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자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의 군상이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인물의 삶은 도심에 별안간 나타난 '불괴물'의 습격으로 인해 송두리째 바뀐다.
‘스트레스 제로’(감독 이대희)는 주인공 '짱돌'이 친구 '고박사', '타조'와 함께 불괴물과 싸우며 세상을 바꿀 히어로로 변모하는 재밌는 상상이 담겨 있다. 스트레스가 만연한 현 사회에서 타인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상의 히어로들이 가득한 지금 무엇보다도 와 닿는 작품이자 우리 사회를 둘러보게 하는 작품이다.
Q. 본인 또한 스트레스를 받는 근로자이자 가장이지 않나. 주인공과 많이 닮아 있는 모습이다. 짱돌의 캐릭터 설정에 있어 본인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궁금하다.
전작들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나에게서 출발했다. 영화를 제작하며 금전적인 압박에 집도 팔고 얹혀살던 때도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스트레스에 대한 영화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러다 둘째 아이랑 오빠랑 싸우는데 장난감 뺏기니까 둘째가 자지러지면서 울더라. 그 모습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불괴물을 그렸다. 처음에는 음료가 아닌 알약을 먹고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디어였다. 기획서를 PD와 상의하는 과정에서 “알약이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피드백이 나왔다. 그 대신 음료수로 제안해줬는데 좋은 아이디어 같아서 그 설정으로 제작이 시작됐다.
Q. ‘스트레스 제로’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인 짱돌, 고박사, 타조는 저마다 색다른 매력이 담긴 캐릭터들이다. 각자 히어로로서 역할 분담 또한 잘 되어있다. 이 캐릭터들 또한 본인의 모습에서 탄생된 것인가.
세 명이 다 특징이 각각 있다. 고박사는 발명품을 만들고 성공에 대한 욕구가 있는 인물이다. 나 또한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짱돌 같은 경우는 나처럼 가장으로서 아이들에게 훌륭하게 보이고 싶고 책임을 다하고 싶어한다. 타조는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서 한량처럼 살고 싶어한다. 이것 또한 내게서 나온 희망이다.(웃음) 나에게서 나온 캐릭터를 삼총사로 쪼갠 것이고 또 다른 캐릭터인 준수도 내 안에서 출발했다.
Q. 본인에게 나온 부분들이 들을수록 흥미롭다.(웃음) 그렇다면 본인이 짱돌의 입장이 되었을 때 짱돌처럼 히어로가 되는 선택을 내렸을 것 같나?
히어로가 되고 싶진 않다. 내 몸이 위험해지고 가족 또한 위험에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마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집을 팔던 경우랑 비슷하다. 세상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게 구성되어있지 않다.
Q. 전작 ‘파닥파닥’으로 동심 파괴 애니메이션 창작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어른들과 아이들 모두를 위한 영화라 그 별명을 피해갈 것 같은데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가.(웃음)
‘파닥파닥’을 기획할 당시에 아이들이 볼 줄 몰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관객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영화 제작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다음 영화는 꼭 모두가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아빠가 되어보니 더 그런 마음이 든다. 어린이들만을 위한 영화는 아빠 입장에서는 같이 가서 보기 힘들더라. 그러기에 '스트레스 제로'에는 '짱구'처럼 아이들과 어른들이 동시에 볼 수 있는 코드가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라는 주제 또한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동시에 이해되는 주제이지 않나. 그리고 영화 내용처럼 '아이들에게 멋있게 보이는 어른'은 아빠에게 있어서 하나의 판타지지 않나. 물론 아이들에게 멋있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가장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아니다.(웃음) 예전에 아이들에게 내가 히어로처럼 멋있었던 적이 없냐고 묻자 “그런 적 없다”고 말하더라.(웃음) '스트레스 제로'는 나 같은 아빠들의 판타지를 자극할 수 있을 것 같다.
Q. 평소 ‘DH LEE 이대희’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스트레스 제로’에 대한 이야기도 업데이트한 것을 봤다. 앞으로도 ‘스트레스 제로’를 비롯한 영화 이야기에 대해서 풀어놓을 예정인가?
그렇다.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는 해외와 달리 비주류 장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층이 넓지는 않음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다고 생각한다. 직접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다. 우리는 이렇게 재밌는 것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유튜브를 달팽이처럼 생각하고 있다. 느리더라도 10년, 20년 꾸준히 자료를 쌓다 보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이 없나’라고 유튜브에 검색하는 이들에게 내가 올린 현장 사람들의 인터뷰나 디테일한 속내 같은 것들이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
Q. 요즘 의료진들과 같이 수많은 일상의 히어로들을 목격하는 시국이지 않나. '스트레스 제로' 또한 겉보기엔 일반적인 히어로물 같지만 평범한 주인공들이 타인들을 구하는 데 앞장서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진정한 히어로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트레스 제로’의 주인공들은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원했던 원하지 않던 사람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히어로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단 하나라도 시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자기가 힘들겠지만 타인을 위해 그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진짜 히어로라고 생각한다. (KBS미디어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