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오늘, 1921년 1월 21일 미국에서 공개된 영화가 있다. 물론 흑백 무성영화이다. 찰리 채플린이 만든(제작, 감독, 주연까지 한) <키드>(Kid)이다. 흑백무성영화 <키드>는 53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100년의 세월이 흘러도 이 영화에 대한 애정은 빛이 바래지 않는다. 이 날을 잊지 않고, 이 영화를 잊지 않고 개봉하는 영화관이 있다.
영화는 한 여인이 자선병원에서 홀로 아이를 낳으면서 펼쳐지는 비극적 인간드라마이다. 여인은 가난으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대저택 앞에 세워진 고급 자동차 안에 아이를 두고 울면서 그 자리를 떠난다. 그런데 하필 자동차도둑이 그 차를 훔치게 되고, 뒤늦게 아이를 발견한 악당은 아이를 골목 쓰레기통 옆에 버린다. 그런데 우연히 길을 지나던 떠돌이 찰리가 아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떠돌이 찰리는 허름한 단칸방에서 아이를 홀로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나 아이는 아빠와 함께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야한다.
커다란 중절모, 바지는 짧고 헐렁하지만 상의는 꽉 끼는 낡은 양복, 헤진 구두에 지팡이를 들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은 당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전해주는 듯하다.
영화는 찰스 디킨스 소설에 등장하는 빈민가 스토리를 전한다. 경제난 속에 살기 어려웠던 서민, 버려진 아이, 외면하는 세상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인연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198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은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을 거친 뒤 무대배우가 되었고, 19살에 미국으로 건너와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왔다.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트램프’(Tramp/떠돌이) 모습은 그만의 페르소나를 만들었고 이후 대중문화의 기수가 된다. 수십 편의 단편무성영화에 출연하며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 그는 1921년 그의 첫 장편 연출작인 <키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채플린의 첫 장편영화는 1914년 출연한 키스톤 영화사의 ‘Tillie's Punctured Romance’이란 작품이다)
<키드>에서 찰리 채플린이 키우는 (다섯 살) 아이는 재키 쿠간이 연기한다. 지금 봐도 재키 쿠간의 연기는 명불허전 천재아역 연기이다. 관계당국에 의해 끌려갈 때(!) 트럭에서 채플린을 부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채플린은 이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불과 며칠 전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 첫 번째 부인 밀드레드 해리스 사이에 난 아이가 출생 사흘 만에 숨진 것이다.그런 슬픔이 영화에, 재키 쿠간에 투영된 것이다. 그리고 런던에서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로 녹아들어갔음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갇혀야했던 채플린으로서는 빈곤과 아동유기, 복지 부재의 사회에 대한 시선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988년을 서울올림픽 즈음에 우진필름(의 시네하우스)에서는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차례로 개봉한 적이 있다. <모던 타임즈>를 필두로 그의 대표작들이 소개되었었다. 그 때도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영화사(史) 책속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전설적 작품을 스크린에서 만나보는 감동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감동을 만끽해 보려면 발품을 조금 팔아 상영관을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듯하다. 오늘 개봉되는 영화는 디지털리마스터링된 53분짜리 버전이다. 무성영화지만 음악 사운드는 있다. 토키영화가 아니란 말이다. 2021년 1월 21일 개봉 (KBS미디어 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