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민 감독
디즈니플러스가 묵직한 사극을 한 편 완성시켰다. 추창민 감독의 <탁류>이다. 9부작 <탁류>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이 드라마 <추노>의 천성일 작가와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조선 선조 연간에 경강 일대를 주름잡고 있는 왈패를 중심으로 조선 민초의 삶을 그린다. 로운, 신예은, 박서함이라는 청춘스타와 박지환, 최귀화, 전배수, 유성주, 최영우 등 베테랑 배우들이 넘실대는 한강 마포나루에서 피와 땀과 눈물의 드라마를 직조한다.
“OTT는 처음이다. 영화와는 달랐다. 영화가 개봉되면 스코어에 일희일비하는데 <탁류>는 그런 부담이 덜했다. 영화는 3~4개월 정도 촬영했는데 이번 작품은 8개월이나 소요되었다. 그 과정이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새로운 경험을 했다.”며 첫 OTT작업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Q.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된 것인가. 천성일 작가의 글이 완성된 후 합류한 것인가.
▶추창민 감독: “천성일 작가가 1,2부 대본을 완성하고 전체 시놉시스를 주었는데 이야기가 재밌었다. 흥미로워서 같이 하자고 한 것이다. 천 작가는 이야기를 계속 썼고, 저는 작업을 시작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만 해도 왕궁을 중심으로 양반이 등장한다. 그런 작품은 많았다. 이건 하층민의 이야기이다. 경강, 지금의 한강변을 중심으로 조선중기 왈패의 삶을 그린다. 어쩌면 그 이야기와 현재가 맞닿아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보고 싶었다.”
디즈니플러스 '탁류'
Q. 이야기의 중심은 경강의 왈패이다.
▶추창민 감독: “천 작가의 글은 대사의 맛이 있다. 어떤 작가도 그렇게 못 쓸 것이다. 하층민들이 하는 대사, 고어(古語)의 말맛이 참 좋다고 생각한다. 잡초 같은 민초의 삶을 그린다. 그들이 먹고사는 이야기이다. 그들의 삶을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다. 이른바 ‘상놈’이라면 옷도 대강 입힌다. 머리엔 하얀 두건 하나 걸치고 빗자루 들고 마당 쓰는 게 전부이다. <탁류>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Q. 마포나루는 어떤 식으로 찍었는지.
▶추창민 감독: “고민이 많았다. 강과 물은 촬영 변수가 많다. 찍기가 까다롭다. CG팀은 육지에 세트를 짓고 물을 CG로 구현하자로 했다. 그러면 사실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상주의 낙동강 변에 세트를 지었다. 요즘은 우리나라 어느 강이든 치수가 잘되어있어 평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옛날 느낌이 나게 나무도 심고, 조경도 꾸미고 흙으로 높낮이를 만들었다. 이게 장마기간에는 세트를 철거해야했다. 장마가 끝나면 다시 지어서 촬영을 이어갔다. 대부분 세트이다. 멀리 보이는 부분은 CG로 보강했다. 배도 그렇다. 만들기도 하고, 요즘 배에 색을 칠하기도 하고, 멀리 보이는 배는 CG로 채우고.”
Q. 장시율(로운), 최은(신예은), 정천(박서함)에 대해.
▶추창민 감독: “시율은 판타지의 인물이다. 역경을 이겨내는 인물이어서 외모부터 남다르다. 약간은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인물로 보일 수 있다. 최은은 여성 서사가 중요했다. 제가 좋아하는 인물이 <토지>에 나오는 서희 같은 캐릭터였다. 강직한 부분이 닮아있다. 집안이 풍비박산 나도 극복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정천은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다. 성품도, 외모도, 환경도. 우리에게 이랬으면 좋겠다는 그런 캐릭터이다.“
디즈니플러스 '탁류'
Q. 대하드라마로 만들 만큼 풍성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9회로 끝내기엔 아쉽지 않은지.
▶추창민 감독: “‘시즌2’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은 아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거악과의 싸움도 아니고, 민초가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시율의 복수가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만들다보니 확장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을 예고하고 만든 게 아니다. ‘시즌2’의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Q. 시즌2를 만든다면?
▶추창민 감독: “그런 건 조금 민감한 이야기다. 개인이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배우들 무제도 있고, 디즈니가 결정해야한다. 그리고 대본도 써야하니까. 쉽게 되는 게 아니다. 요즘 만들어지는 OTT 드라마는 다들 시즌2를 염두에 두는 것 같다. 니즈가 있으니.“
Q. <탁류>가 글로벌OTT에서 공개되었다. 이게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추창민 감독: “대본을 봤을 때는 글로벌OTT에는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디즈니가 만들기로 결정하고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고, 남성적 액션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액션에 집중하고, 여심을 자극하는 배우가 있으니. 액션을 잘 만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Q. 디즈니와의 작업은 어땠나.
▶추창민 감독: “제작 과정에서 디즈니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오직 기간과 예산 범위를 지키면 된다. 나머지는 창작자의 의견을 존중했다. 스태프와 캐스팅, 이야기를 푸는 방향도 우리 의도대로 이뤄졌다. 그냥 알아서 하라고만 했다.”
Q. 음악은 ‘앙상블 시나위’(신현식, 정송희)가 맡았다.
▶추창민 감독: “드라마 음악작업은 처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친분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앙상블 시나위’의 [눈 먼 사랑](흥타령)을 좋아해서 꼭 쓰고 싶다고 했다. 원래는 다른 분이 부른 곡이다. 기존 곡과 함께 새로운 음악도 사용했다.”
Q. 캐스팅의 기준이 있었다면.
▶추창민 감독: “젊은 배우들은 제가 잘 아는 배우가 아니었다. 나머지 배우들도 소개받고, 추천받고, 만나보고 그랬다. 미팅을 오래 했다. 거의 모든 배우를 직접 캐스팅했다. 연기를 오래하신 분들이 많이 나온다. 캐스팅 과정에서 프로필을 꼼꼼히 챙겼다. 어떤 연극에 출연했는지를 주로 보았다. 좋은 극단의 배우는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한다. 연기의 기본이 되어 있으니 그 다음에 태도를 본다. 이 작품은 8개월 동안 찍으면 한솥밥을 먹고 지내야한다. 그러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Q. 왈패 패거리로 나오는 배우들은 어떤 식으로 캐스팅 되었는지.
▶추창민 감독: “아주 만족스러운 캐스팅이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연극판에서는 알아주는 연기자들이다. 특히 왈왈이를 연기한 박정표 배우는 유명했다. 다들 박지환 배우와 친분이 있었다. 극중 패거리는 친해야하니까 친분이 있는 배우가 좋았다. 오경화 배우는 보면서 무조건 ‘작은애’로 캐스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Q. 박서함 배우에게 요청한 것이 있는지.
▶추창민 감독: “뭐든지 자신감을 갖고 부딪치라고 주문했다. 100명에 가까운 스태프 앞에서 주눅 들기 쉬우니 뻔뻔해 달라고 했다. 8개월을 같이 있으려면 일단 친해져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현장에 좀 일찍 나오라고도 했다. 현장에 익숙해져야하니까. 일찍 와서 분장하고, 현장 사람과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고, 산책도 하며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했다.”
디즈니플러스 '탁류'
Q. 촬영에 대해서.
▶추창민 감독: “최윤만 감독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촬영감독이었다. 이후 드라마를 주로 찍었다.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이태원 클라스> 같은 작품을 작업했다. 이번에 흔쾌히 <탁류>에 합류해 주셨다. 인물들이 표정을 잘 보이게 앙각을 많이 썼다.”
Q. 액션 장면 연출은.
▶추창민 감독: “무술감독은 <오징어게임>을 하셨던 분이다. 사실적인 액션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게 요청했다. 무술 장면은 무술감독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액션장면은 부상의 위험이 항상 있으니 조심해야한다. 다행히 누가 다친 경우는 없다.”
Q. 특히 공을 들인 장면이 있다면.
▶추창민 감독: “아무래도 나루터 신일 것이다. 한여름에 찍었었다. 사람들이 뛰어가는데 먼지가 펄펄 난다. 정말 옛날에 이랬을 것 같았다.”
Q. 무덕을 연기한 박지환 배우의 연기에 찬사가 쏟아진다.
▶추창민 감독: “대본을 읽으면서 무덕 캐릭터가 제일 좋았다.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인물. 먹고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한다. 악인을 잘 그리는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악인이 악인다워야 작품이 빛난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을 잘 그려보고 싶었다. 박지환 배우에게 여러 가지 주문을 했는데 이해력이 뛰어난 배우이다.”
Q. 로운의 연기는 어땠나.
▶추창민 감독: “감정이 올라오면 쏟지 말고 안에서 머금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 순간 터져 나오면 어쩔 수 없는 느낌으로. 참지 못해 스며나오는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연기했다.”
Q. 왕해(김동원)는 어떤 인물인가.
▶추창민 감독: “여진족 출신이고, 일찍 조선에 귀화했다. 국경선 근처에서 살았다. 우리말도 익숙하고. 나머지 여진족 사람은 그렇지 않다. 여진족이 쓰는 만주어는 연습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한 분이 계시다고 한다. <최종병기 활>의 배우들도 그분에게 배웠다.”
디즈니플러스 '탁류'
Q. 전체적으로 색조가 어둡다. 조명에서는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였는지.
▶추창민 감독: “그 당시에는 빛이 약하다. 다크할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모닥불과 촛불이다.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했다.”
Q. 드라마라면 주인공의 러브라인을 예상할 수도 있는데, 결국은 없었다.
▶추창민 감독: “이건 로운의 성장 이야기로 끝나야한다고 생각했다. 멜로 드라마를 그리려면 따로 덧붙여야하는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Q.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GV에서 박지환 배우가 추창민 감독의 <사랑을 놓치다>를 꼭 보라고 강조하던데. 감독님은 역사물을 좋아하는지.
▶추창민 감독: “하하. 박지환 배우가 그 영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다. 역사물은 재밌다. 그 시대를 지금 가져와서 비트는 것이 재밌다. 그렇다고 꼭 사극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역사는 반복되는 지점이 있다. 그런 게 재밌다.”
Q.본인이 감독한 작품은 틈틈이 꺼내 보는지, <탁류>의 평은 살펴보는지.
▶추창민 감독: “그런 글은 일부러 찾아보지 않는다. 상처받는 게 싫어서이다. 기자들이 쓴 리뷰도 안 본다. 창피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웬만하면 가족들이 하는 이야기도 안 들으려고 한다.” (그래도 가족인데..) “가족은 객관적일 수가 없다. 딸아이가 중3인데 그 애도 보지 않더라. 흥미가 없단다. <탁류>는 어린 친구를 설득하기엔 좀 어른을 위한 프로젝트 같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는데 나는 그게 흥미롭지 않다.”
Q. 이 영화는 사극인데 왕이 등장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추창민 감독: “초반에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선조시대이나 왕을 등장시키는 게 어떨지. 그런데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빼기로 했다.”
Q. 선조 때 이야기이고, 조선의 칼싸움이 등장한다. 넷플릭스 영화 <전,란>과 겹치는 것에 대한 우려는 없었는지.
▶추창민 감독: “<전,란>의 분장을 담당한 회사가 우리 <탁류>도 담당했다. 이 영화 찍을 때 <전,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 상관없다고 했다. 시대극을 만들 때 안 겹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다. 특별히 차별화를 추구할 게 아니라.”
추창민 감독
Q. 차기작은 염두에 둔 게 있는지. 쉬는 시간은 어떤 식으로 보충하는지.
▶추창민 감독: “차기작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지금은 비우는 상태이다. 제가 활자세대라서 책을 많이 보려고 한다. 물론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그런다. 아. 걷는 것을 좋아한다. 특별히 잘 하는 게 없어서 그런 모양이다. 걷는다.”
Q. 요즘 영화업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추창민 감독: “그동안 계속 침체되었었는데 앞으로는 좋아진다는 전망이 있다. 자본도 유입되는 것 같고. ‘케이 콘텐츠’란 것이 어느 정도 장사가 된다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서 거대한 자본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들어가는 게 있으면 나오는 것이 있어야한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