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 감독 ⓒ미쟝센단편영화제
지난 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는 모두 65편의 재기발랄한 단편영화가 상영되었다. 그중 [기담] 섹션에서 공개된 <스포일리아>의 우주적 규모의 궁금증을, 실사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27분 분량의 단편영화이다. 저 우주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광활한 우주공간에는 인류 말고 또 다른 지능을 가진 존재가 있을까.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해 두 사람이 우주로 향한다. 그리고 마침내, 500년을 날아간 끝에 기이한 행성에 착륙한다. 영화제가 끝난 뒤 이세형 감독을 만나 ‘스포일리아의 비밀’에 대해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한예종 영상원 18학번 이세형 감독입니다. 올 2월에 졸업했습니다.”
Q. ‘스포일리아’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실사 영상을 합친 작품이다. 스톱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는지.
▶이세형 감독: “어릴 때부터 장난감으로 스톱모션 만들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이걸 제대로 하고 싶었다. <스포일리아> 만들면서 공부를 많이 했다. 공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스포일리아'
Q. <전교시대:격검의 소녀여 학교를 구하라!>라는 작품은 고등학교 때 만든 것인가?
▶이세형 감독: “2학년 때 찍은 액션 코미디영화. 전국시대처럼 학교 동아리들이 서로 일등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주인공은 검도부인데 무협시대 같은 액션을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독서부와 수영부 같은 동아리를 다 폐지시키려고 한다. 음모를 꾸미고 동아리가 연합해서 싸운다는 내용이다. 액션씬이 많았다. 일대일 액션신도 있고, 강당에서 스무 명이 패싸움을 펼치기도 한다. 25분 분량이다.” (완성도는?) “지금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도 그때는 사활을 걸고 내가 가진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만든 것이다. 선생님 도움도 많이 받았고. ‘입시문제’가 주제라서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다. 상금도 받았다. 그 돈으로 회식했던 것 같다. 저금도 하고.”
Q. 영화감독의 꿈은 언제부터,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이세형 감독: “엄마가 영화를 좋아했다. 그 영향 같다. 캠코더로 가족의 일대기를 찍었다. 2시간 분량으로 40편 정도 있다. 원래는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것인데 언젠가부터 제가 그걸로 찍는 걸 좋아했다. 스톱모션 만들기 좋아했는데 그 캠코더로 찍은 것이다. 그게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부천 출신인데 BIFAN의 영향은 없었는가?) “집 앞에서 열리는 행사라 중고등생 때 영화제를 많이 즐겼었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천영화제를 후원했었다. 공짜 티켓으로 영화를 많이 봤었다. 이상한 영화가 많았다. [금지구역]이 뭔지도 모르고 봤다가 충격적인 작품을 만나기도 했던 것 같다. ‘더럽고, 끔찍한 데 은근 재밌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스포일리아' 현장
Q. <스포일리아>는 어떻게 구상한 것인가.
▶이세형 감독: “시작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그 작품은 너무 좋아해서 제 나름대로 재해석을 해보고 싶었다. 주인공들이 ’고도‘라는 대상을 기다리기만 하는데, 만약 고도가 나타났을 때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거부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걸 우주 버전으로 재해석했다. 그게 큰 영향이었다.” (공연은?) “신구와 박근형 선생님 나오는 것 봤고, 한울림극단 것도 봤고, 외국 공연실황도 보고 그랬다. 학교 워크샵 과정으로 찍은 것이다. 3학년에 시작해서 작업이 길어지다 보니 끝날 때까지 만든 것이다.”
Q. 완성시키기까지 2년 3개월이 걸렸다는데.
▶이세형 감독: “학교 앞 자취방에서 대부분 만들어졌다. 먼저 실사 인물부터 찍었다. 크로마키, 블루스크린으로 5회 차 촬영을 했다. 그걸 바탕으로 괴물과 배경 작업을 오래했다. (스톱모션 작업은 꼼꼼하고, 인내력이 필요할 것 같다.) “꼼꼼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력이필요하다. 제가 국토종주를 세 번 했다. 서울과 부산을 자전거로 한 번, 걸어서 한 번. 파주에서 해남까지 걸었다. 지구력이 필요한 것은 잘 하는 것 같다. 그걸 왜 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 과정 자체를 좋아한다. 걸을 때 온갖 생각을 하기도 하고, 아무 생각 안하기도 한다.”
Q. 스톱 모션 제작은 어떤 과정을 거친다.
▶이세형 감독: “ 일단 작업 자체는 합성을 해야 하니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컷이 정해지고, 실사분량을 찍을 때 다 기억, 기록을 해야 한다. 렌즈의 화각, 조명의 위치, 카메라의 각 같은 것. 스케일을 축소해서 미니어처로 찍는 것이다. 그게 다 정해져 있고, 그 안에 애니메이션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행성의 표면은 자글자글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10킬로의 클레이(점토)를 깔았다. 분홍색이 기본이지만 매번 다른 느낌이 들게 클레이를 뭉치고, 풀고, 깔고 그랬다. 오일 느낌을 주기 위해 식용유를 표면에 발랐다. 정말 자취방이 기름 냄새가 절었다. 2년 내내. 만두집도 아니고. 피는 투명한 헤어젤에 볼펜 잉크를 섞어 질감을 살렸다. 스톱모션을 배우면서 만든 것이다.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 찾아가고,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그랬다. 매력이 있는 작업이다. 한 컷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도 한 컷 한 컷 할 때마다 뿌듯함을 느꼈다.”
Q. 사용된 장비는?
▶이세형 감독: “실사부분 촬영은 시네캠으로 스튜디오에서 영화처럼 찍었다. 애니메이션부분은 캐논 6D 카메라이다. 총처럼 생긴 초접사렌즈인 Laowa(라오와) 렌즈로 찍었다. 스톱모션 툴은 드래곤프레임을 썼다.”
'스포일리아' 현장
Q. 스태프 구성은 어땠는지.
▶이세형 감독: “다들 학교 선후배, 동기들이다. 다들 능력자이다. 촬영감독은 연구개발을 엄청 많이 했고, 조감독은 친구 정기연이 맡았다. CG합성작업까지 했다. 미술감독은 학교 무대미술과 친구가. 센트 만들고, 의상 만들고 그랬다.”
Q. 배우들에 대해 .
▶이세형 감독: “배우들은 다 같은 학교 학생이다. 장요훈 배우는 저랑 성격도 잘 맞고 연기도 좋아한다. 정지우 배우도 좋아했다. 둘이 연기하는 김과 박 케미가 잘 맞았다. 외계인 역을 맡은 심효민 배우는 예전에 과제하며 알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친다. 외계인이라 누워있기만 하는 역할이었다.” (원호섭 성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시작할 때부터 염두에 뒀었다. <우주의 신비> 다큐멘터리를 했었는데 그 비슷한 목소리라도 하고 싶었다. 다행히 어떤 인연으로 연결이 되었다. 원 성우님이 나와 주신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한다. 열연을 펼쳐주셨다. 괴물 역할까지. 감사드린다.”
Q.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지.
▶이세형 감독: “장난스럽고 농담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우주는 무엇이고, 여기는 어딘지. 다들 조금씩 품고 있는 그런 문제들이다. 저도 우주에 사는 아주 작은 존재로서의 궁금증이 있다. 외로움도.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사람들은 말이 많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런 면을 장난스럽게 전하고자 한 것도 있다.”
“보이저호가 골든디스크를 통해 지구인의 인사말을 전 우주에 울려 퍼지게 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문명들이 그 소리를 듣고 지구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인류의 존재를 알게 된 그런 지적 생명체들은 지구 인류들이 아주 시끄러운 존재로 인식할지 모른다.”
'스포일리아'
Q. SF작품으로서 과학적 고증이나 리얼리티에 대한 고민은 했는지.
▶이세형 감독: “하하. 이 영화는 관념적인 영화이다. 과학적인 고증을 할 생각은 안했다. 인류의 오래된 궁금증의 답을 찾기 위해 500년을 계속 여행하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계속 기록한다. 수많은 책, 기록들이 우주선을 가득 채운다. 수많은 책, 책장과 우주선이 합쳐진 공간을 생각했다. 그 정도 컨셉이면 된다고 보았다.”
Q. 스톱모션 촬영은 굉장히 지루한 작업이다. A.I로 금세 대체할 분야일 것 같은데. 스톱모션 작품이 계속 나올까.
▶이세형 감독: “스톱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계속 되지 않을까. 이런 걸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영화 시작할 때에서도 에이아이로 하면 주일이면 끝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만들었다면 내용과 형식이 맞지 않는다. 주인공은 500년을 우주여행 하는데 1주일 만에 프로폼트 입력으로 끝내버린다면 말이다.”
Q. 그럼 영화의 미래는? 요즘 말이 많은데. 영화학도로서 생각을 듣고 싶다.
▶이세형 감독: “저는 산업적 측면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딱히 걱정하거나 미래를 고민하지는 않는다. 제가 영화를 만들면, 영화가 계속 있는 것이다. 제가 할 일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영화제 프로필 사진과 지금 모습이 너무 다르다. 헤어가.
▶이세형 감독: “애니메이션 작업하는 2년 동안 미용실에 안 갔다. 그래서 장발이 되어버렸다. 두상이 동그래서 삭발을 하니 동그란 두상이 보기 좋다. 자랑하고 싶었다.”
이세형 감독 ⓒ미쟝센단편영화제
감독은 전주국제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 금천패션영화제, 인천독립영화제, 정동진영화제, 비키(부산어린이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등을 차례로 돌며 <스포일리아>를 소개했다. 영화제에 참석하면서 많은 분들을 새로 알게 되어 즐거웠단다.
“이 영화는 올 1월 완성했다. 지금까지 영화제를 통해 세상에 소개하는 시간을 보냈다. 상영하면서 쉬는 기간이었다. 이제 많이 쉬었으니, 그동안 틈틈이 구상해둔 것을 열심히 쓸 생각이다. 앞으로 뭘 할 것이라고 정한 것이 없다. 뭘 할지 모르는 게 좋은 것 같다.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 당장 상업영화로 가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예전에는 목표 세워두는 게 좋았는데 지금은 그 때 그 때 변하는 것을 보는 것도 즐겁다.”
마지막으로 영화관 관크인 스포일러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스포일러는 정말 피하고 싶다. 제가 기억하기엔 <브레이킹 베드>에 대해 스포일러를 당했었다. ‘누가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걸 까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몇 년이 지났는데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보아 이제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의 스포일러는? “골든레코드가 입술에 박히는 것이 중요한 스포일러이지 않을까요?” 으악! 걱정하지 마라. 이 영화 볼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충분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시간이 지나면 그때 보시라.
[사진=미쟝센단편영화제/이세형 감독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