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넷플릭스를 통해 또 한 편의 화제작이 공개되었다. 네이버에서 연재되며 인기를 끌었던 웹툰을 원작으로 한 10부작 <스위트홈>이다.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가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이사 간 아파트에서 겪게 되는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호러드라마이다. 상상의 괴물이 등장하는 이른바 ‘크리처물’이다. 넷플릭스가 300억원을 투입하여 완성시킨 이 작품은 <도깨비>와 <미스터 선샤인>의 이응복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응복 감독은 tvN에 가기 전에 KBS 드라마국 피디였다. <전설의 고향-금서>(2009)를 시작으로 <드림하이>, <비밀>, <태양의 후예> 등을 연출했었다.(공동연출 포함) 한마디로 잘 나가는 연출자인 셈이다. <스위트홈> 공개와 함께 넷플릭스가 라운드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물론, 코로나사태로 인터넷 화상회의시스템을 이용한 화상인터뷰였다. 제한된 시간에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 넷플릭스, 글로벌한 기술 네트워크 도움이 흥미로웠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TV드라마업계뿐만 아니라 한국 영상업계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넷플릭스와 작업해 본 소감이 어떤지.
“넷플릭스와 한 첫 작업이었다. 기획단계에서부터 흥미로웠다. 원작웹툰을 영상으로 옮길 때 구현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해외의 인맥,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후반작업 과정에서 결과물을 놓고 토론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지시가 아니다. 편집본을 두고 CG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넷플릭스에 몰리는 현상을 두고 의견을 말해 보라면, 어쨌든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매체가 다루지 못한 것들을 도전할 수 있다. 콘텐츠확장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 원작 웹툰은 다양한 괴물이 등장하는 크리처 장르이다. 호러분위기가 물씬 나고. 그런데, 인간의 이야기는 패밀리 중심적이다. 드라마의 균형을 어떻게 맞췄는지.
“크리처 장르는 우리 영화에서도 시도된 바가 있지만 성공한 사례가 얼마 없다.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이게 진짜 같이 보였으면 했다. 어린이, 가족, 극중 주인공인 현수의 이야기 등 소소한 부분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온 가족이 필사적인 노력을 펼친다. 그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몰입이 안 된다거나 오글거린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것은 어린이, 노인, 여자, 그리고 이미 ‘괴물화된’ 인간도 있다.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크리처가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대결구도가 흥미로울 것이다. 아이는 현수가 방문을 나오게 하는 중요한 모멘트가 된다.”
* <스위트홈>에서는 ‘괴물’이 등장하여 인간을 공격한다. 피해를 입은 인간은 조금씩 괴물로 변해간다. 그런 과정에 놓인 인간을 ‘괴물화’라고 표현한다 *
- 3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알려졌다. 완성된 10부작을 보고 만족하는지.
“솔직히 전부 아쉽다. 시도는 잘 했다고 생각한다. 시도한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스태프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아쉽기도 하다. 특히 아쉬운 것은 원작의 괴물화되는 과정, 격투씬 장면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 크레딧에 연출자가 세 명(이응복 장영우 박소현)이 나온다. 역할분담은 어떤 식이었는지.
“연출부터 조연출, 스태프를 구성하고 이끄는 것은 모든 저와 함께 했다. 캐스팅부터, 촬영, 음악에 대해서도. 실제 잘하는 것을 찍었다. 내가 못하는 것은 살짝 뒤로 미뤘고 말이다.”
● 엘리베이터 장면, 멋있다
- 8회 마지막에 등장하는 엘리베이터 씬은 정말 훌륭하다. (괴물이 되어 예초기를 든 나타난 경비와 칼을 든 정재헌(김남희)이 필사의 사투를 펼치는 장면이다)
“나도 그 장면 좋아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찍으면서 좀 감동받았었다. 괴물을 찍는 방식이나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계속 찍다보니 기시감이 있었다. 괴물과의 싸움은 생략하고 은유한 게 있다. 그 장면 찍을 때 짧게 찍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스태프들이 더 길게, 원래 동선대로 찍어야한다고 그랬다. 그 결과 감동적이고 만족스런 씬이 나온 것 같다.”
“김남희 배우가 연기한 재헌은 그 장면에서 한쪽 팔이 잘린 채 연기한다. 그런 부분이 힘들었을 텐데 배우가 무리 없이 잘 해주었다. 힘든 상황에서도 감정적인 부분까지 잘 해 주었다.”
- 넷플릭스 한국드라마는 공개와 함께 해외에서도 반응이 즉각적이다. 감독님이 보기엔 해외 반응이 어떤가.
“아직 살펴보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는 한국적 정서를 드라마로 녹인 것에 대해 해외시청자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
- 웹툰 원작과 비교하여 더 들어간 게 있는지.
“웹툰이 연재될 때 작가에게서 엔딩에 대해 귀띔을 받았었다. 드라마에서는 다르게 나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이(영수)를 구해주는 슬라임 괴물의 사연도 많이 그려보고 싶었는데 흐림이 약해 뺐다. 그 이야기는 웹툰에서 감동적으로 보았는데 말이다.”
- 캐스팅과 관련하여 이야기 좀 해 달라.
“주인공 현수를 연기한 송강은 <좋아하면 울리는>을 연출했던 이나정 피디에게서 추천받았다. 웹툰 느낌대로, 감정까지 완벽했다. 이진혁 배우와 이시영 배우는 시놉시스만 보고도 너무 하고 싶다고 그랬다. 이도현 배우는 <호텔 델루나>하기 전이었다. 패기 넘치는 배우였다. 은혁 역할에 충실했다. 이중적인 뉘앙스의 포커페이스 리더 역이다. 첨부터 점찍었던 배우이다. <델루나> 이후 승승장구하는 걸 보니 내가 뿌듯하다.”
- 명장면을 꼽는다면.
“8회 엔딩(엘리베이터씬). 그리고 1회 엔딩. 현수에게 괴물화 조짐을 보이고, 코피를 흘리는 장면이다. 망해가는 세상을 보면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모습. 이건 실제 촬영 장면이 아니고, 테스트 촬영 컷이다. 너무 느낌이 좋아 1부의 엔딩에 사용했다.”
“전사로 나선 이시영을 크리스마스트리 근육이라고 하더라. 자신의 배역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점, 액션 연기가 놀라왔다. 이진욱이 연기하는 편상욱은 법이 하지 못한 응징을 괴물 같은 느낌으로 해치운다. 피범벅이 되도록 망치를 휘두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 인간의 연대감, 한국적 정서
- 괴물 드라마를 찍으면서 특히 주의한 것이 있다면.
“괴물을 그리다가 괴물이 될 뻔했다. 작업하면서 우리 괴물화되지 말자고 이야기했었다. 웹툰의 방향성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 때문에 괴물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잊지 않았다.”
“웹툰이 보여주지 않은 것을 드라마로 보여주고 싶었다. 웹툰과 드라마가 서로 윈윈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크리처물을 찍으면서 괴물이 재밌었다. 사람도 재밌었다. 괴물과 싸우는 인간의 모습이 인간적이라서 좋았다. 연대감과 유대감이 좋았다.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표정에서 저도 구원을 받은 게 있다. 아마도 그런 부분이 한국적인 요소일 것이다. 글로벌하게 풀렸으니 그 결과를 지켜본다. 넷플릭스의 다양성이 시장변화를 이끄는 것 같다.“
- 한국적 요소란 게 무엇인가.
“웹툰 원작에서도 각기 주변부에 머물던 사람이 전면에 나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런 방식이 좋았다. 병일(임수형) 같은 캐릭터는 주변부에서 유머러스하게 등장해서 코러스를 잘 맞춘다. 끝에 가서는 누군가를 구해주고 죽는데 그런 과정이 감동적이다. 주변부 사람이 리얼해야 전체적인 멋이 산다고 생각한다.”
- 극중 괴물은 제각기 욕망의 화신이다. 감독님은 어떤 괴물의 욕망이 있는가.
“글세. 난 그냥 1409호에 숨어 1410호 벽을 뚫어 음식을 훔쳐 먹을 것 같다.”
● 넷플릭스 경쟁력은, 도전정신?
- 다시 넷플릭스 질문. TV피디 출신이 넷플릭스와 드라마를 잘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넷플릭스의 기획력이 뛰어난가, 선구안이 좋은가. 제작비가 풍성해서 그런 결과물이 나오나?
“글쎄. 기획력이 뛰어난 부분도 있고, 선구안도 있다. 제작비가 풍성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던 작품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보기엔 우리 한 번 이런 거 해보자 하는 도전정신이 좋은 것 같다. 그런 도전정신이 통했을 때 협력관계가 잘 이뤄진다. 그런 게 잘 이뤄지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 유혈이 낭자하고, 폭력이 과다하고, 욕설도 많은 ‘19금’ 드라마다. 지상파 TV 출신으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사실 찍을 때는 19금을 생각하지 않았다. 폭력적인 부분에 있어서 예전보다 기준이 살짝 엄격해진 것 같다. 난 15세 정도로 생각했었다. 갈수록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기준이 엄격해진 것 같다. 19세 판정받고 살짝 놀라기는 했다.”
- 작품이 공개되고 난 뒤, 극중에서 사용된 Imagine Dragons의 'Warriors'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음악 하나로 전체 시너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은혁에게 깔리는 첫 음악이다. 괴물과 맞서는 연약한 인간에 어울린다. 가사의 의미를 생각하면 은혁을 응원하는 데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다소 어색하지만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공개되고 나서 보신 분들이 음악에 대해 많이 말씀하시더라. 앞으로 사려 깊게. 주의 있게 선곡해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 희망의 메시지, 역사의 복원
- 지금 벌어지는 코로나사태와 관련해서 촬영 중에 추가되거나 변경된 내용이 있는지.
“촬영 막바지 무렵에 코로나가 터졌다. 이 작품이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이 되길 바랐다. 스위트홈 주민들이 어떻게 그곳을 빠져나와 광화문 광장에 다다른다. 어둠에서 빛으로, 이순신 동상의 뒷모습이 보인다.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데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광화문에서. 비주얼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적 소재가 있다면.
“잊힌 역사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복원해야할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원류를 찾는 작업일 수도 있다. 영웅적인 서사가 나올 것이다. 잊힌 가야 같이 말이다. 지금도 야산을 파다가 유적지를 발견한다는 뉴스를 접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 잊힌 역사를 복원하는 드라마 서사를 하고 싶다.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다. 유럽에는 설화나 그에 기반을 둔 판타지가 많잖은가. 우리도 이제 기술적으로 시도할 수 있으니. 재밌게 다루고 싶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이응복 감독은 2009년 KBS가 리부팅하여 만들던 시즌제 <전설의 고향>에서 <금서>를 연출했다. 내용은 언문소설을 필사하는 비밀스러운 취미를 가진 사대부가 젊은 마님이 저주가 서린 금서를 필사하면서 벌어지는 괴기스런 이야기이다. 조연출은 이나정 피디였다. 이응복 감독 차기작품은 김은희 작가와 손잡은 tvN <지리산>이다. (KBS미디어 박재환)
[사진 = 이응복 감독, '스위트홈'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