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ON
“호미 대학을 나와서 그런가, 허리가 호미처럼 꼬부라졌어”
28일(토) 오후 10시 15분 KBS 1TV <다큐ON>에서는 '석화밭 꼬부랑 사모곡'이 방송된다.
청정 바다, 득량만을 끼고 있는 전남 장흥군 상발마을은 자연산 굴, ‘석화’로 이름난 고장이다. 돌에 붙은 패각이 마치 꽃잎을 닮은 석화는 12월부터 3월 초까지가 제철이다. 이때가 되면 석화 밭에는 울긋불긋한 봉우리가 여기저기 솟는다.
여느 시골 마을과 달리 농한기가 따로 없는 상발마을 어매들은 1년 내내 일을 해선지 유독 허리가 많이 굽었다. 공들여 키우고 가르친 자식들은 이제 그만 호미를 내려놓으라지만, 철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석화를 따러 어매들은 호미를 들고 집을 나선다. 무릎을 구부리거나 앉지도 못해 굽은 허리를 더 깊숙이 꼬부리고 일하는 어매들의 높고 높은 봉우리가 가슴을 울린다.
올해 여든 하나인 김정단 어매는 스무 살에 시집오고부터 고생문이 활짝 열렸다. 남편은 일보다 놀기를 좋아했고, 슬하에 4남매 키우느라 애면글면하는 건 정단 어매 몫이었다. 하루 종일 들로 바다로 나가 일하고도 막내딸을 4년제 대학에 못 보낸 것이 어매에겐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그때의 울분이 지금도 머릿속을 시끄럽게 해 어매는 아직도 호미를 들고 바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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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일곱인 김재심 어매는 어려서부터 초등학교도 못 다니고 밤낮 일만 하고 살았다. 못 배운 게 한이 돼서 자식들 가르치는데 인생을 걸었다. 새벽같이 밭일, 갯일에 막노동까지 하며 4남 1녀를 가르쳤고, 그중 둘은 교감 선생이 됐다. 제일 야물던 둘째 아들을 먼저 앞세운 게 유일한 한이다. 팔십 평생 뼈마디가 닳고 닳도록 일한 기억밖에 없지만, 재심 어매에겐 자식을 키우던 그때가 참 좋았다.
올해 여든 하나인 이질례 어매는 상발마을에서 가장 허리가 많이 굽었다. 남편이 군의원을 지냈고 4남매 중 아들 둘을 돈 잘 버는 사업가로 길러내고도 질례 어매는 평생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 사라져가는 시대의 풍경
2월 중순, 석화 밭에 김재심 어매가 안 보인다. 석달 전 요양원에 모셔둔 남편이 설을 사흘 앞두고 세상을 뜨셨다. 함께 고생한 기억으로 가슴이 텅 빈 재심 어매, 상발마을에 혼자가 된 노인이 또 한 사람 늘었다.
상발마을에서 석화 밭에 나오는 어매들도 해마다 줄고 있다. 스무 명 남짓 갯밭을 메운 어매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는 게 모두의 작은 바람이다.
언젠가는 사라져버릴지 모를 시대의 풍경, 그러나 석화 밭을 메우는 모정의 세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