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쥬스
B급 정서를 담뿍 품은 악동 팀 버튼의 영화 <비틀쥬스>(1988)는 국내에 <유령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며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신혼부부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은 뒤, 행복했던 시절을 잊지 못해 유령이 되어 집을 떠나지 못한다는 설정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필 그 집에 세기말적 고민을 혼자 떠안은 듯한 소녀 리디아의 가족이 이사 오면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기막힌 동거가 펼쳐진다. 이 두 세계를 오가며 팀 버튼 특유의 이야기를 완성짓는 존재가 바로 ‘비틀쥬스’다.
영화 <비틀쥬스>는 오랜 과정을 거쳐 2019년 브로드웨이에 올랐고, 2021년 한국에서도 소개되었다.(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그리고, 마침내 그 재연 공연이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홀에서 펼쳐지고 있다. 여전히 팀 버튼의 악(惡/樂)취미가 물씬 풍긴다.
뮤지컬은 원작 영화를 무대극에 최적화했다. 아담과 바바라 커플은 교통사고가 아닌, 집을 청소하다 바닥이 꺼지는 황당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 ‘스위트 홈’에 대한 집착이 강화된 셈이다. 사춘기 딸 리디아는 아빠와 새엄마에게 ‘뾰족하게’ 맞서고, 유령 부부는 이들을 내쫓고 싶지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어 고민한다. 그 틈새를 백억 년을 산 유령 비틀쥬스가 파고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리디아는 유령을 볼 수 있다. 이제 산 자와 죽은 자, 사연 있는 자와 사심 가득한 자들이 뒤섞인 거대한 소동극이 시작된다.
● 그 이름을 감히 세 번 부르지 마시오!
대니 엘프먼의 몽환적인 영화음악은 에디 퍼펙트의 다채롭고 화려한 넘버들로 대체되었다. 물론 시그니처 송인 ‘Day-O’(The Banana Boat Song)도 빠짐없이 등장해 흥을 돋운다.
비틀쥬스는 캐릭터 사이의 메신저일 뿐만 아니라, 객석을 향해 직접 말을 거는 해설사 역할도 겸한다. 마블 코믹스의 데드풀처럼 ‘제4의 벽’을 수시로 깨뜨리며 관객을 극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번 2025-2026 시즌 공연에서는 코미디언 이창호가 각색에 참여해 대사를 더욱 현장감 있고 코믹하게 다듬었다. 세상 오래 산 유령의 ‘아무 말 대잔치’가 어떻게 한국적 정서와 맞닿아 쏟아지는지가 관람의 핵심 포인트다.
비틀쥬스
팀 버튼의 화려한 비주얼도 무대 위에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거대한 ‘모래벌레’가 무대를 휘젓는 장면은 귀엽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며 관객의 시각적 쾌감을 자극한다.
정성화, 정원영, 김준수가 비틀쥬스를, 홍나현과 장민제가 리디아를 연기하며 무대를 꽉 채운다. 기실 악당처럼 보이지만 비틀쥬스는 그저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길 원하는, 지독하게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 아차, 하마터면 이름을 완성할 뻔했다. 뮤지컬의 마법에 도취되더라도 마지막 이름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시라. ‘비틀쥬스’는 결국 외로운 이들을 위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오는 3월 22일까지 마곡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그 즐겁고도 기괴한 파티가 계속된다. (박재환.2026)
▶뮤지컬 비틀쥬스(BEETLEJUICE) ▶공연: 2025년 12월 16일 ~ 2026년 3월 22일/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홀 ▶출연:비틀쥬스(정성화, 정원영, 김준수), 리디아(홍나현, 장민제), 바바라(박혜미, 나하나), 아담(이율, 정욱진), 찰스(김용수, 김대령), 델리아(전수미, 윤공주) ▶극본: 스캇 브라운, 앤서니 킹 ▶작곡/작사: 에디 퍼펙트 ▶연출:알렉스 팀버스 ▶한국협력연출:심설인 ▶한국어 대본:김수빈 ▶코미디각색:이창호 ▶제작: CJ EN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