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연기자 류승범이 돌아왔다. 류승범은 변성현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에서 1970년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진 중앙정보부장 박상현을 연기한다. 지금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빨갱이를 만드는 것도, 유신정권의 연장도 아니다. 일본에서 날아온 ‘납치된 비행기’의 적군파 일당을 어떻게든 잘 구슬리고 속여서 각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아야 한다. 류승범 배우를 만나 변성현 감독의 ‘굿뉴스’와 슬로바키아를 오가는 가장의 삶에 진중한 답을 들어보았다.
“새로운 영화를 본 것 같다. 메인캐릭터인 아무개가 관객들에게 대사를 하는 방식이 새로웠다. 그런 몇 가지 요소와 구성이 재밌었다. 다양한 캐릭터와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가 흥미로운 요소였다.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기대된다.”
Q. 처음엔 변성현 감독의 출연 요청을 고사했는데.
▶류승범: “오해가 좀 있는데 작품을 꺼린 것은 아니다. 전 작품이 끝나고 스케줄로 보아 바로 신작에 들어가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대본도 재밌었고, 감독님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Q. 변성현 감독과 작업해본 소감은.
▶류승범: “감독님은 저랑 동갑이다. 개인적 소통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작업하면서 묘한 연대감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게 흥미로웠다.”
넷플릭스 '굿뉴스'
Q.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중앙정보부장 역할이다. 감독은 ‘어린 아이’ 같은 인물을 연기하라고 했다. 어떻게 매칭을 시킬 수 있었나.
▶류승범: “저도 처음엔 당황했다. 처음 캐릭터를 주면서 이 인물은 어린아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1970년대 중정부장을 생각하면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의 의도를 모르겠더라. 그게 숙제였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감독님의 의도였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인물, 정형화된 권력의 중심. 그런 틀에서 벗어난 인물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감독님은 뻔한 것을 하는 게 싫다면서 그런 식으로 인물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Q. 박상현에 대한 캐릭터 구축을 어떤 식으로 이뤄졌나.
▶류승범: “시나리오를 보고 역할 탐구를 했다. 감독님이 노트해준 것을 보았다. 이야기가 진해되면 웃음을 주는 캐릭터이다. 그런데 진지해진다. 감독님은 웃기기 직전에 장면을 자른다. 또 심각하기 직전에 웃음을 넣는다. 그 지점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감정이 들어오기 전에 바꾸는 것이다. 감독님은 객관적인 시선을 많이 넣으려고 한 것 같다. 웃음도 안 어울릴 것 같은 전환이다. 감독님 의도는 이 모든 상황을 관객이 조금 떨어져서 보도록 한 것 같다. 그에 맞춰 캐릭터 연기했다. 대본을 봤을 때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중정부장이라는 인물특성과 매칭이 안 된다. 다행히 감독님의 의도가 명확하기에, 믿고 따라갈 수 있었다.”
Q. 박상현 부장은 엉뚱한 행동을 보여준다. 책상에 앉아 볼펜을 세우려는 모습. 독특한 취향인가?
▶류승범: “몇 가지 설정이 있었다. 볼펜을 세우는 것은 그이 습관일 것이다. 대본에는 또 그가 우유를 마신다는 설정이 있다. 그 캐릭터의 면모, 특성을 보여준ㄷ. 우유는 아이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고, 볼펜은 고집스러움, 집요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독특한 설정이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뭔가를 판단할 때 그런 행동을 한다. 그 자리에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이 미성숙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블랙코미디 요소 같다.”
류승범
Q. 변성현 감독의 이전 작품은 보았는지.
▶류승범: “작품 제안 받고 찾아봤다. 자기의 색깔이 있는, 자기의 방식이 있는 분이란 것을 느꼈다. 현장에서는 매력이 많다는 것을 계속 느꼈다.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다. 굉장히 디테일하게, 정확하게 연출하신다. 자기가 하고자하는 것이 머릿속에 있다. 정확하게 커트를 하고, 퍼즐을 맞춰가는 스타일이었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공간의 에너지를 접목하는 스타일과는 조금 달랐다. 이런 새로운 방식도 좋았다.“
Q. 애드리브를 싫어하는 감독이 류승범 배우에겐 용인했다는데.
▶류승범: ”대본을 탐구하면서 충청도 사투리를 가져왔다. 처음엔 감독님이 의아해하다가 대본 리딩을 하면서 합의가 이뤄졌다. 제가 하려는 캐릭터가 궁금했던 것 같다. 저의 몇 가지 아이디어에 대해 어떤 게 준비되었는지 해보라고 했다. 물론 감독님이 정확하게 의도한 것은 정확하게 집어낸다. 유동성 있게 하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딱 마무리를 짓는다.“
Q. 박상현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재밌었는지.
▶류승범: ”배우의 일이니까. 어려울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다. 숙제이니까.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첫 촬영 때 엄청 뜬 기억이 난다. 서고명(홍경)을 처음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장면인데 그 때 왜 그리 떨렸는지. 입술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컨트롤 난조였다. 긴장일 수도, 설렘일 수도 있는 조금 특별한 감정이었다. 감독님과 스태프는 오래 호흡을 맞춰온 팀이다. 그래서인지 현장 분위기에 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 같다.” (텃새는?) “그런 건 없었다. 다들 ‘웰컴’해주는 분위기였다. 준비할 때에도, 회의할 때에도 항상 느끼지만 모두와 호흡이 잘 맞았다.”
Q. ‘굿뉴스’는 류승범 배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류승범: “그 질문 예상했다. 며칠 생각을 해보았다. 영화나 드라마는 관객들이 보시고, 관객들이 마무리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분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보시는지가 마무리다. 의미는 그 다음에 나올 것이다. 저희가 할 일은 끝났지만 다른 오프닝의 선상에 있으니. 어떻게 흘러갔지, 어떤 운명이 될지 지켜본다.“
Q.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준비할 때 어떤 시간을 갖는지.
▶류승범: ”한 작업이 끝나면 저를 씻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류승범 개인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 없이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경우 제가 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참여를 하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한다. 뭔가 깨끗하게 한 후 시작해도 잘 될지 모르는데, 이렇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는. 그래서 신중하게 고려해야할 것이다. 피해가 될 수 있으니. 다행이 이번 작업을 시작하면서 감독님이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류승범
Q. 캐릭터 접근, 작품 분석 방법은?
▶류승범: ”매번 다르다. 의도가 있다거나 저의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제가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직관이 있는 것 같다. 본능적으로 이건 열어둬야지, 이건 탐구를 해야겠다 식으로 상황마다. 작품마다 다른 것 같다. <굿뉴스>는 대본을 계속 읽었는데 매번 새롭더라. 처음엔 발견 못한 것이 나왔다. 감독님의 의도도 있다. 풀어가는 방식이 복잡한 설계도를 가진 작품이었다. 그게 흥미로웠다.“
Q. 박상현 부장이 관제 데모를 보고 흥이 나서 춤사위를 보이다가 일본 관료가 오자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다..
▶류승범: ”배우는 감독의 이런 저런 의도에 맞춰 연기를 해야 한다. 감독님의 의도는 확실했다. 관객이 그 장면을 (같은 느낌으로) 끝까지 못 가게 한다. 어쨌거나 앞에서 비극적인 부분 있으면 상현이 뒤에서 그걸 희석시키고 다음으로 나간다. 그런 게 이 작품의 패턴인 것 같다. 대본에서도 그랬다. 몰입하기 직전에 더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감독님은 ‘관객들이 몰입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이 작품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떤 감정에 몰입될 만 할 때 그걸 깨고, 또 깬다. 그런 식이었다.“
넷플릭스 '굿뉴스'
Q. 연기의 중점은?
▶류승범: ”대본을 보고나서 든 생각은 이건 혼자 플레이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설경구 선배가 이 작품에 대해 감독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라면, 우리 배우는 정확한 사인에 맞춰 자신의 파트만 딱 연주하고 빠지면 된다고 하더라. 그런 합주였다. 배우는 그렇게 감독님에 많이 의지했다.“
슬로바키아의 가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조심스럽다.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운명까지 끌어당긴 것도 있다. 저도 제가 슬로바키아에까지 가서 살게 될 줄은 몰랐다.“라며 ”나이 먹는 게 아니라 (나이가) 그냥 오네요.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하루를 살듯이 살아간다. 어제도 내일도 생각 안하고, 오늘 일에 집중한다.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편이다. 변화를 체감 못하는 편이다. 그냥 저의 속도대로 간다.“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1970년, 일본 적군파 일당이 민항기를 납치하여 평양으로 향하는 실제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변성현 감독의 블랙코미디로 만든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지난 17일 공개되었다. 류승범,설경구, 홍경, 김성오 등과 함께 야마다 타카유키, 시니나 깃페이, 카사마츠 쇼 등 일본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