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인의 노래
사형제도가 미국 사회에 미친 여파를 심도 있게 다룬 노먼 메일러의 역작 <처형인의 노래>가 민음사에서 완역 출간되었다.
1979년 출간된 이 작품은 이듬해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수상하며 20세기 미국 문학사를 뒤흔든 걸작으로,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안에 300명의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각종 인터뷰, 문서, 편지, 기사, 법정 소송 기록을 비롯해 녹음된 대화 내용만 1만 5,000페이지에 달하는자료를 기반으로 사형수 게리 길모어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재구성한 이 소설은, 논픽션 소설 장르의 정점에 도달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36년의 생 중 22년을 감옥에서 보낸 게리 길모어의 마지막 9개월에 대한 기록이다. 길모어는 살인자를 넘어 미국 사형제 부활의 ‘첫 번째 집행’이라는 헌법적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자유주의 단체들은 소송을 제기해 사형을 막으려 하고, 당사자인 길모어는 도리어 그들에 맞서 자신의 죽음을 주장한다. 그 역설적 구도 속에서, 죽음조차 탐욕스럽게 소비하려는 언론의 광풍이 몰아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실화를 넘어 자유의지와 죽음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무장 강도와 폭행으로 수감되었던 게리 길모어는 1976년 4월, 35세의 나이로 연방 교도소에서 가석방된다. 사촌 브렌다의 주선으로 유타주 프로보에 정착한 그는 이모부 번의 신발 수선점에서 일을 시작하며 언뜻 사회 복귀에 성공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14세 이후 줄곧 수감되어 있던 그에게 자유는 낯설고, 거의 불가능한 언어에 다름없다. 그러던 중 길모어는 19세의 니콜 베이커를 만나 격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관계는 파탄나고 비극으로 이어진다. 그는 살인죄로 체포되고, 재판은 단 사흘 만에 마무리되어 배심원은 사형을 선고한다. 이렇게 미국 역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철학적인 법정 드라마가 시작된다.
사형을 요청하는 길모어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기자, 드라마・영화 제작자, 방송국이 앞다투어 판권을 사기 위해 몰려든다. 1977년 1월 17일 이른 아침, 게리 길모어는 유타 주립 교도소 뒤편의 낡은 통조림 공장으로 걸어 들어가 총살형을 당한다. 미국에서 10년 만에 이루어진 첫 사형 집행이었다.
노먼 메일러(Norman Mailer, 1923~2007)는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평생 30여 권의 저작을 남겼다. 1969년 『밤의 군대들』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1980년 『처형인의 노래』로 두 번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트루먼 카포티, 톰 울프와 함께 ‘뉴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불리며, 『처형인의 노래』는 그의 일생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 ‘사형제 존폐를 둘러싼 논쟁’, ‘미디어가 범죄를 소비하는 방식’, ‘사회가 한 인간의 실패에 얼마나 책임을 지는가’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이다. 1997년 이후 사실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관련 여론과 찬반 논쟁은 지속되고 있는 한국에서, 이 책은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계기를 제공한다.
▶처형인의 노래 (원제:THE EXECUTIONER’S SONG) ▶지은이: 노먼 메일러 ▶번역: 이운경 ▶민음사/2026. 3. 31. 출간/ 1권 836쪽, 2권 928쪽|반양장|각 권 20,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