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영화 <부산행>과 애니메이션 <서울역>, 그리고 <반도>에까지 K-좀비와 사투를 펼치고 있는 연상호 감독이 다시 한 번 좀비를 스크린으로 불러냈다. 이번에는 ‘좀비’의 전염과 진화 속도에 초점을 맞춰 한결 다이내믹한 추적전을 펼친다. 영화 <군체>의 개봉을 앞두고 ‘좀비 마스터’ 연상호 감독을 만나 좀비와 좀비 영화의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작년에 <얼굴>이 개봉되었지만 상업영화로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 그 사이 극장 문화나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더라. 개인적으로 손익만 좀 맞춰지면 한다. 어제 딸이랑 4DX 버전으로 군체를 봤었는데 극장 안이 시끌벅적하더라.”
Q. 칸국제영화제를 통해 <군체>가 처음 공개되었다. 칸에서의 반응은 어땠는지.
▶연상호 감독: “처음 소개하는 자리여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읽힐까 했는데 AI의 집단지성, SNS 등 코드를 정확히 짚어내며 감독의 의도를 읽어준 점이 인상 깊었다. 집단지성을 통해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Q. 좀비의 진화가 집단지성의 산물인가?
▶연상호 감독: “극 초반에는 좀비들이 집단지성처럼 움직이지만 중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서영철(구교환)이라는 선동가의 의지에 휘둘린다. 선동에 흔들리는 집단 지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는데 원시적인 단계의 표현에서 그친 것 같다. 진화하는 형태에 대해서는 엔딩에서 여러 버전을 준비했었다.”
Q. <부산행>에서 보여준 감정적인 장면이 덜 묻어난다.
▶연상호 감독: “처음 쓴 <군체> 대본은 168페이지에 달한다. 이걸 다 담으면 3시간 30분 정도 될 것이다. 쇼박스와 어떤 형태의 영화로 갈 것인지, 어떤 관객층을 만날 것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결론은 이 작품은 속도감으로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부산행>은 딸을 보호하는 아버지를 두고 공포를 극대화한다. 보호하려는 마음과 외부의 상황이 만들어내는 공포심의 장르영화이다. 이번 것은 좀비가 진화한다. 그에 반해 인간그룹은 퇴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방 탈출 게임처럼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Q. 초고에서 걷어낸 장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연상호 감독: “걷어낸 것이 많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컨셉트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60대 노인 이야기가 좀 있었다. 치매 걸린 아내가 짜장면 먹고 싶다고 계속 전화가 오는데 기다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권세정의 이야기도 많다. 시리즈로 다루면 다 할 수 있지만 영화의 속도감을 위해 뺐다.”
연상호 감독
Q. 연상호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은 무엇인가.
▶연상호 감독: “영화는 보편적 원리를 다룬다. 좀비의 진화에 상응하는 휴머니즘은 무엇일까. 개별성일 것이다. ‘군체’생활을 하는 생명체는 하나의 성질이 있다. 단일 특성만 가진 집단의 약점이 노출되면 한 순간에 전멸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변이체를 만든다. 이런 메카니즘은 인간사회와 닮았다. 인류공동체에 있어서 소수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는 자연계의 설명 같다. 그런 맥락에서 인간사회를 그려낸 것이다." (학폭의 가해자-피해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학폭 피해자가 등장하는 것은 관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깊은 이야기를 안 한 것은 관객들이 자유롭게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관계였으면 좋겠다고 보았다."
Q. 초저예산영화 <얼굴>에 이어 꽤 큰 버젯의 영화를 찍었다.
▶연상호 감독: “초저예산 영화로 찍어봤지만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여유 있게 작품을 완성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작품을 170억 원에 찍으려면 촬영 회차가 짧아야한다. 회차를 줄일수록 제작비를 줄일 수 있다.“
Q. 전지현 캐릭터에 대해.
▶연상호 감독: ”전지현은 개별성을 중시 여기는 캐릭터이다. 왕따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왕따가 될 수 있을까. 영화의 톤은 주연배우가 만든다. <군체>의 전체적인 톤은 전지현이 완성시켰다고 본다.“
Q. <부산행>이후 10년 만에 좀비 영화의 획은 긋는다.
▶연상호 감독: “"<부산행>이 개봉된 지 10년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좀비를 찍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할 때는 <지옥>의 연장선상에서 고민했다. 공포의 근원은 무엇일까. 보편적인 공포, 개별성의 무력함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런 이야기는 좀비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그런 방향으로 풀어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신체강탈자의 습격>(Invasion of the Body Snatcher, 돈 시겔 감독,1956)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Q. 구교환이 연기한 서영철 캐릭터에 대해.
▶연상호 감독: “제가 설계한 것은 관객이 어느 순간에는 구교환의 사고방식, 철학에 빠져들고 소통하는 것이다. 말로는 동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심정적으로 관객들이 빨려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갇혀 있다가 탈출할 때이다. 역설적인 카타르시스이다. 서영철에게 관객이 빠져드는 순간, 그런 화해의 무드가 짜증날 수도 있을 것이다.”
Q. 구교환 배우에 대한 평가.
▶연상호 감독: “구교환 배우는 비범한 연기에 어울리는 배우이다. 비범함이란 것은 배우가 엄청나게 표현을 잘 해서라기보다는 내적인 태도가 비범하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에서 연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배우이다. 그리고 구교환은 비범한 영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B급 영화도 많이 보는 영화팬이어서 나랑 잘 통하고, 이야기 나누기 편한 부분이 있다. <기생수: 더 그레이> 할 때 '나도 능력 있는 캐릭터가 되고 싶다'고 해서 이 역할을 주문했다.”
Q. 이 영화에서 생성형 AI 툴을 사용한 장면이 있는지? 향후 영화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은?
▶연상호 감독: “<군체>에서 그런 툴을 쓴 장면은 없다. CG업계에서는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것이 크게 늘 것이다. 현재 논란인 되는 것도 결국 보편성과 개별성의 문제일 것이다. 영화를 예술이라고 했을 때 중요한 것은 개별적 독창성일 것이다. 나는 미술(서양화과)을 전공했는데 미술계에서는 이런 논쟁이 꽤 오래된 것이다. 마르셀 뒤샹이 레디메이드 공산품에 ‘샘(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했을 때 미술계가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길거리에서 파는 물건을 가져와 이름만 붙였다고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흐름 안에서 결국 앤디 워홀 같은 다다이즘 작가들이 등장했다. 지금 영화계가 겪고 있는 생성형 AI 논쟁 역시 결국 현대미술이 이미 지나온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논쟁 자체가 오히려 현대미술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지금 영화계 역시 비슷한 지점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연상호 감독
Q. ‘좀비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기어가던 존재가 직립보행 한다는 것이 진화인가, 어떤 장치나 설정으로 네트워킹 연결되는 것이 진화인가?
▶연상호 감독: “여기 등장하는 좀비는 죽은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랑 똑같다고 보면 된다. ‘진화’라고 말하고 있지만 처음 대본에는 업데이트된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집단의 식을 표현한다. 집단화되었지만 잘못된 정보에 오류를 보이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한다. 그 모습은 하늘에 새떼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 새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군집형태로 움직이고 있다. 서영철이라는 존재가 개입하면서 그 군집에 큰 오류가 생긴 것이다. 서영철은 혁명가라고 할 수 있다. 날아가는 새나, 유영하는 물고기 떼처럼 군집을 이루며 움직이는 것을 인위적으로 조작했을 때 느껴지는 오류이다. 그 퍼포먼스 자체가 이 영화의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Q. 다음에 공개되는 연상호 영화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는 일본영화 <가스인간>이다. 이 작품에 관여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연상호 감독: “<가스인간>은 일본의 도호(東宝/TOHO) 영화사가 제안한 것이다. <가스인간>은 좀비물은 아니다. 1960년대에 만들어진 원작 일본영화를 보자마자 빠져들었다. 1960년대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던 ‘특촬물’ 장르이다. 일본의 특촬물 시리즈를 다시 리부팅 하는 것인데 여러 후보작품 중에서 이게 재밌을 것 같았다.” (직접 감독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지?) “일단은 일본과의 작업은 처음이다 보니. 일본 배우와 한다는 게 다른 시스템에서는 조심스럽다. <가스인간>은 <간니발>의 가타야마 신조가 감독을 맡았다. 말이 잘 통했다. 옛날 B급 호러 영화를 보면서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Q. 영화의 시작.
▶연상호 감독: “영화는 협업의 산물이다. 개인의 작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본다. 미술을 하던 내가 영화를 하게 된 것도 협업으로 가능했다.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미술 쪽 이야기를 하자면 작품을 즐기는 사람이 한정적이다. 대중에게 해석하는 것도 제한적이다. 영화는 대중친화적이기에 명확한 협업의 결과물이다. 투자가 이뤄지는 과정, 만드는 과정 등 여러 단계가 협업의 과정을 거친다. 애니메이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한 10년 상업영화판에 있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할 수 있었다. 상업영화 시스템과 OTT 시스템에서. 작년에 <얼굴>을 만들면서 새로운 시스템의 작업을 갈망하게 되었다. 앞으로 10년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다른 식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형식의 영화, 실험적인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든다. 정말 흥분된다. 재밌을 것 같다.”
연상호 감독
연상호 감독은 ‘다 계획이 있는~’ 창작자이다. 영화든 OTT든, 감독이든 각본가이든 새 작품이 공개되면 언론과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 때는 기자들에게 책을 한 권씩 나눠준다. 개봉하는 영화의 원작만화일 때도 있고, 앞으로 만들 영화의 원작일 때도 있다. 그리고는 영화와 관계없을 듯한 소설책을 건네주기도 한다. 이날 감독이 정성스레 서명까지 한 책은 <닥터 아포칼리스>라는 소설이다. 연상호 감독과 전건우 작가가 공동집필한 메디컬 스릴러이다. “이것도 좀비물이다. 좀비를 수술하는 굉장히 흥미진진한 메디컬 드라마이다.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군체>의 후속이야기를 쓰긴 했다. 영화로 만들 생각보다는 그래픽 노블로 출간시키려고 만든 것이다. 그 책을 기반으로 게임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체험형 콘텐츠이다. 옛날부터 생각한 것이다. 콘텐츠를 다양하게 확장시키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연상호 감독은 정말이지 확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유전자변형 판도라 상자를 가진 사람이다.
[사진=쇼박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