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과 <길복순>의 변성현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잡고 스타일리시한 블랙코미디를 세상에 내놓았다. 일본 적군파에 의해 하이재킹된 일본 민항기를 김포공항에 착륙시키는 숨 막히는 작전을 둘러싼 어이없는 부조리극이다. 설경구, 홍경, 류승범과 함께 한국과 일본 배우들이 비행기 안과 관제탑에서 고도의 치킨게임을 펼친다. 변성현 감독을 만나 ‘납치극의 전말’에 대해 들어보았다.  

Q. 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요도호 납치사건으로 사건이 시작되는데.

▶변성현 감독: “이야기의 시작은 ‘명언’에서였다. 우리가 잘 아는 명언이란 게 거짓이라면? 거짓은 아닌데 왠지 떨떠름한 말이다. 명언이란 것은 권위이니까 믿어야하나. 그런 명언조차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놓고 진행된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하는 것 말이다. 트루먼 셰이디의 말이라고 하는 것도 다 지어낸 것이다.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가장 적합한 사건이 요도호 사건이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잘 이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건은 김포공항을 평양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누군가를 속이려고, 믿게끔 하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런 구성으로 영화를 보는 관객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Q. 그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카리스마가 있을 것인데 영화에서는 아슬아슬하다.

▶변성현 감독: “이런 장르에서의 중정부장이라면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권위적인 인물이 나와야한다. 그런데 그런 캐릭터라면 너무 지겹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아이같이 해달라고 했다.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그러면 진짜 악하게 보인다. 자기가 악한지 모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보통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라 마셔야하는데 그는 우유를 마신다.” (영부인도 뜻밖의 등장이다) “절대 육영수 이미지가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실존 인물이 생각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여러 인물을 조립했다. 관료주의적으로 보일 수 있는 여러 이미지를 조합한 캐릭터이다.”

Q. 일본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는지. 언어의 장벽이란 게 있을 텐데.

▶변성현 감독: “아무리 훌륭한 배우라도 우리 영화에 오면 어색해지는 부분이 있다. 시나리오를 쓴 뒤 계속해서 일본배우에게 물어봤다. 좀 더 능동적인 표현이 되도록 부탁했다. 내가 일본문화에 대해 모르니. 이건 한국영화에 나오는 일본배우가 아니라, 일본에서 만든 일본영화 속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카사마츠 쇼가 우리 말은 수준급으로 한다. 일본배우와 소통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다. 일본배우와 한국 배우가 붙었을 때 제가 원하는 반응이 있었다. 어떤 대사를 할 때 원하는 리액션을 끌어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이 물어봤다. 뉘앙스와 톤에 대해. 시나리오를 중간에 많이 고쳤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Q. 제작발표회에서 감독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못하는 게 있어서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번 작품에서 윤경호가 ‘예스냐 노냐’라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못한다. 어떤 상황인지. 

▶변성현 감독: “내가 생각하는 것을 너무 강조하며 영화를 찍었던 것 같다. 내가 느끼는 바를 너희도 느껴야 해 같은 마음. <킹메이커>를 다시 봤는데 부끄러웠다. 찍고 나서 그 생각을 많이 했다. ‘내 생각을 알아줘’식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은유적으로 돌려,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킹메이커>는 너무 진중한 톤으로 관객에게 강요한 것 같다. 극중 영화감독(윤경호)이 쭈뼛거리는 것은 감독도 현장에선 권력자인데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명언’을 포함하여, 권력자, 관료주의에 대한 조롱이다. 현장에 와서는 본인이 나섰는데 정작 ‘예스’ 한 마디를 할 줄 모르는 것이다. 일본장관도 한국장관도 모두 희화화 하려고 했다.”

Q. 설경구가 연기하는 아무개는 어떤 사람이기를 바랐는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제4의벽’을 깨뜨리는 방식은?

▶변성현 감독: “경구 선배에게는 <오아시스> 때의 종두를 과장해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무개는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서, 실재하지 않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로 보기에 하고 싶었다. 감독이 들어가서 관객에게 말을 하는 것이다. 관객들이 몰입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지켜보도록, 거리감을 두게 하고 싶었다. 그게 설명적이지 않게. 설경구 배우가 훌륭하게 해 주었다.”

Q. 일본 배우들은 요도호 납치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던가.

▶변성현 감독: “일본 배우들도 시나리오를 보고는 사건에 대해 찾아봤다고 하더라. 사건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다는 정도.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바, 풍자를 이해하고 있었다. 시나리오가 재밌다고 그랬다. 야마다 타카유키 배우는 이런 풍자가 일본에서는 잘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관료주의를 비꼬는 작품도 많지 않아서 그게 재밌는 모양이었다.”

Q. 일본 배우 캐스팅은?

▶변성현 감독:  “야마다 타카유키의 팬이었다. 거절당할 요량으로 한 번 찔러는 보자는 심정으로 연락했는데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제 영화들이 일본에서도 개봉되었는데 <길복순> 때문에 알고 있었다. 다른 배우 캐스팅에서도 난항은 없었다. 내가 일본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이 아니어서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인물조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Q. <내일의 조>에 대해서는 어땠는가. 일본배우들도 잘 아는 작품인가.

▶변성현 감독: “이것도 시나리오를 보고 찾아보더라. 적군파들이 실제 <내일의 조>를 언급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작가가 거절했다. 그래서 특정 장면을 두고, 이 장면을 쓰고 싶다고 손편지를 써서 부탁을 드렸다. 진심이 통한 것 같다. 한두 달 정도 걸렸다.”

Q. 실화를 다루는 것이니, 당시 일본항공(JAL)과 대한항공(KAL) 명칭과 로고가 바뀐다.당시 관제 데모를 보도하는 KBS 뉴스 같은 것도 씁쓸한 구석이 있다. 허가를 받았는지.

▶변성현 감독: “KBS건은 시나리오를 보여줬고 사용 허락을 받았다. 제작팀에서 진행한 것인데 대한항공과 일본 항공사는 허락을 받지 못했다.”

Q. 배우들의 분장에 대해서는.

▶변성현 감독: “아무개가 제일 어려웠다. 세 작품을 함께 했는데 처음엔 장발 설정이었다. 그런데 분장실장이 좋지 않다며 더벅머리를 택했다. 류승범 배우의 콧수염은 배우의 제안이었다. 그렇게 하는 게 재밌을 것이라고 했다. 배우들을 어떻게 입혀야할지 생각하다가 꽂히는 부분이 있으면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했다.”

Q. 설경구 배우와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배우는 감독님에 대해 무한신뢰를 보내며 ‘영화의 아버지’라고 말했는데.

▶변성현 감독: “(네 번째 함께한 작품이니) 이쯤 되면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불한당> 찍을 때 제일 많이 티격태격했었다. 그러면서 신뢰를 쌓아간 것 같다. 그 영화로 경구 선배는 지천명아이돌이 되었고. 저도 놀랐던 일이다. 사실 현장에서 ‘영화의 아버지’라고 부르진 않는다. 아주 편하게 나를 대한다. 워낙 츤데레 같은 분이니. 아버지는 아마 이창동 감독님이실 것이다. 전 ‘작은 삼촌’정도이다.”

Q. 배우들의 일본어 연기에 대해서는. 

▶변성현 감독: “설경구 배우는 정말 잘 하셨다. 일본 배우도 엄청나다고 하더라.  <역도산>때 읽힌 일본어라 장음과 단음을 딱딱 하신다더라. 김성오 배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힘들었을 것이다. 맡은 역할이 그래서 유창하게 해야 하니까. 제가 보기엔 완벽했다. 김성오 배우는 군중들 사이에 지나가는 역할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와 하는 것 그 역할을 맡겼다. 너무 감사하다. 그 인물이 그다지 드라마틱한 인물도 아닌데. 열심히 해 주셨다.”

Q. 일본 항공사 회장님 등장 장면. 휠체어에서 일어서는 장면은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오마쥬인가?

▶변성현 감독: “배우가 거동이 불편했다. 현장에 휠체어가 있어서 그렇게 찍은 것이다. 외국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징적이잖은가. 높은 분이 문제 생기면 휠체어 타고 출동하는 것. 재미있을 것 같았다. 현장에서 갑자기 만들어진 컨셉이다.”

Q. 블랙코미디를 좋아하는가. 

▶변성현 감독: “좋아한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장르도 아니고, 이미 <기생충>같은 걸출한 작품이 나왔다. 감독들한테는 꿈의 장르이다. 이런 정말 선수들만 하는 것 아닐까 겁을 먹은 모양이다. 그러다가 이제 여섯 번째 작품이니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을까. 힘들기도 했지만 재밌었던 것 작업이다.”

Q. 중간에 남쪽 관제사 홍경과 북쪽 관제사 박해수가 총싸움을 펼치는 장면이 있다.  

▶변성현 감독: “찍을 때 반대가 있었다. 상상력이 너무 간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서스펜스를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다. 보통 그럴 경우 땀방울이 떨어진다거나 초시계가 째깍거릴 것이다. 이런 걸 하기 싫었다. 어쨌든 한 쪽이 손을 빨리 써야하는 순간이다. 그런 서스펜스로는 웨스턴 무비가 재밌을 것 같았다. 찍으면서 설득을 한 것 같다.”

Q. 대놓고 웃기는 장면이 몇 군데 있다. 블랙코미디에서 메시지의 무거움과 장면의 가벼움을 가르는 밸런스는 어떤 식으로 맞추려고 했는지.

▶변성현 감독: “과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면은 서부극 장면(홍경과 박해수)이었다. 하지만 꼭 넣고 싶었다. 코 긁는 장면이 나오는데 좋아하진 않았다. 그 전까지는 진지하다. 그런데 그 장면 나오면서 ‘자, 이런 영화입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신호탄인 셈이다. 성공적이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극장에서 사람들이 웃어줘서 안도했었다. 그 장면 찍을 때 테이크가 많이 갔다. 재촬영도 한 것이다. 내 마음에 딱 들게 안 되더라. ‘앞으로 헛소리 할 테니 지켜봐주세요’라는 신호탄의 의미이다. 너무 진지해지면 삐끗하게 나가자. 어쨌든 진지함이 오래 가지 않게 노력했다. 그게 밸런싱 작업 방식이었다.”

Q. 촬영 들어가기 전에 콘티 작업을 꼼꼼하게 한다는데.

▶변성현 감독: “이번에 콘티 작업을 더 꼼꼼하게 한 것 같다. 콘티 작업을 두 번 한다. 한 번에 내가 1차로 하고, 촬영감독이 2차로 한다. 그런데 이번엔 촬영감독이 1차 콘티작업을 했고, 나는 2차를 맡았다. 촬영감독이 포지션을 상상할 수 있게. 경험자가 아닌 사람이,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이 날 것으로 보는 모습을 담고 싶었다. ‘하이재킹’ 장면도 익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피하려고 했다. 하이재킹을 하는데 하이재킹을 안 보여주고, 많이 보아온 것은 안 보여주는 것이다. 사소한 것에 신경을 썼다. 큰 것은 그냥 지나가자. 상상 신을 많이 넣고, 다른 것은 과감히 생략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완성시켰다. 하이재킹이나 대치 장면은 한두 컷으로 끝냈다. 영화를 보면 은은하게 ‘구라’같고, 은은하게 ‘도라이’ 같은 느낌이 들었으면 했다.”

Q. 류승범의 중정부장 연기에 대해

▶변성현 감독: “”류승범이 연기하는 박성현 중정부장은 권위적 느낌의, 비열한 양아치보다는 천진난만하게 악한 사람이기를 원했다. 멋모르고 떠드는, 사람들이 자기 말을 안 들으며 떼쓰고, 큰일 날 것 같으면 우는 인물이다. 류 배우의 20대를 다시 끄집어내 달라고 부탁했다. 성격도 많이 변했다. 목소리의 단단함을 되찾으려고 발성 연습을 많이 했다. 작품에서 계단신이 있는데 아무개가 밑으로 내려가서 올려다보는데, 어린아이로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Q.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 제일 걱정한 연기 파트는?

▶변성현 감독: “리딩을 할 때 걱정스러웠던 부분은 류승범 배우가 대사를 쏟아놓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일본 장관일행을 만나며 표정을 바꾸는 장면이었다. 풀로 50번 정도 같이 읽었다. 현장에서는 그 장면 때문에 밤을 샐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두 테이크로 끝냈다. 첫 번째 테이크도 괜찮았는데 한 번도 봐야겠다며 한 번 더한 것이다. 그 장면은 짜릿함이 있었다. 엔딩 찍을 때도 너무 좋았다. 날은 추웠는데 기분이 좋았다.”

Q. 넷플릭스 작은 화면으로만 보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극장용 영화에 대한 생각, 넷플릭스와의 작업 만족도는 어떤가.

▶변성현 감독: “저도 아쉽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 준비할 때 적극적으로 뜻이 맞았던 게 넷플릭스였다. 합이 잘 맞았다. 이런 만족도의 작품을 극장용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 방향성을 끌고 갈 수 있었을까. 작품의 방향성이 좋고, 손뼉만 잘 맞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Q. 비 내리는 공항 장면에서 대치가 이어지고 결국 서고명 중위가 비행기로 향할 때, 공항에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린다. 그 장면은 어떻게 촬영한 것인가. CG인가.

▶변성현 감독: “실제 강아지이다. 너무 추운 날이었다. 비를 직접 뿌리진 못하고 카메라 앞에만 걸치게 뿌렸다. 그 장면은 아무개의 환상일 수도 있다. 실제 착취, 고초를 당하는 있는 비행기, 서고명, 강아지, 아무개 순서로 보여준다. 그렇게 하면서 비주얼적으로 개를 바라보는 아무개 표정으로 상황을 알려주고 싶었다.”

Q. 마지막에 ‘아무개’가 받아든 새 주민등록증의 이름은 ‘최고명’인 듯하다.

▶변성현 감독: “마지막에 ‘고명’이라는 이름을 넣은 것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자 했다. 캐릭터 측면에서 보자면 아무개는 고명이 되고, 고명이라는 사람이 아무개가 되는 것이다. 아무개가 고명이 된다고 해도 결국 주민증 하나만 되는 것이다. 아무개는 결국 목줄에 달린 개로 살아왔다. 그런데 저 어린 군이니 활주로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마지노선에 놓인 인간을 느꼈을 것이다. 인간애가 느껴진다. 아무개도 개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서 인간으로 살아가자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둘은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세상에 수많은 아무개가 되어버리는 고명. 어떤 이름을 가진 아무개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만약 그 장면(이름)을 본 사람이라면 왜 그 이름일까라고 한 번 생각해 볼 것 같다.”

“<킹메이커>에서 했던 실수를 이번에 만회한 것 같다. 작가로서 만족하는 부분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MTV세대이다. 많이 보고 자란 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