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휘빈 감독 ⓒ미쟝센단편영화제
지난 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4년 만에 부활한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열렸다. 모두 65편의 참신한 단편영화가 소개되었는데 그중 [기담] 섹션에 포함된 <엔터티>라는 작품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서울인디애니페스트, 그리고 몇 군데 해외영화제를 돌며 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미쟝센이 끝난 뒤 정휘빈 감독을 만나 영화 이야기와 미래 계획에 들어보았다.
Q.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 만화를 좋아했을 것 같다. 어떤 영화를 보고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려고 했는지.
▶정휘빈 감독: “어릴 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좋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영화과에 가려는 것도 생각했었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했다. 지금도 애니메이션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매체는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언젠가는 기회가 되면 실사영화로 하고 싶다.”
Q.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나왔다.
▶정휘빈 감독: “특성화고를 나왔다. 학교 친구들이 다들 성향이 다르더라. 누구는 미국 카눈을 좋아하고, 누구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열심히 보고, 누구는 우리 만화를 좋아하고. 나도 한국 애니 좋아했다. 어릴 때 TV에서 보던 <녹색전차 해모수>가 기억난다.”
Q.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어떤 점이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정휘빈 감독: “어릴 때, 11살 즈음에 처음 본 것이다. 아마 당시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너무 재밌게 보았다. 그때는 뭐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차이도 몰랐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학교에서 미래희망 쓰라면 ‘화가’라고 썼었다. <센과 치히로> 보고는 그림 잘 그리면 이런 직업 선택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던 모양이다.”
정휘빈 감독
Q.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도록 이끈, 영향을 준 영화가 있다면?
▶정휘빈 감독: “커면서 영화를 많이 봤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 박찬욱 감독 작품 좋아했다. 공포영화를 특히 좋아했다. 2000년대에 나온 영화. 안병기 감독의 <폰>이나 <가위> 이런 영화 좋아했다. <새벽의 저주>나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 이런 영화 좋아했다. 최근에는 <웨폰>을 봤는데 그런 게 재밌더라. 지금 작업 중인 게 중편 분량의 미스터리 애니메이션이다. 이거 마무리 짓고 장편 기획 들어갈 예정이다. 공포영화이다. 주인공이랑 사건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고 있는데 <웨폰>이 더 재밌게 느껴진 모양이다.”
Q. 제목으로 쓰인 ‘엔터티’는 사실 익숙한 용어는 아니다. 제목을 이렇게 택한 이유는?
▶정휘빈 감독: “SF적인, 장르적 느낌이 나는 제목을 생각한 것이다. 원래는 다른 제목이 있었다. 그런데 장르적으로 연결이 안 되더라. ‘엔터티’는 그래도 뉘앙스가 느껴졌다. 미래 SF 맛이 난다.”
엔터티
Q. 이 작품 전에 만든 단편 애니 <민서와 할아버지>, <도나 표류기>가 있다.
▶정휘빈 감독: “<민서와 할아버지>는 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창의인재동반사업의 창의교육생(멘티)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만든 작품이다. 6개월 동안 애니메이션 감독님의 집중 지도를 받는 것이다. 작업하면서 자주 만나고, 화상회의도 하면서 도제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외주작업을 하면서 내 작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어떻게 할지 몰랐다. 그런데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외주는 어떤 작업을 주로 했는가?) “일러스트레이터 작업. 광고 삽화나 광고영상. 규모가 있는 애니메이션 일 받아서 스토리보드 그렸다. 애니메이팅 작화도 하고. 그러다가 SBA 단편지원작 신청해서 <도나 표류기>를 만들게 된 것이다.”
Q. <엔터티>는 처음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정휘빈 감독: “<도나표류기> 끝내놓고 내가 좋아하는 장르를 만들고 싶었다. 호러, 스릴러, 크리처 물 이런 것 좋아하니. 뜻이 맞는 사람과 의기투합해서,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만든 작품이다. 제가 좋아하는 요소, 소재를 택했다. 디벨로프 과정에서 아이디어 많이 더해졌다. 색깔이 강해지고, 디스토피아 설정이 들어가고. 몇 년 전에 <블랙 미러>가 인기가 많았다. 그 작품들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Q. 아 그러고 보니 <엔터티>는 ‘블랙 미러’풍이 느껴진다. 좋아하는 ‘블랙 미러’ 에피소드를 꼽자면?
▶정휘빈 감독: “음, 샌 주니페로(시즌3), 추락(시즌3) USS 칼리스터(시즌4), 악어(시즌4)가 생각난다. <엔터티>는 기획하고 완성하는데 2년이 더 걸렸다. 처음 만들 때는 재밌고, 신선해 보였는데 그 사이 벌써 신선하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엔터티
Q. 설정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 2050년은 애매한 미래 아닌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말이다.
▶정휘빈 감독: “그런데 그게 제일 적당하다. 보통 SF 배경을 설정할 때는 너무 멀리 가지 않고, 당장의 일도 아니다. 근미래라는 것이 어감상 듣기 좋다. 그래서 2050년의 서울로 설정한 것이다. 공중에 홀로그램 광고판이 있고, 무인택시가 있는 게 상상력의 한계인가 보다. 그 정도였다. 거기서 대비를 주기 위해 오락실이 배경인 메타버스 공간에 대해 열심히 설정했다. 게임세계인 1990년대 세계랑 대비가 확실히 된다면 SF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대한 향수를 1990년대 오락실에 집어넣었다.”
Q. 1990년대 설정에 대해 더 보태자면. 서태지 패션 정도?
▶정휘빈 감독: “1990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몇 가지 있다. 전자오락실은 뭔가 중독된 플랫폼이다. 유저들이 모인다. 불량스러운 느낌도 나고, 약간 윤락도시 같기도 하다. 오락적이며, 화려한 이미지를 쓰기도 좋다. 곧장 몰입하기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가는 어떤가?) “게임 속에 등장하는 아이템이니 역시 각인되기 좋은 걸 생각했다. 외국 동전, 라이터, 담배, 카세트테이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 시가가 어울릴 것 같았다. 담배에서 좀더 디펠로프 되었다. 신선하다고 느꼈다.”
Q. AR이나 드론, 메타버스가 나온다. 그런데 이런 콘셉트는 미래적이지만은 않다.
▶정휘빈 감독: “그렇다. 워낙 변화가 빠르니. 기획안에서는 막연하게 미래를 소개하는 로그라인이 필요했다. 설정에 약해서 그렇다. 현실적으로 최선의 미래적인 모습을 그렸다. (경찰이나 시큐리티에 대해서는?) ”경찰국가라기 보다는 정부통제가 삼엄해진 근미래를 컨셉트로 잡았다. 이건 옛날 개념이고 디스토피아 설정이라고 본다. 개인의 권리와 안전을 필계로 국가 시스템 안에서 모든 개인이 유린되는 것이다.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Q.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로그라인은 ‘옆집 살인범과 눈이 마주친 후, 김영은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다.’이다.
▶정휘빈 감독: “살인마와 눈이 마주친 뒤 도망가는 주인공의 행동이다. ‘소셜 포인트’ 시스템 때문에 주인공이 도망가는데 문제가 있다. 그게 처음 생각한 미래의 핵심 설정이었다.”
Q. 주인공의 직업은 무엇인가.
▶정휘빈 감독: “성인용품 수리업자이다. 먹고 살기 위해 몰래 수리하는 직업이다. 하루 종일 밖에는 안 나가고 메타버스에 접속해서 노는 게 취미이다.” (그런 인물이 펼치는 액션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액션을 펼쳐야하는 장면이다. 맥락상 허무맹랑하지만 중간 중간에 말이 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창문에서 줄을 잡고 떨어지는 장면은 처음 연출방향은 주인공이 지체없이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우리끼리 피드백하면서 ‘이건 너무 제이슨 본 같다’는 것이었다. 연약한 여자가 주인공인데 갑자기 억지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창문을 깨고 나오는 것으로 했다. 뒤에 붙는 장면도 간절하게 말이 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Q. 미쟝센영화제에서 어떤 작품을 보았는지. 소감은?
▶정휘빈 감독: “영화제 기간에 [확장기]와 [핑크몽키]를 봤고, 감독님들 통해 다른 작품 추천받았다. 애니메이션영화제든 실사영화제든 참가하면 늘 느낀다. 제 작품은 무난한 스타일이다. 정석적인 플롯이고, 나름 완성도를 최대한 높인다는 했지만 기술력이 엄청 높은 것도 아니다. 어쩌면 최소한의 재미만 보장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엔터티>는 제가 처음 한 장르물이라서 이런 무난함이 마음에 든다. ‘미쟝센’같은 경쟁력 있는 영화제에 오면 번뜩이는 감각의 장르적 작품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휘빈 감독
Q. 해외영화제에 참가했었는지. 어떤 질문을 받았나.
▶정휘빈 감독: “LA에서 열린 스크림페스트와 밴쿠버 아시안필름영화제에 갔었다.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의 시작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다들 재밌게 보셨다는 감상이 많다. 작품에서 그리는 것 중 사회적 점수로 사람을 감시하는 모습은 중국 뉴스를 보고 영향을 받았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아니었다. 디스토피아 컨셉트가 그렇게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Q. 한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는 어떨 것 같은가.
▶정휘빈 감독: “당연히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산업의 형식으로 봤을 때는 일본이나 미국과는 경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정말 좋은 감독이 많다. 개인기량을 떠나 받쳐주는 기반이 있어야할 것이다.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최대한 희망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앞으로 갈 수 있으니까. 객관적으로 힘들어한다. 그런 회의감이 원동력이 될 때도 있다.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누구 하나 잘 되면 된다. 누구 하나 잘 되어라’고.”
Q. <케이팝 데몬 헌스터>는?
▶정휘빈 감독: “재밌게 봤다. 창작을 하려는 의지가 제일 필요하다. 좋은 이야기는 사람을 끌어들인다. 많은 사람이 재밌게 볼 영화를 만들어야한다. 먹히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게 재밌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저의 작품 방향성은 무조건 재밌는 것 만들고 싶다.”
Q.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애니메이션을 하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휘빈 감독: “일단은 좋은 영화를 많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많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같이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중요한 게 팀워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친구들은 보통 혼자 그리는 작업을 많이 한다. 그래서 자기 능력 하나만으로 칭찬 받고, 인정을 받는다. 그게 잘못되면 ‘이건 나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6개월, 1년, 2년 이렇게 오래 작업해야한다. 그래서 같이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영화는 공동체 시스템이 익숙한데 애니메이션은 개인적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처음 이 일을 하는 사람은 고생이 많다. 나도 그랬다. 남의 의견 받아들여야한다. 너무 혼자 다한다 생각하지 말고, 결국 작품을 만드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사진= 미쟝센단편영화제/ 정휘빈 감독 본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