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24일(일) 오후 9시 30분 KBS 1TV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 사명대사의 행적을 뒤따라간다.
1592년, 16만 명의 일본군이 조선을 침공해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나라와 종묘사직의 운명은 경각에 달린 순간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일어선 이들이 있었다. 산사에서 참선하던 승려들, 그리고 그 승려들을 이끈 큰스님 사명대사 유정이다. 속세를 떠난 승려들은 왜 무기를 들었을까.
경상남도 밀양시의 표충사는 유교와 불교 역할을 모두 하는 독특한 공간으로, 사명대사의 행적을 기리는 사액서원과 사찰이 합쳐진 형태다. 이곳에 보관된 사명대사의 법복을 통해 무려 180cm에 달했던 그의 건장한 체구와 장수로서의 기개를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밀양의 또 다른 사찰 홍제사에는 사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표충비가 있다. 이 비석에는 나라에 환난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신비한 전설이 있다. 이러한 전설은 백성을 걱정하는 사명대사의 영험함으로 통하며 오늘날까지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국가와 민중이 오래도록 기억한 사명대사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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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살생은 계율로 엄격히 금지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은 개국 이래로 유교를 존숭하고 불교를 억압하던 사회였다. 그럼에도 전국팔도에서 수천 명의 의승군이 조직되었다. 이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는 일 또한 중생 구제라는 승려들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를 구출하라!
전쟁이 끝난 후 1604년, 사명대사는 외교 사절이 되어 일본을 향한다. 사명대사는 일본 각지에서 수많은 절과 승려들을 만나 불법(佛法)을 교류한다. 사명대사의 학식과 가르침은 일본 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일본 지식인들은 앞다투어 그를 만나고자 했다. 교토의 흥성사 등에는 아직도 사명대사의 친필 유묵이 전한다.
사명대사는 국난 속에서 일본으로 끌려와 고국산천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조선인 포로를 목격한다. 이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사명대사는 도쿠가와와의 회담에서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마침내 수천 명의 포로들과 함께 무사히 귀국한다. 사명대사의 여정은 훗날 조선통신사의 마중물이 된다.
나라와 백성을 구한 사명대사의 이름은 참된 중생 구제를 실천한 승려이자 공동체를 지켜낸 위인으로 우리 곁에 전승되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사명대사가 후세에 전하는 메시지를 되짚어보는 <역사스페셜-시간여행자> ‘부처님 오신 날 기획 - 사명대사, 중생을 위해 칼을 들다’ 편은 24일 오후 9시 30분, KBS1에서 방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