/수정/보완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언론시사회 이후 이 영화는 전작(‘곡성’)과 비교하여 따로 해석하거나 의미부여할 여지가 거의 없는 액션일변도로 치닫는 SF로 소개되지만 나홍진 감독이 어디 가겠는가. 이날 나 감독은 인터뷰에서 몇 차례나 ‘Perspectiv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시선/관점’이란 뜻이다. ‘호프’와 ‘Perspective’의 깊은 뜻을 쫓아가보았다. 7일 진행된 인터뷰이다. 영화는 15일 개봉된다.
“공개된 후 올라온 리뷰를 찾아보고 있다. 아무래도 안 좋은 얘기에만 더 신경이 쓰인다.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 더 최선을 다해봐야죠.”
Q. 칸에서 상영된 뒤 어떤 부분이 신경이 쓰였는지.
▶나홍진 감독: “영화제 영화제를 다녀오느라고 두세 달 정도 손해 봤다. 그 부분을 만회해야 하는데, 배급사에서는 일정을 계속 당기시니까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되는 데까지 해야죠. 어제는 사운드믹싱 기사님과 전반적인 밸런스를 잡았는데 0.1데시벨을 올리느냐 내리느냐로 실랑이를 벌였다. 퇴근길에 제가 다시 올려달라고 했더니 삐지신 것 같다.”(웃음). “지금 미국에서는 DI(색보정) 작업 열심히 작업 중이고, CG도 몇 컷 수정하며 막바지 피치를 올리고 있다.”
'호프'
Q. 전작인 <곡성>의 도입부에는 성경 구절이 나온다. 이번 영화 <호프>의 마지막에도 성경적인 연출이 나오는데, 두 작품의 연관성이나 의도가 궁금하다
▶나홍진 감독: “이 영화를 몇 번 더 보시면 이해가 가실 것이다. <곡성>에서는 초자연적이고 토속 신앙적인 면에 ‘퍼스펙티브’를 을 두었다면, 이번 영화는 그냥 더 간결하고 과감하게 '성경 속 신(神)의 시선'으로 가보자고 과감하게 결정했다. 단편영화에서 이미 '믿음(Faith)'이라는 단어를 제목으로 써먹어서 이번에는 제목을 ‘호프’(HOPE)로 지었다. 제가 생각한 '믿음'과 '희망'은 (외계인)아이의 부활에 대한 간절한 믿음, 확신이자 증거이다. 아이를 부활시키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결국 '부활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 그 희망‘인 것이다. 이야기의 주체가 작품 속에서는 '쿠얼'인데, 그 존재가 전함(UFO) 침몰과 함께 사망에 이른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됨으로써 새로운 목적을 만들어낸다. 목수의 창고 속에 죽어 있는 그 아이가 희망일 수도 있다. 여기서 관객이 무엇을 대입해도 되는 상징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감독의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영화를 봐야할 것이다. 감독이 두 번 보면 달라질 것이라고 한 말이 과언은 아닐 것 같다)
Q. 이 이야기를 구상하시게 된 특별한 계기나 시발점이 있는지.
▶나홍진 감독: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해 왔다. 특정한 사건이나 소재 자체에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제 관심은 언제나 어떤 ‘Perspective’로 바라볼 것인가에 있다. 이번에는 세상의 모든 비극적인 것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희망을 찾아낼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곡성>을 거치면서 한 단계 더 나가고 싶었다. 종교적, 인간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주적인 공간이 가진 상징성으로 시선을 넓혀보고 싶었던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비극의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저라는 인간도 나이가 들다 보니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이 계속 바뀐다. 이것을 '심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시선이 계속 바뀌는 것 자체를 영화에 담아내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벅차고 충분한 작업이었다.”
Q. 1970~80년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인지. 또한 서양 외계인 세력이 변방 마을에 겹치는 그림에서 어떤 정치적인 잔상을 의도하신 것인지.
▶나홍진 감독: “종교적으로 볼 때 가장 누추하고, 가장 작은 곳에서 큰 희망이 비롯되기도 하고, 아주 사소한 것에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 양가의 컨셉을 담기에 과거의 고립된 시골이 효율적이라 판단했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다 터져서 영화 속 상황을 설명하기 너무 귀찮아진다.”(웃음) “시대적 배경은 그런 장치적 설정 때문이다. 서양 배우 캐스팅에 대해 많은 분이 제작비 출혈이 컸을 거라 짐작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그분들도 분량이 적고 인디펜던트 성격의 영화라는 걸 알고 시원하게 출연해 주셨다. 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시나리오 대신 전체 풀 스토리를 보내줬더니 흥미를 느끼고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다. 알리시아가 맡은 역할이 아주 파워풀한 주인공이었고, 알리시아가 결정되면서 남편인 마이클 패스벤더까지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다. 사실 황정민 선배님이 그 역할을 했어도 상관없었을 만큼 캐스팅에 거창한 정치적 의미가 있지는 않다.”
Q. 할리우드 스타들과의 작업 중 재밌는 일화가 있었다면 소개해 주세요.
▶나홍진 감독: “세트장이 파주에 있어서 일산의 한 호텔에 숙소를 잡아줬다. 그런데 밤 9시만 되면 호텔 바가 문을 닫으니까 마이클이 ‘여기 시골인가 보다’ 하더라. (웃음). 그래서 매일 횟집에 데려가서 소주를 먹였는데 나중에는 일품진로에 푹 빠졌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챙겨가서 마셨다고 할 정도로 너무 좋아하더라.”
나홍진 감독
Q. <추격자>, <곡성> 등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에는 오락성과 시각적 쾌감에 더 집중하신 듯하다.
▶나홍진 감독: “외계인이 등장하면서 영화의 사이즈와 비용이 커졌고, 그렇다면 더 많은 관객이 봐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이 영화를 준비하며 미국을 오갈 때,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만큼은 극장에서 관객들이 온전히 체험하고, 흥분하고, 아드레날린이 빵빵 터지는 쾌감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러닝타임이 길어서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받았지만, 그 시간 동안 관객이 완전히 몰입해서 쾌감을 느낀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경험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극장에서 음악을 체험하고 몰입하게 하려고 연출부와 스태프들이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Q. 논둑길의 색감부터 액션 신의 클로즈업과 롱샷까지 촬영이 엄청나다. 홍경표 촬영감독에게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는지.
▶나홍진 감독: “주문은 오직 하나, '체험'과 '스피드'였다. 여기에 올인하자고 했다. 홍경표 감독이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이 역동적인 움직임을 담아낼 기술을 찾기 위해 고민을 정말 많이 하셨다. 단순히 카메라를 돌리는 게 아니라, 쫓아가고 밀어붙이는 와중에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중반쯤에 찾아내셨다. 영화 속 모든 샷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일반적인 팔로우 샷이 아니다. 저걸 어떻게 움직여서 찍었지 싶을 정도로 희한한 시도들을 계속했다. 그 카메라를 원격 조종하며 피사체를 쫓아가느라 승합차 안에 촬영감독, 오퍼레이터, 저, 연출부, 녹음기사까지 좁게 ‘껴’ 탔다. 차 안의 나이를 다 합치면 거의 300살쯤 되는 양반들이 모여앉아 서로 구박하고 웅크려 찍던 그 과정이 정말 눈물 나게 재밌었다.”
Q. 예상치 못한 조역들이 극의 재미를 더한다. 특히 해술 역의 임현식 배우가 스토리의 핵인 것 같다.
▶나홍진 감독: “캐스팅 방향은 두 가지였다. 아주 사실적으로 가거나, 임현식 선생님처럼 재밌고 코믹하게 과장되게 가야한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다. 첫 리딩 때 대본을 읽으시는데 너무 웃겨서 난리가 났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대사를 하나도 못 외워 오시더라. (웃음). 젊으실 때부터 대사 긴 걸 못 외우시기로 유명하셨단다. 시선이 자꾸 프롬프터를 읽느라 돌아가고 배너를 만들어 돌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르신이라 짧게 딱딱 찍고 끝내야 하는데 촬영이 한참 길어졌다. 영화 보시면 그 신이 유독 어두운데, 대사 치는 게 느려져서 찍다가 해가 저버린 것이다. 촬영팀도 졸고, 다들 졸면서 찍었던 기억이 난다.”
'호프'
Q. 전반적인 스토리가 파멸과 파국에 가까운데 제목을 ‘호프’(희망)라고 정한 이유는? 이건 후속편이 나와야 이 제목이 온전히 성립되는 구조인데.
▶나홍진 감독: “그게 맞을 것이다. 뒤의 이야기들이 더 있으니까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매 순간 희망하지만 매 순간 좌절되는 연속을 보여준다. 외계인 여자의 입장에서도 불시착한 이후 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이 계속 무너져 내린다. 어쩌면 제목이 '되는 게 없네'가 맞을지도 모른다.” (웃음) “그래서 ‘호프’란 제목이 어울리지 모른다. 감독이 구구절절 말하는 게 구차하기도 하지만 제 입장은 그렇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가 액션/장르영화에서 스토리의 연속으로 이해하자면 뜬금없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상징성이나 은유,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감독의 변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겠다. 애초의 연출 의도는 초반 1시간 동안 관객은 주인공 범석(황정민)을 따라가며 상황을 접한다. 그러다 외계인을 해부하는 장면이나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웃을 수 있다.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하는 상황이 지나면서 사건의 원인을 보게 된다. (외계인)'아이'와 아이를 살해한 악이 나온다. 궁금증이 해소되는데, 그럼 그 전에 왜 몇 번 웃게 했느냐? 관객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죄의식이 생겨 죄책감을 느끼는 관객이 있느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메타포니까. 우리 플롯은 전혀 그렇지 않은 척하고 흘러간다. 그걸 느끼든 말든 상관없다.”
“죄책감을 느끼고, ‘긍휼함’이 생겨나야 정상일 텐데. 내막을 다 안 상태에서 성기(조인성)와 외계인간의 충돌이 다시 일어난다. 이제 정보를 알게 된 관객은 어떨까. 일반적인 영화라면 퍼스펙티브가 외계인 쪽으로 이동해야 맞지만 저는 계속해서 인간의 편을 들게 하는 지경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운동장을 이만큼 기울여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는지 정말 궁금하다. 40~50분 동안은 액션 영화인 척 몰아치기 때문에 관객들이 정신없이 빠져들지만 말이다. 외계인 아이 머리에 구멍이 난 것을 보여줬는데도 말이다. 그냥 영화가 ‘마구 달린다’, ‘죽인다~’라고만 말할 수 있는 상황인가? (외계인)엄마가 나온 게 뜬금없다 말할 수 있는가. 이게 영화이고, 이게 이야기인 것이다.”
Q. 황정민이 연기한 범석은 어떤 존재인가. 호포항의 외지인인가 아니면 토박이인가. 그리고 우주선 바닥에 있던 귀요미 같은 물체는 무엇인가?
▶나홍진 감독: “황정민이 연기한 범석이는 그 동네 토박이로 생각했다. 여동생이랑 같이 있다고 생각했고. 정말 극소수의 인물과만 교류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했다. 그 정도 설정이었다. 그리고 우주선 안의 귀요미는 죽은 아이의 애완동물이다. 죽은 아이 얼굴 다음에 그 걸 보여준다. 그 아이와 같이 친구처럼 지냈고, 지금 주인은 죽은 뒤 혼자 있다.”
어쩌면 지독히 불친절한 결말과 관련하여 “당연히 여건이 되면 2부를 만들 것이다.”고 밝혔다.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15일 개봉한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