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다큐ON>
K-컬처의 확산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려는 세계인의 발걸음이 늘고 있다. 전 세계에 설립된 세종학당은 그 상징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이보다 한 세기 전, 이미 독일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최초의 강좌가 문을 열었다.
<다큐ON>은 일제강점기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최초의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프랑스 음성학연구소에서 ‘훈민정음 자모 체계’를 녹음해 남긴 이극로의 삶을 우리나라 방송 최초로 추적, 조명하고자 한다.
‘물불’ 가리지 않는 뜨거운 열정과 노력으로 조선어 지키는 일에 앞장섰던 ‘물불 이극로’, 일제의 갖은 탄압과 압박 가운데서도 조선어 편찬 사업에 매진했던 그의 이름은 왜 역사 속에서 잊힌 이름이 된 것일까?
프랑스 국립도서관 음성학연구소에는 100년 전 조선인의 음성이 녹음된 레코드가 있다. 우리나라 훈민정음 자모 체계를 녹음한 음성 레코드 중에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00년 전 프랑스 파리까지 와서 훈민정음을 녹음한 사람은 이극로. 그는 왜 100년 전 프랑스 파리 음성학 연구소를 찾아 훈민정음 자모 체계를 녹음한 것인지 그 의도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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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년 전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개설된 한국어 강좌
독일 프로이센 시대의 문서들을 보관하는 프로이센 문화유산기록보존소에는 100년 전 독일에서 열렸던 한국어 강좌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3년 동안 외국인 대상으로 열린 이 강좌를 개설한 사람은 바로 이극로였다. 그는 독일 훔볼트대학 유학 당시 ‘한국어 강좌’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이극로는 한국어 강좌를 위해 한글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 독일 훔볼트 대학 도서관에는 현재까지도 이극로가 만든 한글 교재 <허생전>이 보관되어 있다.
KBS 1TV <다큐ON>
■ 조선어사전 발간에 평생 매진한 ‘언어독립투사 이극로’, 그의 이름이 잊힌 이유는?
1912년 고국을 떠났던 이극로는 독일에서 조선인으로는 최초로 경제학 박사를 받고 1929년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조선어연구회에 가입한 이극로는 조선어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조선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돌입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끌려간 이극로는 조선어학회 회원들 가운데 가장 높은 형인 6년 형을 선고받았다. 일제 경찰의 갖은 고문으로 몸은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가운데, 감옥에서 해방을 맞아 석방된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조선어학회 회원들과 함께 <조선말큰사전> 편찬 작업에 매진했고, 그는 1947년 사전 작업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조선말큰사전> 1권을 펴내는 데 성공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날 노래>를 작사하기도 했던 이극로. 그는 평생을 바쳐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에 매진했지만, 그의 이름은 오랫동안 우리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언어 독립투사’ 이극로의 삶을 조명한 KBS 1TV <다큐ON> ‘100년 전 그 목소리, 물불 이극로’ 편은 1월 24일(토) 밤 10시 15분에 방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