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정 대표
장항준 감독의 사극 <왕과 사는 남자>가 어제(12일) 1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감독에겐 꿈같은 ‘흥행+거장’감독의 표찰을, 그리고 제작자에게는 한국영화 희망의 등불을 안겨주었다. <왕과 사는 남자>를 제작사 온다웍스의 임은정 대표를 만나 이 영화가 ‘결국’ 만들어졌고, 개봉했고, 흥행에 성공한 이유를 들어보았다.
“개봉일 스코어(14만 7천명)를 보고는 '나 사기꾼 되는 거 아니야?' 어 잠도 못 잤어요. 처음엔 ‘BEP’(손익분기점)만 넘기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작품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관객 한 분 한 분에게 고맙다. 요즘 그런 날을 보내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Q. 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 순간은 언제인가?
▶임은정 대표: “시사회 무대 인사를 하고 나서였던 것 같다. 요즘은 예전과 달라졌다. 무대인사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긴 것 같다. 시사회 끝나고 화장실에서 듣는 리뷰가 확실한 것 같다. 울음소리도 들리고, 배우 이름 말하는 것도 들렸다. 너무 잘했다는 소리. 계속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연령층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시사 끝나고 평이 좋아서 용기가 났다.”
Q. 이 작품은 CJ ENM에서 시작된 작품인데.
▶임은정 대표: “이전 회사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조심스럽다. CJ E&M에서 일할 때 처음 기획되었다. 투자팀에서 일하다 자체 작품을 해보라고 해서 기획제작팀에서 작품을 메이드하게 된 것이다. 그 때 하려고 했던 작품이 세 개가 있었다. <연애 빠진 로맨스>와 공포물, 그리고 이 작품이었다. 공포물은 만들지 못했다. 오리지널로 만들고 싶었고 원안을 쓴 작가의 아이템에서 고른 것이다. 전략적으로 생각했었다. 라인업 중 로코나 공포물에 비해 사극은 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의미를 갖고 싶었던 게 이 아이템이었다. 사극 매니아는 아니지만 거대한 역사적 사건 옆에 있는 개인의 이야기에 흥미가 있었다. <타인의 삶>이나 <킹스 스피치>처럼. 작품을 준비하면서 엄흥도란 존재를 알게 되었다. 유배 온 왕이 있고, 그 옆에 소인물이 있다면 어떨까. 주제적으로 끌려 야심차게 시작한 작품이다. 신인작가와 작업을 진행하기에는 어려웠다. 원래 기획단계에서는 그런 식으로 초고를 만드는데 그러지 못하고 트리트먼트 원안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황성구 작가에게 제안한 것이다. 투자팀에 있을 때 같이 작업한 적이 있어서 잘 써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는 코로나 등 외부요인으로 작업이 어려워졌다.”
Q.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잡았다.
▶임은정 대표: “황 작가님에게 ‘5년 안에 이 작품을 반드시 세상에 내놓겠다. 그때까지 이 시나리오를 아무에게도 주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그랬었다. 그게 퇴사 후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었다.”
왕과 사는 남자
Q. ‘엄흥도’와 ‘몇몇 장면의 유사성’을 주장하며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임은정 대표: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입장표명을 했다. 시나리오를 픽한 게 아니고, 처음부터 기획하고, 회의하고, 만들어간 것이다. 디벨로프 과정에서의 모든 작업, 피드백이 다 있다. 무슨 액션이 없기에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성실하게 대응하려고 한다”
Q. 시나리오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독창적이라고 느낀 것은 유해진-안재홍이 펼치는 유배지 선정 에피소드이다. 그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임은정 대표: “황성구 작가와 논의할 때 주도적으로 어떤 사건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몇 차례 회의를 하며 제주도로 유배 갔던 추사 김정희의 사례를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유배당했던 양반들 중에 나중에 복권되어 전화위복이 되었고, 그 마을에 좋은 일이 있었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면 어떨까. 독자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초고에 나오는 내용이다.”
Q. 단종 신드롬이 대단하다. 박지훈 캐스팅을 통해 이런 것을 기대했었나?
▶임은정 대표: “메인 플롯은 나이는 어리지만 계급이 높은 왕과 시골의 배운 것 없는 촌장이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게 욕심이 났다. 지금 같은 현상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신드롬은 기획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박지훈의 캐스팅은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 1020세대가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호응할 줄은 몰랐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이런 즐거움으로 하는 모양이다.”
Q.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이 넘어선 것에 대해 영화인으로서 분석을 하자면?
▶임은정 대표: “극장에 대한 그리움이 오랫동안 쌓여있었고, 때마침 이런 영화가 나온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는. 여러 번 보는 N차 관람이 어린 친구들에게도 있다니 놀라웠다.”
Q. 장항준 감독은 사극/흥행감독은 아니었는데 어떤 마음으로 연출을 맡겼는지.
▶임은정 대표: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시선, 주제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인물을 어떤 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이홍위를 보는 시선, 그런 이홍위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가장 따뜻하게 표현해줄 수 있는 감독이 장항준 감독이라고 보았다. 그 때 <리바운드>를 봤었다. 내 생각이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업계에서는 장 감독의 흥행에 대한 평가가 박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투자팀에서 일하면서 감독님 글을 접했다. 황 작가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훌륭한 각본가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 드라마 <사인>, 예능 <무한상사>, 영화 <기억의 밤>, <리바운드>에서 보여준 따뜻함, 그리고 <꼬꼬무>나 <알뜰신장>에서 보여주는 멘트가 인상적이었다.”
임은정 대표
Q. 유해진 캐스팅은 수월했는지?
▶임은정 대표: “원래 유해진 배우는 작품 선택에 장고하는 스타일로 소문나 있다.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는 상대적으로 짧게 걸린 편이라고 자부한다.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감독님이 <도그 데이즈> 홍보 때 두 사람이 만나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그때 그린라이트 느낌이 들었다. 믿음을 갖고 제안했다.”
Q. CJ를 나와 영화사를 차렸다. 온다웍스는 무슨 의미인지.
▶임은정 대표: “기획피디로 일하면서 작가의 중요성를 느꼈다. 감독이나 스태프는 동료가 많은데 작가는 피디만 보고 일한다. 피디가 영화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중요하다. 나도 ‘무조건 메이드 시킨다’는 목표가 있었다. CJ를 나와 회사를 차렸다. 서핑을 좋아하는데 파도가 밀려올 때 ‘온다, 온다’하며 흥분한다. 회사 차리면 꼭 그 이름을 써야지 생각했었다. 회사 그만두고 포르투갈에 한달 살이 하며 서핑을 즐겼다. 그때 처음 들른 샵 이름이 ‘온다’였다. ‘파도’란 뜻이란다. 이게 계시인가 생각했다. 2022년 가을 무렵 준비했다.”
Q. 영화의 꿈은? 감독이나 연기가 아니고 기획제작을 택한 계기가 있는지.
▶임은정 대표: “난 국문과 출신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서는 방송동아리 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때 영화를 보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상피디 동아리 활동 했고. 스토리 다루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국문과 학생이면서도 호주에 교환학생을 갔다. 호주는 영화산업이 흥한 데는 아니지만 직업적으로 영화인의 생계유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그곳 영화학교에서 희곡창작, 디렉팅을 배웠다. 단편을 만드는 수업에서 나 자신이 뭘 제일 잘 하는지 알겠더라. 누가 뭘 하고, 누가 뭘 할지를 잘 판단하는 것이다. 피디의 역할이다. 그리고 CJ까지 가게 된 것이다. 상업영화를 하고 싶었고, 투자팀에서 사람을 뽑았던 것이다.”
Q. 한국 사극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까?
▶임은정 대표: “나도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지금 개봉된 나라에서 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나도 <라스트 듀얼> 같은 사극을 좋아한다. 한 여자를 두고 결투를 하니. 아마, (외국관객들은) 그런 식으로 영화를 재밌게 보는 모양이다.”
Q. 비에이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와 공동제작을 한 이유는?
▶임은정 대표: “장항준 감독을 전제로 사극을 만드는 작업이다. 내가 프로듀서했던 <연애 빠진 로맨스>는 젊은 감독과 배우와 일하는 것이었지만 이 사극은 선배들을 모셔와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장원석 대표님에게 요청했다. 그런데 장 대표가 한 차례 거절했다. 그 때 <리바운드>가 잘 안 되었기에. 장항준 감독에겐 빚이 있는 셈이었다. ‘이건 비극이고, 상업적으로 잘 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난 그 말이 이해가 되었다. 다행히 쇼박스가 귀를 기울여주었다. 피칭에 적극적이었다. 자극적인 상업프레임의 영화 말고 힐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비에이 장 대표는 제가 드릴 수 없는 제작자로서의 안정감을 주었다.”
Q 제목이 처음부터 <왕과 사는 남자>였나?
▶임은정 대표: “트리트먼트에서는 ‘흥도: 왕과 사는 양반’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 왕과 함께 사는 남자’였다가 내가 ‘왕과 사는 남자’로 했다. 이 제목이 어울릴까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보다 더 맞는 게 없다고 결론 내렸다.”
왕과 사는 남자
Q. 흥행제작사의 다음 프로젝트는?
▶임은정 대표: “준비하고 있는 게 몇 편 있다. <죄 많은 소녀>의 김의석 감독과 함께 경성을 배경으로 열차 내에서 벌어지는 장르물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황성구 작가와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이 사극을 준비 중이다. 조선시대인데 특정 왕이 아닌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액션물이 될 것이다.”
Q. 한국영화계에 대한 조언을 하자면.
▶임은정 대표: ”한국영화가 어렵다지만 제작자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할 것이다. 장항준 감독도 이 영화를 만들 때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시대정신이 있었다. 작품에서 단종과 금성대군이 서신을 나누는 장면과 내레이션이 있다. 그런 소통이 중요하다. 그런 소통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사회적 참사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미래로 나가야한다는 생각이 있다. 사회적으로 기억해야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이 ‘기억’인 것 같다. <왕과 사는 남자>는 기억에 남게 해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