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세계
일본 드라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카모토 유지가 극본을 맡은 작품들을 하나쯤 마음에 담고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 일드 <도쿄 러브스토리>부터 시작하여 한국에서 리메이크 된 <마더>, <최고의 이혼> 같은 드라마와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괴물>까지. 스토리텔러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카모토 유지의 최신작 <짝사랑세계>가 내일(23일) 개봉한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도이 노부히로가 감독을 맡았으니 어떤 영화가 될지 감이 올 것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있다면, 이 리뷰를 읽지 말고, 사전정보 없이 극장에 가는 것이 더 좋을지 모른다. 영화의 감성은 중요한 설정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라복을 입고 합창연습 중인 학생들을 비춘다. ‘카사사기 아동합창클럽’에서 소녀 미사키가 책상에 앉아 연필로 또박또박 글을 쓰고 있고, 그 한쪽에서는 텐마가 피아노 연습 중이다. “당신이 없는 세상에 제가 갈 곳 따위는 없습니다.”라고 마지막 문장을 써내려가는 소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그리고 강당에서는 합창대회에 나가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너무나 인상적인 인트로가 끝나고, 이제 12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 날 그 장소에 있었던 어린 학생들의 현재 모습을 만나게 된다. ‘아그리피나 왕비의 짝사랑’이라는 거창한 음악극 이야기를 노트에 썼던 미사키(히로세 스즈)는 유카(스기사키 하나), 사쿠라(키요하라 카야)와 한 집에 살고 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은 여느 청춘과 같다. 룸메이트의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고, 아침을 함께 준비한다. 각자 사무실에 출근하고, 수족관에서 일하고, 대학교에서 물리학수업을 듣는다. 어느 날 이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 옛날 미사키의 ‘꼬르륵’ 소리를 듣고 피아노실에서 조용히 사라졌던 텐마이다. 이제부터 미사키의 짝사랑, 미사키-유카-사쿠라의 짝사랑세계가 펼쳐진다.
이 정도 줄거리면 전형적인 청춘로맨스물일 것이다. 어쩌면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사카모토+고레히라 버전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들은 어느 순간 놀라운 설정의 비밀을 알게 된다.
짝사랑세계
● 12년의 강한 유대감
영화원제(‘片思い世界’)는 글자 그대로 '짝사랑 세계'이다. 일방적인, 애달픈 ‘원사이드 러브’일 것이다. 미사키가 12년의 세월을 가슴에 품은 텐마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감정이 로맨스물에서 만나는 사랑이 아닌 것 같다. 그것도 미사키만의 감정이 아니다. 같은 과거를 기억/공유하면서, ‘그 나이가 되도록’ 함께 룸메이트로 머물고 있는 청춘의 형편인지 모른다. 청춘들의 위태로운 관계를 이야기하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 소외감, 고독, 그리고 각자의 마음이 서로에게 온전히 닿지 않는 현대 사회의 쓸쓸한 단면을 이야기한다?
‘짝사랑’은 쓸쓸하고 애틋하다. 그 대상이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거나 내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영화에서는 사쿠라가 강의실에서 ‘소립자 물리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라디오에서 듣게 되는 허황한 이야기와 함께. 세상의 엇갈린 공간에 소립자들이 비집고 들어가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다다를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일방향으로 날리고 있는지 모른다. 물론, 이 영화는 사카모토 유지가 해석하는 ‘아그리피나 왕비의 짝사랑’이다.
영화를 보게 되면, 미사키, 유카, 사쿠라와 함께 소립자여행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 그렇게라도 텐마의 진심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짝사랑세계>는 만나보기 어렵고, 만나서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마음의 문을 함부로 열 수 없는 세계이다. 이 영화는 로맨스도, SF판타지도 아니다. 사카모토 유지이다! (2026년 6월 24일 개봉/12세이상관람가/126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