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 여파로 겨우 열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반짝이는 한국영화 여러 편이 소개되었다. 그 중 눈길을 끈 작품 중 하나가 이승원 감독의 <세 자매>이다. 김선영이 첫째 희숙을, 문소리는 둘째 미연을, 장윤주가 막내 미옥을 연기한 <세 자매>는 과거의 연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먹먹한 감동을 안겨주는 역작이었다.
“반갑습니다. 문소리입니다.”
최근 TV예능 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자기 출연작품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문소리가 인터넷화상 라운드인터뷰 자리에도 나섰다. 문소리는 이번 작품에서 연기뿐만 아니라 공동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며 두 배, 아니 열 배의 노력을 펼치는 것 같다. 그 소감부터 물어보았다.
“보통 작품 제안 받고 시나리오를 볼 때는 투자 어디서 했는지, 촬영은 언제부터인지, 예산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것 전혀 진행되지 않던 초고 단계였다. 그 때부터 시작부터 끝까지 고민하고, 의논하고, 마음을 다했던 것 같다. 노동을 보탠 셈이다. 김상수 피디와 이승원 감독과 합이 잘 맞았고, 각자의 스페셜리티를 최대한 발휘했다. 어려웠던 점은 연기자였다면 다음날 촬영을 위해 숙면을 취하고 피부관리도 할텐데 프로듀서 입장이 되면 찬바람 맞고, 퇴근 시간 걱정을 하고 그래야했다. 영화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책임감이 조금 더 많이 생긴 작품이었다.”
● 문소리는 오늘도
- 공동 프로듀서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
“프로듀서의 일은 다 했다. 촬영감독을 선정할 때 서독제(서울독립영화제) 심사를 할 때 봤던 작품(<창진이 마음>)의 조영천 촬영감독님을 추천했었다. 그때 열혈스태프상을 받으신 분이다. 캐스팅 과정도 그렇다. 김선영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감독도 배우도 나서지를 않더라. (이승원 감독과 김선영 배우는 부부이자, 동료이다) 후반작업에도 매달렸다. 녹음실, 편집실도 오가며 바빴다. 개봉 앞두고는 마케팅회의에도 참석하고. 예산 한도 내에서 홍보방안도 생각해야했다. 그런 걸 했습니다.”
문소리 배우가 작품에 쏟은 ‘프로듀서’로서의 열정은 다른 질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을 본 소감을 이야기할 때였다.
“완성되어 가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처음 기술시사를 하며 전체 작품을 볼 때 스태프 몇 명과 배우들이 함께 봤다. 그때까지도 나는 DI(색보정작업)에 신경을 썼다. 컬러가 톤이 세지 않나, 믹싱할 때는 저 사운드 잘 안 들리는데 고쳐야하지 않나. 관객처럼 감정을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 기술시사 끝나고 김선영 장윤주 배우는 서로 끌어안고 엄청 울더라. 배우가 창피하게 자기 영화 보고 우냐고 놀렸었다. 그런데 부산영화제 때 큰 스크린으로 보았다. 영화 끝날 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배우가 자기 영화보고 말이다. 굉장히 슬펐고, 세 자매의 삶에 대해 고통스럽게 다가온 부분도 있었고, 정말 깔깔 웃으며 재밌었던 기억이 났다.”
- 영화에서 미연은 종교에 매달린다. 문소리 배우는 살면서 어딘가에 그렇게 애타게 매달린 적이 있는지.
“글쎄요. 학생시절 외향적인 아이가 아니었다. 주로, 책이나 바이올린, 음악에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혼자서. 연극을 좋아했고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영화로 채워진 것 같다. 극중 미연이처럼 어디에 매달린 것은 없는 것 같다.”
문소리 배우는 ‘영화 속 현실남매’를 이야기하다가 가족 이야기를 한다.
“남동생이 있는데 늘 고맙게 생각한다. 수도관이 고장이 나도, 냉장고에 문제가 있어도 와서 뚝딱 고쳐준다. 데뷔하고 한동안 매니저 없이 활동할 때도 날 도와줬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아버지에게 혼날 때 아들이라서 나보다 더 많이 더 혼난 것 같다. 매도 더 맞은 것 같고. 아들이라 차별대우를 더 많이 받은 것 같다.”
영화 속 희숙, 미연, 미옥을 이야기하다가 이런 말도 덧붙인다.
“세상살이가 그렇잖아요. 세 자매 속에 나오는 아버지, 어머니도 내칠 수만은 없는 그분들 나름대로 고통도 있을 것이다. 이해하려고 한다.”
● 명불허전의 세 여배우
- 문소리-김선영-장윤주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다. 아마 시상식 때 누구에게 상을 줘야할지 심사위원이 고민할 것 같다. 함께 연기한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해 평가한다면.
“우선,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다. 그런데, 이전에 <가족의 탄생>으로 테살로니키 영화제 에서 상 받았을 때, 영화제는 그 영화에 나온 배우들 모두에게 상을 주더라. 상패 만드는데 얼마 든다고 다 줘도 될 것이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2006년 열린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문소리, 고두심, 공효진,김혜옥 네 사람이 함께 받았다)
“두 배우는 정말 놀라운 연기를 펼쳤다. 만약 희숙 역을 김선영 배우가 아니라 다른 배우가 했다면 정말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깊이가 있고, 파워가 넘치는 용감한 연기였다. 김선영 배우는 워낙 존경해온 배우였고, 좋아했었다. 이번 영화에서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준다. 그동안 감초연기를 많이 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실력을 발휘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만도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장윤주의 연기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테랑>의 봉 형사밖에 기억에 없을 것인데 이런 캐럭터를 이런 스타일로 소화해 낸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장윤주 배우는 유연하게 열려있는 배우이다. 매 테이크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놀랐다.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은 관객으로서 흐뭇하고 짜릿했다.”
● 조연들, 적재적소의 명연기
- 세 배우의 연기도 멋있었지만, 조연 하나하나가. 개성 강하고, 작품의 심도를 깊게 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조연배우들도 강렬한 연기를 한다. 우선 남동생으로 나오는 배우가 김성민이라는 배우이다. 이 친구는 김선영 배우와 이승원 감독의 극단 나베의 단원이다. 감독의 전작 <해피 뻐스데이>에도 나오고 연극에도 출연했다. 가능성이 많은 친구라 생각했다. 착한 얼굴인데 가끔 엄청 반항적인 눈빛을 보일 때 좋았다. 사투리를 못 쓰는데 굉장히 열심히 했다.”
“세 자매의 남편들, 김의성, 조한철. 현봉식은 각기 다른 캐릭터이다. 현봉식 배우는 현장에서 연기할 때마다 웃게 만든다. 그분은 인명구조원, 심폐소생의 대가이다. 죽어가는 신을 살릴 만큼 어마어마하게 재밌는 연기를 하는 배우다. 놀라운 것은 저의 선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장윤주 배우보다 어리더라. 윤주 배우와 누나누나하며 펼치는 케미가 대단했다. (장윤주는 1980년생, 현봉식은 1984년생이다)”
“조한철 배우는 <배심원들>에도 같인 나왔던 사적으로도 친한 배우이다. 인연이 깊고, 연기 호흡도 잘 맞았다. 김의성 배우의 연기는 워낙 좋아해서 특별히 부탁했다. 김선영의 딸로 나오는 김가희 배우는 파격적인 의상과 함께 파워풀한 연기 열정을 보여준다.”
“임혜영 배우는 노래를 너무 잘했다. 성가대 합창 연습도 하고 녹음을 했는데, 너무 프로패셔널했다. 마치 딴사람이 해서 입힌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녹음했다. ‘너무 잘하지 않게, 아마추어같이’. 여기 등장하는 교회는 어마어마한 교회도 아니니 있을 법하게, 잘 못하는 것 좀 섞어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성악을 전공했고 이것 촬영할 때 뮤지컬 배우로 작품을 하고 있었다. 그걸 병행하는 게 어려웠을 텐데 너무 감사하다.”
“후반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엄마 연기를 한 배우도 이송희, 김미경 배우도 마찬가지다. 이송희 배우는 고향이 대구였다. 촬영 직전까지 코로나로 격리상태였다. 피디가 거의 매일 전화로 확인하고 그랬다. 코로나로 힘든 상황에서 자가격리하며 촬영에 임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 임혜영 배우가 연기한 효정과의 연기를 이야기하다가 촬영 뒷이야기를 보탰다.
“교회 장면이 좀 많았다. 효정이와의 이야기를 다 담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밤 기도회에서 통성기도하는 장면은 굉장히 길었다. 둘 다 절규하듯 연기했다. 김선영 배우가 첨삭지도를 해가며 촬영을 했었는데 마지막 편집에서 덜어 냈다. 둘 다 그 밤에 목이 쉬도록 기도를 했었는데.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에서도 편집에서 생략된 게 있다. 효정이가 잘 때 머리를 밟는 장면. 인형을 두고 연기를 했었는데, 그 씬도 기억에 남는다.”
● 다재다능 문소리, 희망의 문소리
- 배우출신으로 이제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 마음은 안 생기는지.
“연출도, 프로듀서 일도, 연기도 모두 영화하는 일이다. 제가 재밌게 할 수 있다면 마다할 리 없을 것이다. 최근 재밌게 본 영화가 <올리브 키터리지>인데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원작의 판권을 사서 제작을 했다고 하더라. 그분이 제작하며 세상에서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이 존경스러웠다. 정말 무릎을 꿇고 저 멀리 미국에 하트를 보낼 정도였다.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왓챠에서 만나볼 수 있다)
문소리는 연기자로서, 그리고 연기자 너머의 영역에 관심을 보인다.
“<올리브 키터리지>말고도 <와일드>를 보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눈물이 나더라.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을 맡았는데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으며 굉장히 큰 자극이 된 것 같다. 최근 <출발 비디오여행>을 녹화했는데 ‘숨보명’ 코너에서 <우리도 사랑일까>를 소개했다. 사라 폴리가 감독한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레이디 버드>도 너무 좋아한다. 그런 영화 만들고 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자신은 없다. 하지만 가끔 빨래 개고 설거지 하다가 그런 생각도 하고 구상도 한다.”
- 아까 답변 중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통도 나름 이해한다고 하셨는데,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와 관련하여 좀 더 작품 배경을 설명해 주셨으며 한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요즘 심각한 사건이 많아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보기에 따라 심각한 아동학대라고 말할 수 있으니.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이 영화는 심각한 아동학대를 소재나 주제로 삼으려고 한 영화는 아니다. 이런 아버지가 꽤 많았다고 이야기할 만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달랐던, 가부장적 문화가 강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런 것들을 보편적인 측면에서 전하려고 했지 특별한 사건을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니다. 요즘 사건과 연결 짓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한 가정에서 자라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일 것이다.”
● 영화와 더 끈끈해진 문소리
- 배우로,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감독으로, 프로듀서로 전방위 활동을 펼치는 문소리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좋은 영화를 많이 보고, 시도 좀 읽고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 그런 위로와 위안 없이 이 세상을 산다면 너무 팍팍할 것이다. 그런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배우는>을 연출했고, <메기>같은 독립영화에도 출연했고, <인간증명> 같은 패기 넘치는 개성강한 작품에도 출연했다. 그런 점에서 <세 자매>의 프로듀싱 작업은 재밌었던 것 같다. 한때는 이 작품 끝내고 다음 작품이 없으면 어쩌지, 캐스팅이 줄어들면 어떡하나 불안했는데, 요즘은 더 고민하고, 시나리오 구성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하는 재미가 늘었다. 영화와 더 끈끈해진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기자들과 인터뷰하며) 재미나게 답변하고 싶었는데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지금 이 시간이 학교에서 수업 받을 때 졸리던 시간 같다. 다음엔 온라인 말고,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고 싶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이날 인터뷰는 낮 2시부터 진행되었다. 영화 <세 자매>는 1월 27일 개봉된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문소리 영화 ‘세 자매’ 스틸/ 리틀빅픽처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