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빈 감독
지난 달 29일 개막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54개국에서 출품된 236편(장편154+단편82)의 영화가 상영된다. <폐축>은 한국단편경쟁 부문에서 상영되는 러닝타임 19분의 단편이다. 영화는 ‘마트 상품’을 배달하는 기혁과 태인의 일상을 따라간다. 배송상품이, 배달코스에 특별한 것이 없다. 둘이 나누는 대화도 평범하다. 하지만 카메라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예사롭지 않다. 영화는 뚜벅뚜벅 앞만 보고 전진하는 소의 걸음처럼 과묵한다. <폐축>을 연출한 이승빈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승빈 감독은 지난달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연극 <팩트>에 출연하고 있다. 배우이자, 감독인 이승빈 감독을 만나 제목 ‘폐축’의 의미와 극에 등장하는 ‘소’의 시선을 물어봤다.
Q. 이게 몇 번째 작품인가?
▶이승빈 감독: “8번째 작품이다. 중간에 장편 <파농수업>을 찍었었다. 그걸로 파리국제실험연극/영화제에 갔었고 대상을 받았었다.”
Q. 8편이나 찍은 감독인데, 덜 알려졌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이승빈 감독: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살았었다. 아버지는 영문학 교수이다. 아프리카 비교문학을 전공하셨다. 한국에 와서는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지냈다. 남아공의 기억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확실히 흑인동네와 백인동네가 나눠져 있었다. 난 백인유치원과 사립초등학교를 다녔다.”(당시 남아공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은데...) “안전한 동네에 살았다. 처음 한국 와서 충격 받은 것은 아이들이 실내화가방을 들고 혼자 학교에 간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픽업해야하는 동네에서 살다가 그런 모습을 보니 신선했다.”
영화 '폐축'
Q. 영화의 꿈은?
▶이승빈 감독: “군 제대(포병) 하고는 바로 대학로에서 극단 생활했다. 그때 만든 첫 영화 <발자취>가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에서 대상을 받았었다. 그게 영화를 만든 시발점인 것 같다. 2022년이다. 그 후 글도 쓰고,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있다.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작품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간객을 설득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 작업을 해오다가 작년 <폐축>을 만들었다. 완성해서 전주에서 처음 선을 보이는 것이다.”
Q. 연기자가 꿈이었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나.
▶이승빈 감독: “오로지 배우가 되고 싶었다. 연기자의 꿈이 컸다. 소속사는 없다. 연극에 매진하고 있다. 매체에 매력을 느끼고, 내가 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내 작품을 보고 배우로서의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씩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극단 화살표의 레퍼토리 <팩트>에 출연하고 있다.”
Q. 그럼 연기 데뷔는 어떤 작품이었나.
▶이승빈 감독: “2021년 서울연극제에서 상연된 <노인과 여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코러스 역할이었다. 단역이었다. 제대하자마자 오디션으로 대학로 극단에 들어갔다가 막내 단역으로 서울연극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코러스가 8명이었는데 신체 움직임이 많은 작품이었다.”
Q. ‘폐축’이야기를 해보자. 제목이 무슨 뜻인지.
▶이승빈 감독: “‘도축’에 의하지 않은 가축을 ‘폐축’이라 부른다고 하더라. 소의 다리가 부러지거나, 뇌가 잘못 되었을 경우, 그 소를 어떻게 하는가. 자본주의 시선으로 봤을 때 소의 육질이 떨어지는 경우이다. 판매할 수 없는 소는 기둥에 묶어놓고 폐기한단다. 폐축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인문학서적을 읽다가 느낌이 와서 이 제목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Q. <폐축>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배달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인데.
▶이승빈 감독: “<폐축>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회를 보여준다. 피지배층의 시선으로 지배층을 바로 보는, 하루의 이야기이다. 투자관련 이야기를 나누는 전화 너머에는 점장이나 조합장 같은 인물이 있다. 그런 복합적인 인물들을 배치하며 재미없는 일상을 최대한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정치적인 담론도 넣었다. 바다에서 시추하는 사람 이야기도 있다. 그런 것에 포커스를 두었다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으로 군림하는 인물을 담은 것이다.”
영화 '폐축'
Q. 라디오에선 계속 계엄관련 뉴스가 나오는데, 정작 그것을 듣고 있는 두 사람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이승빈 감독: “계엄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의무적으로 배달을 다니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뉴스는 A.I.로 음성을 넣은 것이다. 현재 일상을 사는 20대와 30대의 삶을 투샷과 롱테이크로 많이 보여준다. 태인이 주인공 기혁보다 더 정제되어있다. 마치 로봇인가 느낄 만큼 움직임이 없다. 그는 무료한 시간을 버텨보려고 영화를 본다. 시간을 견디기 위한 존재 같다.”
“조합장에게 가는 선물인 택배상자를 보내면서 자기 것을 제일 위에 올려놓으면 알아줄까 고민한다. 그게 현재 인간의 본질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것을 바라보는 우리도 똑같지 않을까? 마지막에 기혁이가 투자자를 바라보는 장면도 그런 의미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신들은 과연 다를까? 결국은 두 사람이 폐축처럼 보인다고. 우리라고 다를까. 기성세대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일 수도 있다. 역설적인 의미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Q.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계속 ‘소’가 주인공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영화인가?
▶이승빈 감독: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품이다.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이 소처럼 보이길 원했다. 본인은 소를 보았다지만 자신이 소인 것을 인지 못하는 것이다. 그걸 보는 스크린 밖의 관객은 제가 소라는 것을 아니까. 마지막에 우리를 바라보는 것도 ‘폐축’이다. 신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도 소일 것이다. 알레고리였던 것 같다.”
Q. 등장인물 중에 라이터 빌리는 사람은?
▶이승빈 감독: “후반부 바닷가에 등장하는 인물, 현장소장이다. 기혁이가 염원하던 곳을 파괴하려온 기득권 인물을 대변한다.”
Q. 촬영은 어디에서? 제작비는 어느 정도 소요되었는지.
▶이승빈 감독: “태안에서 이틀 찍었다. 서울에서 녹음하고. 내가 배우도 하고 있으니 캐릭터에 어울리는 배우를 주위 동료배우들에게 부탁했다. 저와 같이 작업하는 크루가 있는데 최소한의 인원으로 촬영했다. 제작지원없이 전적으로 사비로 완성시켰다. 물론 배우에게는 최소한의 페이가 주어졌다. 제작비는 300만원이 안 들었다.”
Q. 단편영화에도 제작지원 사업이 있지 않나?
▶이승빈 감독: “지원하더라도 결과도 오래 기다려야하고. 사실 지원했지만 안 되기도 하고. 지원사업과 창작, 글을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 같다. <파농수업>은 제작지원 사업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폐축'
Q. 이 영화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가.
▶이승빈 감독: “지원하더라도 결과도 오래 기다려야하고. 사실
“‘폐축’은 흑백영화에, 남자 뒷모습만 나오는 작품이다. 그걸 10분 넘게 보여주는 것인데 촬영 들어갈 때 스태프들이 어떻게 하려고 걱정했다. 보통의 경우 사이드캠 달아 다양한 각도를 보여줄 것이다. 나는 명절마다 마트에서 배달 알바를 한다. 그 때 느낀 감정이 흑백이어야 했다. 마지막에 바다만 컬러인 이유가 있다. 꿈의 유토피아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자본주의로 완벽한 파괴(시추)되는 것이다. 관객들이 두 인물의 뒷좌석에 같이 타서 배달을 하는 것처럼 연출하고 싶었다. 그들의 시선에 맞춰 무료한 시골풍경, 사람의 땀 냄새가 살포시 묻어나오기를 바랐다.”
Q. 이 작품을 부모님이 보셨는지? 반응은?
▶이승빈 감독: “아버지는 한예종 교수이시고, 예술 쪽 일도 하고 계시니 당연히 응원하신다. 어머니는 독립영화가 낯설고 어려워하시지만 흥미롭게, 재밌게 보셨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이승빈 감독: “영화 자체가 갈수록 재밌다. 초단편, 일단단편, 중편, 장편 만들고 다시 단편 돌아오니.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하는지 그 흐름이 조금씩 보인다. 더 짧은 시간 안에, 만들고 싶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표현하고 싶은 것이 융합되어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번 작품 <폐축>처럼 계속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다. 배우이자 감독으로 계속 이야기를 내놓고,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장편은 아직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편도 겨우겨우 하는 것이다. 그래도 차례차례 밟아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가고 싶은 길은 구교환. 손석구처럼 영화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 두 분은 독립영화 감독도 했다. 감독을 하면서 제일 뿌듯한 것은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무대연극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폐축] 많이 사랑해주세요.”
[사진=이승빈 감독/전주국제영화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