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감독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탈주>의 이종필 감독의 신작 <파반느>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를 읽고 감동받은 이종필 감독은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영화화를 꿈꿨고 마침내 고아성, 변요한, 문상민의 청춘극을 완성시켰다. 공개 후 호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종필 감독을 만나 <파반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말 <파반느>의 공개를 기다렸다. 원래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만든 영화였다. 2024년에 80% 정도를 찍었고, 장마 지나 하루 더 찍고, 인디언 장면 찍고, 아이슬란드 부분 찍고, 눈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작년 2월, 마침내 버스정류소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4월 무렵 첫 편집본을 마친 뒤 넷플릭스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게 진심으로 행복하다.”
Q. 개봉을 못한 충무로영화가 넷플릭스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래 준비한 감독으로서 억울하지 않은가?
▶이종필 감독: “전혀 그렇지 않다. 아쉬운 것은 일반적인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비공개 시사를 통해 관객의 의견을 접할 기회가 있다. 피드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게 저한테는 중요했다. 그런데 넷플릭스측 시사회로 의견 나눈 게 유일한 셈이다.” (넷플릭스에 대한 생각은?) “그 사람들 영화에 진심이다. 다들 한국영화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다. (파반느) 시나리오를 봤을 수도 있고, 이 영화가 어떤 작품인지 전해 들어서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넷플릭스가 올해부터 라인업을 다양하게 가져가는 모양이다. 이창동 감독님 작품도 하반기에 있다.”
'파반느'
Q. 글로벌OTT로 공개되는 것이니 외국관객과 동시에 작품을 만나게 된다. 해외 반응을 보았는지.
▶이종필 감독: “영어를 못 해서. 지금은 한국 영화팬이 이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 나도 예전에 영화를 볼 때는 ‘이게 뭔가’하며 본 게 있다. 지금 외국의 누군가도 그렇게 이 작품을 보고 반응을 남길 것이다.”
Q. 백화점의 지하공간이나 3명이 어울리는 호프를 보면 어둠이 강조된다.
▶이종필 감독: ”이 영화는 빛과 어둠에 관한 이야기이다. 차가움이 있으면 따뜻함도 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85년이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소설의 느낌 때문인지 다들 1980년대, 90년대를 말한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레트로이긴 한데 많은 요소가 불균질하게 섞여 있다. 요즘 나오는 것들은 모든 것이 너무 매끈하다. 그래서 생뚱맞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편집도 그렇게 했다. 이게 뭐냐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다. 호프는 소외받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보면 호프 주인 신정근의 초상화가 벽에 걸려있다.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초상들이다. 그들에겐 안식처 같은 공간이었으면 했다. 어항(수조)까지 있으니 1980년대 감성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데가 많다. 지금의 한국사회도 많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Q. 소설을 읽고, 영화로 만들기도 마음먹은 지점이 있다면.
▶이종필 감독: “영화학교 출신이기도 하고,(한예종) 졸업하고 영화의 꿈이 있었다. 운 좋게 이경규 대표를 만나 영화 <전국노래자랑>으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되었다. 영화를 할 때부터 다짐한 게 있다. ‘나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대중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전국노래자랑> 만들 때가 서른이 되던 때였다. 그 때 소설을 보고 놀랐다. 너무 리얼한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청춘의 이야기이다. 10대와 20대 때 생각한 것들이 나이 먹으며 달라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옆의 친구들도 그러했다. 그들과 보낸 시간을 생각해 보라. 그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어느 순간 그들이 하나둘 떠나간다. 누군가는 말도 안하고 떠나기도 한다. 그 때 그 소설을 보고는 그냥 내 이야기인 것 같았다. 너무 몰입을 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떠나보내고, 그리워하고. 또 만나고. 그런 이야기가 막연하게 좋았다. 그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었지만 잘 안되었다.”
이종필 감독
Q. 결국 영화는 만들어졌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 어려웠던 지점은 어떤 것이었나.
▶이종필 감독: “사실 투자받기가 어려웠다. 전작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이나 <탈주>는 로그라인이 선명했다. 장르영화로서 분명하다. 그런데 이건 그게 어려웠다. ‘빛을 밝혀주는 이야기’인데 그게 잘 안 보인다. 투자자들도 다들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는 좋아했지만 안 되었다. 주위 사람들과 오래 이야기했었다. 고아성과도. 그러다가 <삼진그룹> 만들고 플러스엠과 한 번 해보자고 그랬다. 만들고 나서는 넷플릭스와 연결된 것이다.”
Q. 원작에서는 고아성이 연기한 김미정이 ‘못 생겼다’고 묘사된다. 이 지점이 아주 중요한데.
▶이종필 감독: “영화화하면서 고민이었던 지점이다. ‘못생긴 여자’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큰 고민이었다. 혼자 눈, 턱, 코 다 나눠서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구글로 못생긴 여자 찾아보다가 어느 날 문득 자괴감이 느껴지더라. 너무나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소설을 다시 읽어봤다. 1985년이 배경이다. 소비자본주의가 중심인 사회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시대였다. 그런 외모지상주의를 화두로 제시한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자본주의 이야기를 영화로 표현할 능력이 안 된다. 그런 고민을 류현경 배우(‘전국노래자랑’)와 나눴었다. 류 배우가 고아성 배우랑 친했고 그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다. 아성 배우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난 당연하다는 듯이 ‘당신은 예쁘시잖아요’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성 배우는 ‘저는 이 인물의 눈을 표현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더라. 그 말을 듣고 다시 소설을 보았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사랑할 자신이 없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못난 얼굴이란 것도 ‘자신 없음’ 아닐까. 누구나 그런 마음을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미정은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에는 ‘못 생겼다’는 표현은 없다. 그냥 ‘그렇잖아요~’나 ‘박복한 아이야’라는 표현만 나온다. 나도 모르게 한 인물을 대상화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글을 쓰면서 문득 미정은 어떨까 생각했다.”
Q. 연상호 감독의 <얼굴>을 봤는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이종필 감독: “아쉽게도 그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는지는 알고 있다. 그 시대 한국사회는 야만의 시대이니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럴 수가 없다.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어야하는데 그건 주관적이다. 분장을 하면서도 자괴감을 느꼈다. ‘못생기게 해달라’라니. 컨셉은 분명했다. 명암을 어둡게, 피부는 까끌까끌하게. 하지만 매끄러운 것도 있다. 공포스럽게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멸망해도 계속 생각날 것 같은 스크래치를 생각했다. 후킹을 남기자는 의도이다. 잘 보면 점점 밝아지는 것이 있다. 원작에 나오는 것을 충실하게 영화에 담고 싶었다. 어둠속에 방치된 전구. 빛나는 사람. 서서히, 점점 밝아진다. 빛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파반느'
Q. 엄마 이봉련은 어떻게 된 것인지.
▶이종필 감독: “오프닝을 이상하게 만든 의도가 있다. 원작에도 경록의 부모 이야기가 나온다. 그걸 모른다 해도 관객들은 그냥 웬 남자와 여자의 멜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마치 왕가위 영화 같이. 찍을 때는 장선우 감독의 <우묵배미의 사랑>의 룩을 염두에 뒀다. 남녀의 멜로이다. 무성영화 느낌으로. 음악이 깔리고 사과를 깨문다.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 요한이 경록에게 하는 설명에서 더 디테일한 게 있다. 그 시절 <우묵배미의 사랑>이나 왕가위 스타일을 내기 위해서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필요하다. 이봉련 배우는 <삼진그룹>을 같이 했었다.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은 시간과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엄마는 어떻게 되냐고? 원래 대본에는 그 다음 이야기가 있었다. 씩씩하게 잘 산다.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을까 싶은 엄청난 코미디이다. 그런데 그 장면은 안 찍었다.”
Q. 변요한이 연기하는 요한에 대해.
▶이종필 감독: “요한이라는 인물은 규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규정 못하는 사람’으로 시작했다. 소설에서는 ‘존 레논 좋아하고 안경 쓴’ 인물이라고 나온다. 그 역할에 대해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변요한이 한다면 뭔가 극단적을 종잡을 수 없는 연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연기를 하다가 뜨겁게, 능글맞고 싸늘하게. 이 캐릭터도 그렇다. 친구이면서도 타인이다. 규정지을 수 없는 인물이다. 유쾌하지만 사연이 있는 그런 정도의 캐릭터이다. 만나보니 이 이야기를 너무 잘 알고, 20대의 바이브를 너무 잘 이해한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종필 감독
Q.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같다.
▶이종필 감독: “작품 들어가기 전에. (문)상민과는 아침마다 이야기를 나눴고, (변)요한 배우는 주말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고아성 배우와는 오래전부터 ‘파반느’이야기를 했었다. 요한 배우는 존 레논은 안 어울린다면 티셔츠는 데이빗 보위라고 했다. 그런데 재즈연주자를 보는 것 같았다. 재즈란 것은 계산하지 않고 즉흥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변 배우는 그런 즉흥적인 연기를 자주 보여주었다. 규정짓는 것을 싫어하는, 변주가 많은 그런 배우이다.”
Q. 예전엔 연기도 많이 했었다.
▶이종필 감독: “배우는 꿈도 안 꿨었다. 어렸을 때 막연하게 연출을 하고 싶었다. 순수하게 영화가 좋았다. 감독이든 스태프든 영화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단편 찍을 때 선배가 허우샤오시엔 감독 영화를 보여주면 ‘여기 배우들 연기하지 않지? 너도 연기 하지 마!’라면 연기 디렉팅을 하는 것이었다. 그 ‘연기하지 않음’을 열심히 했다. 작품을 망치지 않기 위해. 그래서 센 역할의 캐릭터는 안하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하라고 하니까. 작품을 망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저씨>(2010) 연기할 때도 이걸 왜 해야 되지 하며 연기했었다.”
Q. <파반느>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이종필 감독: “원작도 그렇지만 정말 그 캐릭터를 그렇게 죽여야 할까? 엄청 고민했다. 그냥 ‘문득’ 죽은 것이다. 인생에서 살다보면 그런 게 있다. 저로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환한 빛을 비춰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간직하고 싶으니까. 조명감독에게는 그 장면이 가장 눈부신 장면이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Q. 오로라 장면과 인디언이 말 타는 장면은?
▶이종필 감독: “오로라는 정말 만나보기 힘든 광경이다. 아이슬란드에서도.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와 고아성, 문상민 배우 이렇게 셋이서 아이슬란드에 가서 찍었다. 셋의 마음이 잘 맞았는지 그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CG를 첨가한 것이다. 인디언 장면은 인천에서 찍은 것이다. 훌륭한 CG팀 때문에 장면이 잘 살아났다.”
이종필 감독
“그해 여름 처음 사랑에 빠졌다. 때로는 혼란스러웠다. 사랑했었다’ 이게 이 영화를 찍은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다들 그런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종필 감독의 <파반느>는 지난 2월 20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당신의 청춘은 어둠에 묻혔는지, 빛 속으로 사라졌는지.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