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쇼
지난 9월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미야케 쇼(三宅唱) 감독의 신작 <여행과 나날>(원제:旅と日々)이 곧 개봉한다. 서울독립영화제 상영과 정식 개봉에 맞춰 한국을 다시 찾은 미야케 쇼 감독을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겼다.
미야케 쇼 감독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 보면', '새벽의 모든' 등의 작품을 통해 독특한 감성을 자랑한다. 신작 '여행과 나날'은 츠게 요시하루(つげ義春) 작가의 단편만화 '해변의 서경'(海辺の叙景,1967)과 '혼야라동의 벤상'(ほんやら洞のべんさん,1968)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여름의 바닷가와 겨울의 산속 마을이 배경인 두 작품을 시나리오 작가 '이'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준다. 심은경 배우가 시나리오 작가 '이'를 연기했다.
Q.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서울독립영화제에 참석했다. 한국관객을 만나는 소감은.
▶미야케 쇼 감독: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관객과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와 즐거움이 있었다. 관객들의 질문 하나하나가 모두 제겐 자극이 된다.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모두들 진지한 표정이었다. 모든 분들이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제게는 자극이 되는 시간이다.“
'여행과 나날'
Q. 화면 비율이 조금 특별하다. 그런 비율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미야케 쇼 감독: “정확히는 1:1.37비율이다. 옛날 방식이다. 이 비율은 직감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촬영감독과 이야기하다가 이걸로 하자. 자연의 풍성함을 그대로 찍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원했다.”
Q. 첫 장면부터 자연의 풍광을 잘 담아낸 것 같다. 특별한 노력이 있었는지.
▶미야케 쇼 감독: “날씨가 큰 테마 중 하나였다. 어떻게 바람을 담을 것인가. 작은 바람은 현장에서가 인공적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다양한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 준비를 했다.”
Q. 츠게 요시하루의 오래된 만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는데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미야케 쇼 감독: “원작에서 ‘이 사람은 이상한 부분이 있네’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유머로 승화할 수 있다. 또 하난 슬픈 부분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다. 영화적인 추구이다. 다른 작가의 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츠게 요시하루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만화를 그린 사람이다. 칸 사이에 놀라움이 있고, 다음 장을 넘겼을 때도 놀라움이 있다. 그런 걸 어떻게 영화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제였다. 1960년대와 지금은 사회모습이나 풍경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안 변한 것도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 작품에는 여행하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 모르는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심은경 배우는 일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더 깊은 의미를 전해줄 수 있다. 특별한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Q. 츠게 요시하루의 작품을 영상에 담기로 생각한 것은 언제였나.
▶미야케 쇼 감독: “작가가 만화를 그린 시기는 19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였다. 지금은 거의 잊힌 인물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뮤지션이나 만화가처럼 표현을 하는 분들은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메이저’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의 작품을 읽고, 영향을 받고 있다. 저는 대학생 때 처음 접했다. 처음부터 그의 작품세계를 알았던 것은 아니다. 아마 처음 봤을 때는 ‘놀랍다’, ‘당황스럽다’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 후 츠게 요시하루의 작품은 계속 내 책장에 있었다. 코로나 시기에 피디가 이걸 영화로 만들지 않겠냐고 제안했었다. 여행을 주제로 한 테마에 끌렸다.”
미야케 쇼
Q. 타인과의 만남을 다룬다. 관계의 미묘함을 영상에 담을 때 신경 쓴 부분은?
▶미야케 쇼 감독: “두 사람의 관계나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캐릭터가 적극적으로 나서 사이좋게 보여야하는 것은 없다. 그게 이 영화의 포인트이다. 원래 인간관계가 너무 복잡하다.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고, 너무 만나지 않아서 이제는 그런 생각도 못한다. 캐릭터마다 형편이 다를 것이다. <여름 편>에서 두 사람은 항상 같은 프레임에 있고 언제 각각 나눠지느냐가 중요하다. <겨울 편>은 반대이다. 두 사람이 긴 시간 각각의 프레임에 있는데 언제 같이 들어오느냐가 중요했다.”
Q. ‘여름’편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는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다. 이것은 원작만화에는 없는 설정이라고 하는데.
▶미야케 쇼 감독: “배우한테는 소중한 신이었다. 촬영을 한 곳이 섬이었고, 여름이었다. ‘수영을 못 한다’, ‘손가락 다쳐서 못 들어간다’이다. 완벽한 상태가 아니란 것이다. 과거에 어떤 원인이 있어서 마음이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관객이 볼 때에도 저 여자캐릭터가 뭔가 다른 분위기구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장치이다. 아마 상처가 없었다면 그냥 해변에서 놀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관계가 더 부각되지 않을까.”
Q. ‘여름 편’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고 지도교수가 ‘섹시하다, 관능적이다, 에로틱하다’고 감상평을 말하는데. 왜 그런 느낌을 받았을까.
▶미야케 쇼 감독: “일단은 섹시하다, 관능적이라고 하는 것은 여성(극중 주인공)에 한정한 것은 아니다. 그 교수는 자연의 풍경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촬영할 때 비가 오는 상태였고, 물에서 수영한다. 바람이 불 때 그 바다에 들어가면 ‘나 죽을 것’ 같은 느낌. 그때 살아있는 감정을 교수는 그렇게 본 것이다. 관능적이라는 것은 시에 가까운 표현이다. 죽음과 삶이 만나는 지점. 머리에 있는 것은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Q. 그 장면에서 ‘언어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야케 쇼 감독: “관능적이라는 표현과 연결하면.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대학 강의실에서 있었던 그 이야기는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는 정답이 없다. ‘맞아’, ‘안 맞아’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게 재밌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오해가 생기면 힘들다. ‘이런 신과 이런 말’에서 도망치자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이’(심은경)가 ‘나에겐 재능이 없다’고 말하거나 ‘고독’이란 단어를 말할 때에도 뉘앙스가 다르다. 의도적으로 그런 단어를 선택했다.”
'여행과 나날'
Q. 그러고 보니, 여름 편과 겨울 편에 다 카메라가 나온다. 같은 카메라인가?
▶미야케 쇼 감독: “다른 카메라였다. 이 스토리는 각본가가 펜을 버리고 카메라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더 펜을 잡기 위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원작자(츠게 요시하루)는 만화를 그리기 전에 사진도 많이 찍었다. 컬렉션도 있다. 농촌지역에 가서 풍경을 엄청 많이 찍었단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고는 내가 (실제)본 것과 다르다고 느끼게 되면서 그림을 그렸단다. 그런데 그림을 더 잘 그렸다는 것이다.”
Q. 첫 장면은 아마 도쿄의 빌딩 숲 같다. 건물 안의 여주인공의 심태를 보여주기 위한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그렇게 현대화된 도심이란 느낌은 안 든다.
▶미야케 쇼 감독: “그 신이 엄청 중요하다. 사실은 일본 관객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서 여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긴 여행을 다녀와서는 ‘여기가 도쿄이지’ 그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주쿠 근처인데, 어딘지 몰라도 괜찮다. 하지만 도쿄라는 감정을 줄 것이다. 스태프들이 좋아하는 신이다.”
Q. 겨울 편은 ‘혼야라동의 벤 상’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혼야라동’이 뭔가?
▶미야케 쇼 감독: “‘혼야라동의 벤 상’ ‘벤’은 그 남자 이름이고. ‘혼야라동’은 이글루처럼 눈으로 지은 집(가마쿠라)을 나가타 지방에서 쓰는 사투리이다.”
Q.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관객이다. 극중에서 일본 사투리가 많이 나오는가? 한국배우가 연기하는 것과는 또 다른 관심사이다. 한국의 지역사투리처럼. 먼 곳으로 떠난 여행이니.
▶미야케 쇼 감독: “사실 남자배우가 하는 사투리가 그렇다. 60프로 정도 알아들을 수 있다. 상상력 더하면 다 알아듣는다. 그런 단어만 선택해서 대사에 넣은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만 따지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모를 수 있다. 여행이란 것은 새로운 풍경과 새로운 말을 만나는 것이다. 사투리는 그 지역의 역사가 반영된 것이다. 여행을 떠난 곳에서 말이 전혀 다른 사람과 만나면 굉장히 어색한 느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말이 다르지만 감정이 통하는 게 있을 것이다. 사투리와 표준어에서 느껴졌으면 좋겠다.”
미야케 쇼 감독 - 심은경
Q.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고 싶은가.
▶미야케 쇼 감독: “일단은 영화작업을 하면서 그 때 그 때 새로운 작품, 장르를 했으면 한다. 테마는 매번 바뀔 것이다. 안 바뀌는 것이 있다면 영화배우이다. 내 작품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요한 테마이다. 앞으로 심은경 배우와 같이 또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것과 다음 작품은 전혀 다른 상황일 것이다. 그래서 매 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감독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작품은 정해졌다. 내년에 촬영을 시작하기로 결정되었다. 내용은 비밀이다. 아마 한국 관객은 2027년에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미야케 쇼 감독의 서정적인 영화 <여행과 나날>은 10일 개봉한다.
[사진=엣나인필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