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드의 목소리
튀니지의 여성감독 카우타르 벤 하니야(Kaouther Ben Hania)는 줄곧 중동/아랍 국가의 문제를 진지하고, 절박하게 다루고 있다.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튀니지의 샬라>와 <미녀와 개자식들>(Beauty and the Dogs), <힌드의 목소리>는 국내 영화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베니스에서 심사위원대상(은사장상)을 수상한 <힌드의 목소리>가 개봉한다. 중동에 포성과 비명이 끊이지 않고, 인류문명사에 깊은 생채기를 남기고 있는 지금 시점에 이 영화를 한 번 보기를 간곡히 권한다.
영화는 2024년 1월 29일. 이스라엘,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텔 알-하와(Tel al-Hawa)에서 일어난 '민간인 차량 대상' 총격사건을 다룬다. 그때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하마스 소탕전을 펼치며 민간인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라잡(Rajab) 가족들도 차에 올라 피신하기 시작한다. 아빠와 엄마, 남동생은 남고 그 차에는 삼촌, 고모, 사촌 등 6명이 타고 있었다. 그들 앞에 이스라엘 군인과 탱크가 다가온다. 영화는 차 안에 갇혀 필사적으로 자신을 구해달라는 아이 '힌드'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한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Red Crescent)의 오마르( 모타즈 말히스)가 그 전화를 받는다. 적신월사는 가자 지구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걸려오는 구조 요청에 응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측과 협의하고, 앰뷸런스 운전사로 시시각각 연락을 취해, 구급요원이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조율하고 있다. 오마르에게 처음 전화를 건 여자는 상황을 전하기도 전에 총에 맞아 숨진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연결된 전화에서는 가냘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발 여기로 와 주세요."
"절 데려가 주세요."
"다들 숨을 안 쉬어요."
영화는 당시 고스란히 녹음된 힌드와 적십자 직원 사이의 안타까운 대화와 적십자 내부에서 벌어지는 숨 가쁜 순간이 절묘하게 결합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재현드라마이다. 전화를 받았지만 80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의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는 난관이 첩첩이 놓여있다. 일단 8분 거리에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지만 바로 출동할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측과의 조율을 통해 안전한 이동루트를 전달받아야한다. 이제부터 피를 말리는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차 속에 갇힌 힌드는 핸드폰에 매달려 울고불고, 제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한다.
"몇 학년이니?"
"나비반이에요."
"나비반? 유치원생이니? 몇 살?"
"6살"
그 순간, 관객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전화기를 통해 계속 들려오는 탱크 궤도 소리, 기관총 사격 소리, 비명 소리. 함께 탄 친척은 다 죽었고, 피를 뒤집어쓴 채 소녀가 좁은 차, 뒷좌석에서 울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선의를 끝까지 기대하지만.... 연락이 없다.
힌드의 목소리
어떻게 되냐고? 겨우 앰뷸런스가 출동한다. 하지만 앰뷸런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12일이 지나서야 현장에 접근할 수가 있었다. 영화 후반부 5분은 폭격을 맞은 듯한 현장을 담고 있다. 형체를 알 수 없이 파괴된 앰뷸런스와 온통 총알을 뒤집어쓴 힌드의 작은 차를 보여준다. 구조대원도 죽었고, 힌드의 이모도, 친척도, 힌드도 이미 죽었다. 12일 뒤에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힌드의 목소리>는 그렇게 어린 소녀를 구하기 위해, 구조팀을 파견하려는 적신월사의 노력을 보여준다. 소녀 힌드의 실제 목소리가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것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전쟁의 광기와 공포 앞에서 무력감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다. 적신월사 사무실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발만 동동 굴려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참담하게 느껴지고, 이스라엘 측의 대응에 대해 깊은 의문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예전 같으면 이런 작품을 대하면 이스라엘을 악마화하기 위해 만든 팔레스타인/아랍 측의 선정적인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폄훼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스란히 녹음된 힌드의 목소리, 비참하게 찢긴 자동차 잔해와 하얀 천에 싸인 시신(이랄 것도 없이 유골만 남은)을 보면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것이다.
이 영화에는 총을 쏘는 이스라엘 군인이나 이스라엘 국기를 내건 탱크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직 녹음된 소리와, 그들이 철수한 뒤의 잔해만 보이니. 하지만 관객들은 그곳이 어디이며, 힌드가 타고 있던 차와 목숨을 걸고 달려간 앰뷸런스의 구조대원을 살해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 영화는 특정한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은 그 공백 속에서 스스로 판단하게 된다.
그 땅에 이스라엘이 있고, 팔레스타인이 있고, 힌드가 있다. 아니, 이제 힌드는 없다. 그 다음엔 누가 사라질까? 어쨌든 이 사건은 영화 밖 현실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적신월사는 적십자와 같다. 적십자의 ‘십자가’가 기독교(십자군)를 연상시킨다는 거부감으로 1929년 제네바협약 개정이후 공식적으로는 ‘적신월사’로 통용된다.*
* 힌드가 타고 있던 차는 기아 피칸토이다. ‘모닝’의 해외 브랜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