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감독 - 이지현 작가
봉준호 감독의 걸작 한국영화 <살인의 추억>(2003)은 당시 장기 미제사건으로 유명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진범이 잡힌 지금은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린다. 이 이야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명감독의 걸작영화가 엄존하는데 드라마라니? 세간의 우려를 불식하며 '걸작드라마'로 완성되었다. 시청자의 호평을 받은 드라마 <허수아비>를 연출한 박준우 감독을 만나 ‘사건과 드라마’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 자리에는 극본을 담당한 이지현 작가도 함께 했다. 박준우 감독은 <닥터탐정〉(SBS), 〈모범택시〉(SBS), 〈크래시〉(ENA), 〈메리 킬즈 피플〉(MBC) 등을 연출했었다. 경향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예전에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었었고, 드라마 연출로 넘어와서는 [크래시]와 [메리킬즈 피플] 같이 무겁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논란이 되는 소재를 하게 되었다. 노력하였다기보다는 성향이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강태주(박해수)가 1988년 경찰이었을 때, 그가 잘못 수사했던 사건에 대한 회고록이다. 범인 이기환(정문성)을 만나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되돌아보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두고 이야기를 한다.”
Q. 강태주(박해수)와 차시영(이희준)은 학폭관계로 시작된다.
▷박준우 감독: “학폭관련 이야기와 준영과 순영의 관계는 작가의 아이디어였다. 소재와 방향성을 말하였고, 시대적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지현 작가: “두 사람의 관계와 관련하여 감독이 이춘재 이야기와 함께 꼭 넣었으면 하는 두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이야기와 아이의 시신을 땅에 묻는 것. 그 두 이야기를 꼭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그 일을 하는 주체가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거절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쓰게 되면서 주인공이 그런 일을 하려면 어떤 상황이어야 할까. 학폭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수사를 하게 된다면? 범인을 잡아야하는데 가장 증오한 사람과 수사를 하게 된다면? 감정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끌고 갔다. 물론 태주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었지만.”
'허수아비'
Q. 우선 이 질문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의 출중한 작품 <살인의 추억>이 있는데 대중문화에서 드라마로 다시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쉽게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는지.
▷박준우 감독: “<살인의 추억>은 너무나 뛰어난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상태이다. 작가에게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자고 제안하면서부터 쉽지가 않았다. 주변에서 모두가 그랬다. 제작사에서도 이건 불가능하다고들 했다. 나름 설득한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살인의 추억>이 뛰어나지만 반대편에서 이 소재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주변 설득이 안 된 것이다. <모범택시> 말미에 윤성여 선생님(임성만 케이스)과 김용복(8살 피해자 故 김현정의 아버지) 선생님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두 분을 만나 뵙고 이런 일이 있었구나. 꼭 해야겠다는 욕구가 있었다. 작가의 대본작업은 설득의 과정이었다. 내가 사비를 들여 각본을 준비했다. 어렵게 시작되었고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단지, ‘살인의 추억’ 이야기의 재탕이라서?) “주변에 대본을 보여주었을 때 반응이 똑 같았다. 어둡고 슬픈 내용이라고. 친구이기도 한 허정도 배우 (차준영 역으로 나온다)는 이건 안 된다. 너무 우울하다고 그랬었다.”
Q. 이 정도 내용이면 넷플릭스 같은 OTT에서도 탐을 냈을 것 같은데?
▷박준우 감독: “사실 넷플릭스에도 갔었다. 너무 우울하고 무거운 이야기라고 했다. 내용은 좋은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때 장경익 대표와 연결되었다. 다른 제작사에 있을 때인데 이 대본을 좋아했다. ENA와 하게 되면서 제작이 시작되었다. 지니(KT스튜디오지니)가 판단을 잘 해준 것 같다. 다른 데서는 거절당했다. 그렇게, 5년 전, 2021년 5월부터 시작된 일이다.”
Q. 보통 스릴러에서는 범인의 정체를 언제 밝히느냐가 관람포인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경우는 어땠는지.
▷이지현 작가: “처음 기획할 때부터 범인을 끝까지 밝히지 않고 끌고 갈 생각은 없었다. 정문성(이기범)이 캐스팅된 것이 스포라고 생각한다. 그 배우가 그냥 단역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범인을 7부에 밝힌 것은 기환이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보여 극대화시켜 공개하려고 한 것이다.”
Q. 제목 ‘허수아비’가 뜻하는 것이 있다면.
▷이지현 작가: “제목에서 쓰인 ‘허수아비’는 이야기 전개 단계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초반은 범인이 허수아비 행세를 하면서 살인을 저지른다. 극을 이끄는 허수아비이다. 중반 이후에서는 사람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하는 경찰과 공권력을 내세워 극을 이끈다.”
Q. 마지막 회에서 태주가 꿈을 꾸었다며 돌잔치에 강성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다 모이는 장면이 있다. 그 곳에 차시영도 있다.
▷이지현 작가: “그 자리에 강성의 모든 사람이 나왔으면 했다. 살인범이 아닌 기환이도 있다. 평화로운 강성에서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시영과 태주는 절대 화해할 수 없는 관계지만 마지막에 가서 태주가 둘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자며 손을 내민다. 그 전에는 항상 시영이 손을 내밀었다.”
▷박준우 감독: “그 장면에서는 피해자들의 모습도 다 보여준다. 그 장면을 두 번을 촬영했다. 아기가 너무 울어서 마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곡성에서 다시 모여 힘들게 완성한 장면이다. 힘들게 찍느라 배우들을 다 부르지 못했다. 마지막 회 방송 끝나고 전화가 왔었다. 악질 형사로 나왔던 전재홍(장명도 역)과 김은우(도형구 역)였다. 왜 우리는 안 나오느냐고. 미안하다고 그랬다.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했다.”
박준우 감독
Q. 박해수 배우와 이희준 배우의 연기가 최상이었다.
▷박준우 감독: “두 배우와는 처음 작업한 것이다. 박해수 배우에 대해서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 인성도 좋고 성실해서 현장에서 모범이 되는 배우라는 것이다. 그날 기분에 따라 태도가 바뀌지 않는 배우이다. 힘들어도 짜증 안 내는, 항상 재밌는 이야기를 하려고 애쓰는 배우이다. 체력도 엄청 좋다. 어떤 날은 30신을 몰아 찍은 적도 있다. 정문성 배우와 익산저수지에 밤새 찍을 때 체력과 정신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희준 배우는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았더라. 고등학교 1년 후배였다. 그런 인연도 있는 배우인데 연기를 너무 잘한다. 이희준 배우는 철저하게 준비하는 배우이다. 자기가 연기 선배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부단히 노력한다. 작품 끝나고 사석에서 이희준 배우는 작년 한 해 제일 행복한 게 10부에 나온 석양 대결 장면이었다고 하더라. 대결신이 3페이지였는데 둘이서 완벽하게 준비해왔다. 디테일하게 준비한 것이 방송할 때 다시 보니 나타나더라. 언제부터 연기를 그렇게 잘했냐고 물어볼 만큼 훌륭하다.”
“정문성 배우도 그랬다. 연기할 때 서로 연기에서 안 지려고 하는 팽팽한 기 싸움을 느낄 수 있었다. 테이크가 끝나면 서로 형동생 하는데 촬영할 때는 자기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경쟁하는 것 같았다.”
Q. 진범 이춘재를 모티브로 한 이기환과 이기범이 형제로 그려진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 기범의 아들 영범의 운명이 너무 잔혹했다.
▷박준우 감독: “이 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에서 재수사했을 때 당시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수십 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범인이 안 잡히니 광범위하게, 강압적으로 수사를 펼치며 피해자가 양산된 것이다. 기범이 같은 젊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드라마이기에 그 부분을 허구로 만든 것이다.”
'허수아비'
Q. <살인의 추억>과 <허수아비>를 비교하면 <허수아비>는 진실이 드러난 이후, 진범이 잡힌 뒤의 이야기가 있다. 그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박준우 감독: “당시에는 태주 같은 인물은 없었다. 허구인 셈이다. 태주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라 보고 (대본에서)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중드라마의 한계가 있다. 허구지만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미안하고, 위로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현정양 케이스도 사건화가 되지 않았다. 윤성여 선생도 재심에서 달라졌지만 사건관련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지금 잘 살고 있다. 아무런 반성도, 변화도 없이. 그래서 드라마에서라도 해보고 싶었다. 범인이 누군지 궁금한 것은 재미 요소일 것이다. 그 너머로 1980년대 우리가 어땠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지현 작가: “강태주가 옳은 선택을 했다. 무결한 사람이 잘못을 바로 잡는 게 아니라,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바로잡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허용한 단 하나의 판타지이다. 나중에라도 그런 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것을 비극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바로 잡으려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고,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한다. 태주는 직업과 사회적 명망을 잃었지만 가족과 지인을 옆에 두게 되니, 우리가 허락한 안정감, 보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Q. 이지현 작가에 대해.
▷박준우 감독: “이지현 작가는 <모범택시> 후반부를 썼었다. 신인일 때 빨리 당겨온 것이다. 작가 일을 잘 한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일이 안 풀릴 때도 성품이 순하시다. 장점은 빌런 대사를 악랄하게 잘 쓴다는 것이다. 차시영이 기범이게 ‘이 애미가 괴물이네’ 같은 대사처럼. 대사를 못되게 잘 쓴다. 사람 속을 뒤집는 대사에 일가견이 있다. 로코 사극을 하겠다는데 나는 장르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쁜 놈 서사에 탁월하다”
Q. 드라마 피디보다 시사교양 피디가 먼저였다.
▷박준우 감독: “2004년 SBS 시사교양팀에 입사했다. 드라마팀 떨어지고 재미없는 시사교양팀에서 지내다가 스스로 한계에 봉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것 해보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운 좋게 드라마국에 전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적응을 못해 고생했었다. 드라마 첫 작품이 <닥터 탐정>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 때 맡은 아이템 중 기억나는 것은?) “문경십자가사건이랑 신정아 출소 하는 것. 주로 안 좋은 것들을 찍었다. 벌써 15년 전 이야기이다.”
이지현 작가
Q. 그런 백그라운드가 도움이 되는지.
▷박준우 감독: “<그알> 경력이 이렇게 드라마할 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직간접적으로 얻은 게 많다. 그런데 드라마에 그런 성향이 강해지면 안 된다. 내용이 무거워지고 싫어한다. 드라마 시켰는데 다큐를 하냐는 소리를 듣게 된다.”
Q. 좋은 작품이지만, 실제 사건,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드라마로 만들 때는 책임과 윤리 문제가 따른다.
▷박준우 감독: “그렇다. 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올 경우 예민하다. 잘 다뤄야한다는 강박이 생길 수밖에 없다. <허수아비> 출발이 그랬다. 그분들(피해자 가족)들도 이 드라마를 볼 터인데 그분들이 잘 볼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지금도 전화로 물어본다. 그분들은 자기 이야기이니까 입장이 있을 것이다. 그 맥락을 훼손하지 않고 잘 전달하고 싶었다.”
Q. 향후 계획은?
▷박준우 감독: “90년대 배경의 ‘허수아비’ 사건 자료를 줬는데 작가가 거절하더라. 다시 생각해보라며 또 줬다. 다음 작품은 <허수아비> 연작은 아니다. 조금 밝은 것으로, 편하게 보실 수 있는 2000년 대 초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전작 <메리 킬즈 피플>은 안락사를 다룬 작품이었다. 반응이 좋지 않아서 다음 작품이 걱정이 되었다. 아직 나이 50이 안 되었는데 말이다. 앞으로 몇 작품 더 해야 하는데. <허수아비>도 유쾌하게 즐겁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어서 다들 걱정했다. 나랑 오래 같이 작업한 백현진도 ‘너 안 되겠다’하였다. 물론 잘 되니 다행이라고 이야기해 준다.”며 박준우 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쉰다.
2026년 4월 20일 ~ 2026년 5월 26일 ENA 월화드라마로 방송된 <허수아비>(12부작)는 지니TV와 티빙에서 볼 수 있다. 출연: 박해수, 이희준, 곽선영, 송건희, 서지혜, 정문성, 백현진, 유승목 등
[사진=스튜디오 안자일렌/KT스튜디오지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