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선영은 <동백꽃 필무렵>으로 알려지기 전 꽤 많은 영화와 TV드라마에 출연했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선우(고경표)의 엄마를 연기했던 배우이다. 남편이자 극단의 동료인 이승원 감독의 깜짝 놀랄 영화 <소통과 거짓말>과 <해피 버스데이>에도 출연했었고, 그의 세번째 영화 <세 자매>에서 문소리, 장윤주와 함께 내공깊은 연기를 선보인다. 아마 이승원 감독의 두 전작을 못 보셨다면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치열한 창작 열정을 이어온 이들의 신작 <세 자매>를 보게 되면 영화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질지 모른다. 27일 개봉되는 <세자매>에서 첫째 딸 희숙을 연기한 김선영을 만나 영화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기술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봤었다. 영화를 보다가 문소리가 연기한 미연에게 감정이 이입되더라. 남편도, 자식도, 동생도 미연에겐 너무 버거웠을 것이다. 그래도 ‘아임 파인~’하고 산다. 그렇게 사는 것을 보고 있으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계속 울더라. 육아도 하고 연기도 하는 입장에서. 버거운 삶에 대해 감정이입이 된 모양이다.”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는데.
“부산영화제 때는 영화를 보지 못했었다. 밤샘 촬영을 하고 부산에 내려갔다가 호텔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GV는 참석했다. 관객들이 끝까지 자리에 앉아서 저희들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전주에서도 상영되었는데 그곳에 사는 절친의 딸이 제 친구를 데려와서 함께 영화를 봤다. 고등학생인데 친구랑 둘이 ‘이모 영화 너무 좋았어요’ 하며 울었다. 그 친구들에게도 공감을 줄 수 있는 영화라 너무 기뻤다.”
● 극단 나베와 연극부부
영화 <세자매>의 이승원 감독과 김선영 배우는 2014년 극단 나베를 창단한 후 '모럴 패밀리', '예술이 죽었다', ‘인방갤’ 등을 공연하며 꾸준히 연극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영화 <소통과 거짓말>과 <해피 버스데이>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연극으로, 영화로 함께 작품 세계를 이어가고 있다.
- 인생의 반려자이자, 영화작업의 동료인 이승원 감독을 소개하자면.
“영화판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극계에서는 나름 이름이 있다. 극단 나베에서 활동한다. 내가 나베 대표이다. 이승원 감독이 작(극본)과 연출을 담당한다. 이 사람 작품을 너무 좋아한다. 쉽게 말하면 블랙코미디를 잘한다. 내가 굉장히 좋아한다. (김선영 배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분명 너무 슬픈데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 헛웃음일 수도 있고. 계속 울기만 하는 건 좋지 않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고. 그런 접근이 좋다. <소통과 거짓말> 내가 제일 좋아한다. <세 자매>도.”
“만나서 맞춰진 부분도 있겠지만. 생각이 열려있다. 작품을 보는 시선이나 연기를 보는 시선, 좋아하는 배우나 감독이 신기하게 잘 맞다.”
● 세 자매와 김선영
- <세자매>에서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딸(김가희)에게 말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영화에서는 줄곧 사람의 눈을 피하고 의기소침해 있다. 그런 캐릭터를 어떻게 연기했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날 안 싫어할까?’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희숙이 그런 대사를 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제 연기는 본능이다. 아마도 그 때 희숙이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쑥스러웠을 것이다. (집 나가겠다는 딸을) 가지 말라고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이유도 없다. 자신이 그 자리에서 암으로 툭 쓰러져 죽을 수도 있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딸한테 진심으로 한 말이지만 딸에게는 상처가 될 것이다. 눈을 마주치면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 것 같아 감추려고만 할 것이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래서 계속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런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지 않을 줄 알고. 그러면 더 싫어하는데 말이다.”
- 극단 나베에서 남편은 작품 연출을, 김선영 배우는 배우들의 연기지도를 담당한다고 했다. 역할분담은 어떻게 이뤄진 것인가.
“연출은 전체를 다 봐야 한다. 나는 배우들의 연기에만 집중해서 연기지도를 한다. 연기선생님이랑은 또 다르다. 극단나베는 공연을 할 때 연출과 연기디레팅이 정확히 나눠진 극단이다. 연기를 할 때 엄청 관찰해야한다. 우리 극단은 10년이 되었다. 우리 극단 연기 잘 한다고 칭찬 듣는다.”
-실제 가족간의 관계는 어땠나.
“언니가 저를 키우다시피 했다. 연기를 하라고 용기를 북돋워준 것도 언니였다. 눈물 날 때가 있죠. 이번 작품에서 세 자매의 첫째를 연기했다. 가족들의 짐이 되는 첫째이다. 둘째(미연)를 만나는 연기를 할 때 제 마음이 그랬다. 우리 언니가 날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생각이 들더라.”
(최근 어깨를 다쳤다면 ‘좀 풀게요’라며 몸 풀기를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알려지면서 먹고 살게 되었다. 이번 작품에서 사투리를 해야 할지 고민되었다. 많이 비슷해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돈은 벌어야하고. 제가 가장이에요. 그래서 돈도 벌 수 있는 현장을 제일 좋아한다. 연기자는 축복받은 직업인 것 같다. 너무 좋아서 하는 직업이니. 그런 특권을 가진 것은 축복 받은 게 분명하다.”
● 연기의 신천지, 동백꽃의 영광
- 연기/연극의 세계는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는지. 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완전 시골 출신이다. 극장도 없는 곳이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이 ‘너네 졸업하려면 연극 한 편 해’라고 하셨다. 사춘기 때였다. 무대 올라가는 게 짜증날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연출을 맡았다. <맹진사댁 경사>를 내가 골라서 준비를 했다. 의상 제작하고, 공연을 했다. 딱 한 한 차례 공연한 후 무대를 뜯는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때 결심했다. ‘연출, 연극연출해야겠다’고. 연출을 공부해 보니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게 연출이 아니더라. 더 복잡하고, 더 큰 문제였다. 머리 아파 못하겠더라.”
KBS드라마 [땐뽀걸즈]의 김선영
- 지금껏 연기해온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대표작, 캐릭터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KBS 8부작 <땐뽀걸스>에서 시은(박세완 분)엄마 박미영이다. 그 연기가 개인적으로 좋다. 지금도 심심하면 클립 찾아본다. 봐요. 조선소 용접공이었다가 정리해고 당하고 하청업체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그런 싸움 하시는 분 많으실 것이다. 사회적으로 마땅히 도와야하는 인물을 처음으로 연기했다.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순간이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제가 참여한 작품에 애착이 크다. 동영상을 찾아 제가 했던 연기를 계속 본다. <동백꽃 필 무렵>은 구룡포에서 찍었는데 정말 어디 휴가라도 간 것처럼 즐거웠다. 출연 분량도 얼마 안되고 분장도 2분이면 끝났다. 동료배우 아줌마들이 절친이었다. 휴가 같은 작품이었고, 반응도 너무 좋았다. 그걸로 광고도 찍었다. 제겐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 이승원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 때 도움을 주셨는지. 바닷가 장면은 어디였는지. 가족의 고향이 어디라든가 하는 그런 설정이 있었는지.
“시나리오 작업할 때 의견을 많이 나눈다. 1년 넘게 준비하며 초고, 2고를 할 때마다 의견을 줬다. 문소리 언니도 의견을 많이 줬고. 하나하나 수정해갔다. 양양에서 찍었다. 설정은 딱히 없었다. 경상도 어디 군 단위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 세 자매의 연기는 감정 소모가 극심했을 것 같다. 작품 하나가 끝나면 빠져 나오는 건 빠른 편인지.
“이번 작품에서 감정 소모는 없었다. 1년이나 묵혔던 작품이라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에 자리 잡은 작품이었다. 크랭크인 들어가기 전까지 그렇게 보냈고, 촬영 들어가면 테이크 그냥 슛하고 끝. 그렇게 감정이 정리된 셈이다.”
- 김선영 배우에게 인생작품은
“넷플릭스에 있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Unbelievable), <그리고 베를린에서>(Unorthodox),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해피엔드>. 하네케 감독의 이전 작품은 별로인 것 같다.”
“저는 인생작이 매일 바뀐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르마조프의 형제>도 좋아한다. 어떤 작품을 볼 때 인물을 깊이 있게 표현하고 해석한 작품을 좋아한다. 배우이다 보니 그런데 더 관심이 많다. 저렇게 한 인물을 깊이 있게 파고들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다니. <해피 엔드>의 배우가 그런 것 같다.”
- 희숙의 삶이 참 힘들다. 결혼도 형편없는 남자와 한 것 같고, 딸은 잘 키워야 할 것이다. 이런 지옥 같은 삶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아빠에 대한 응징이라든지, 결말을 어떻게 할지. 의논 나눈 게 있는지.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다. 문소리 언니랑 감독이. 난 첨언하는 정도. 이 영화가 그런 아버지를 비난하고 응징하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면 안했을 것이다. 어마 무시한 용서의 이야기도 아니고, 딱히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용서가 있다. 결론 없는 해프닝이지만, 균열 속에 각자 다른 느낌을 묻어둔 용서이다. 넓게 해석하면 사랑일 것이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셋째를 연기한 장윤주에게 연기 디렉팅을 했단다. 장윤주씨는 처음에 문소리, 김선영 배우가 자신을 무서워하기도 했다고 하시던데.
“윤주가 농담한 것 같다. 윤주가 워낙 톱모델이고 처음에 이 작품을 고사를 하였기에. 어떻게 하면 장윤주를 꼬실 수 있을까. 연기 때문이라면 제가 디렉팅 경험이 있으니, 신뢰가 있다면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장윤주 배우는 천재였다. 흡수력이 어마어마했다. 톱클래스 모델로 대단한 창조자들과 함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일을 해왔다. 추상적이든 직접적이든 디렉팅을 바로 소화해 낸다.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 향후 연기계획은 극단나베 상황 좀.
“매년 한 작품씩을 한다. 올해도 신입을 뽑아 한 작품 올릴 예정이다. 그게 무슨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다. (이)승원씨가 써야겠죠. 다음 출연작은 정해지지 않았다. 저는 작품이 넘쳐나는 배우가 아닙니다.”
- 최근 들어 조연상 트로피를 휩쓸고 있다. 비결이 있다면.
“꿀맛입니다. 비결이라기보다는 어부지리 덕도 있다. 참여한 작품이 잘 된 덕분이다. <동백꽃 필 무렵>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제 연기를 잘 보아주시고, 상 주신 분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 연기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나신 것 같다. 연기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매 순간 애써 생각하지 않고, 느껴지는 만큼 움직이려고 한다. O.K.가 아니어도 스스로 연기를 하면서 넓어지는 것 같다. 깨지기도 하지만 다른 표현을 배우게 된다. 연기에 대한 욕망을 자꾸 억누르면 안 될 것이다. 배우는 감정을 재료로 해서 드러내야 하니깐. 그 점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있는지.
“그건 아니다. 선구안이라기보다는 그분들이 저를 캐스팅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제가 무슨 작품을 선택할 처지의 배우가 아니다. 정말 가끔 선택할 때가 있을 때는 더 재밌는 작품을 하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누구랑 하는가이다. 상대배우가 중요하다. <내가 죽는 날>은 김혜수 배우 때문에 대본도 안보고 한다고 했다.”
“연기가 제일 재밌어요.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의 하나가 연기이다. 눈물 흘리고 고통스러운 게 많다. 배우는 한 인물을 이해하고 연기해야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실제 김선영씨는 어떤 사람인가.
“엄마한테 무뚝뚝한 딸이다.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쁘고. 애교도 많다. 욕도 잘하고. 버라이어티하다. 그런 것을 안다면 절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은 아내이고, 멋진 엄마이다. 항상 행복하려고 노력한다. 딸에게 항상 그렇게 이야기한다. 좋은 엄마, 멋있는 엄마, 최고라고.”
최고의 배우 김선영이 출연하는 이승원 감독의 괴물 같은 작품 <세 자매>는 27일 개봉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김선영, 영화 '세 자매' 스틸컷/ 리틀빅픽쳐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