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늘 시인 ⓒ김이재
제4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으로 시인 나하늘의 「사라지기」 외 50편이 선정되었다.
지난 달 30일, 민음사 대회의실에서는 김수영 문학상 본심 심사가 이루어졌다. 올해 김수영 문학상에는 역대 최대 인원인 총 359명의 작품이 투고되었고, 그중 9명이 예심을 통과해 본심에 올랐다. 심사를 맡은 허연 시인, 이수명 시인, 조강석 평론가는 투고작 대다수의 완성도가 갈수록 상향되어 가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으나, 비슷한 시어나 이미 형성된 스타일 들이 반복된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평가되었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각각 대체할 수 없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었고, 심사에서는 그 특징의 단점과 장점이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를 중심에 둔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다.
올해 김수영 문학상의 영예는 나하늘 시인의 「사라지기」 외 50편에 돌아갔다. 「사라지기」 외 50편은 지금-현재라는 감각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건축술에 능하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지지를 받았다.
심사를 맡은 허연(시인)은 "나하늘의 작품은 자기만의 갈피를 가지고 있었다. 포착한 생의 단면들과 자기만의 성찰을 가지고 한 편 한 편 자신의 분류법을 채워가고 있었다. 나하늘의 시는 또 치밀하고 정교했다. 오랜 시간 연마를 거듭해 자신에게 할당된 과녁을 찾아간 과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 시간이 시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었다. 마치 선방 (禪房) 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화두정진한 수좌의 시 같았다."고 평했다.
나하늘은 "언제부턴가 제가 사라진 세상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하였습니다. 내가 커서 참 불편했는데, 내 슬픔도 내 사랑도 작아져서 좋다. 그 묘한 해방감이 강렬해서 시를 읽는 일이나 시를 쓰는 일이 작아지기의 수행, 그리고 운이 좋다면 사라지기의 수행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맞고, 눈이 오는 날에는 눈밭에 발이 빠지'며 걷자고 하겠습니다. 그곳에 가면, 잠시,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를 지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나하늘 시인은 독립문예지 《베개》의 창간 멤버로 2017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작 활동과 함께 아티스트 북을 만들고 있으며, 영어로 시를 번역하고 독립 출판물을 출간하기도 했다. ‘파업 상태의 언어’와 ‘읽히지 않는 책’을 시라는 장르로 매개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는 나하늘 시인의 작업은, 그의 첫 시집이자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제4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나하늘 시인에게는 상금 1,000만 원이 수여되며, 수상 시집은 연내 출간될 예정이다. 12월 초 발행되는 문학잡지 《릿터》에서 수상작의 대표 시 4편이 우선 공개되며, 시인의 수상 소감과 심사위원의 심사평 전문도 함께 볼 수 있다.
[사진=나하늘 ⓒ김이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