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러닝맨' - 영화 '더 러닝 맨'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한창 근육질 몸매를 과시할 때 출연한 영화 <러닝맨>(1987)은 스티븐 킹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슈워츠네거가 연기하는 주인공 벤 리처드는 대량학살의 누명을 쓰고 결국 ‘러닝맨쇼’라는 리얼리티TV에 강제로 출연하게 된다. 그는 이제 5인의 런닝맨과 치열한 격투를 벌이고 살아남아야한다. 천하의 아놀드 슈워츠네거가 출연했지만 이 영화는 소설 팬으로부터 분노를, 원작자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단순한 액션물로 치부할 작품이 아니란 것이다. 그리고 <베이비 드라이버>의 에드거 라이트 감독이 다시 한 번 영화화에 나섰다. 12월 개봉하는 <더 러닝 맨>이다. 이번엔 글렌 파월이 주인공 벤 리처드를 연기한다. 개봉 전에 원작소설을 소개한다. 지난 달 소설 <러닝맨>이 새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원작소설 <러닝맨>의 시대적 배경은 2025년이다. 주인공이 사는 시궁창 같은 빈민가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이렇게 멋진 2025년이 썩어가는 악취만 가득했다”는 장면이 있다. 세상(미국)은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섰고 정보통제는 일상화 되었다. 환경오염과 인구과잉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한다. 가난한 자들은 ‘프리비’라는 공청모니터를 통해 잔인한 게임을 강제적으로 시청해야한다.
가난에 허덕이는 28살의 남성 벤저민 리처즈는 딸이 독감으로 죽어 가는데 약값도 댈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게임에 참가하는 것뿐이다. 리얼리티 쇼 ‘러닝맨’이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30일간 살아있으면 된다. 잘 숨어서, 잘 도망가서, 버티면 된다. 세상에 대한 분노, 가진 자에 대한 분노, TV오락에 대한 분노로 넘쳐나는 벤 리처드는 이제 죽음의 게임을 펼친다.
‘프리비’는 소설 초반에 설명이 나온다. 모든 공영주택아파트에는 법에 따라 프리비가 설치되어있어야 한다고. 방송되는 프로그램 중에는 <즐거운 총>, <네 무덤을 파라>, <악어와 수영> 같은 것이 있다. 그 중 <돈 버는 러닝머신> 것은 이런 포맷이다. 심장이나 간, 폐 등 만성질환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이 게임에서 참가자는 사회자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달려야한다. 1분 버틸 때마다 10달러를 받는다. 보너스가 달린 문제도 있고, 러닝머신의 속도로 빨라지는 죽음의 게임이다. 폐에 물이 가득 찬 참가자가 가족을 위해 죽음의 달리기를 한다니! 그걸 또 열광적으로 시청한다니!!
주 인공 벤은 타고난 반항아였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불복종과 상급자 모욕, 권위에 대한 악의적 비난 등으로 퇴학과 해고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문제아였다. 그런 그가 마지막 택한 것이 게임 참가이다. 프리비 방송국의 총괄프로듀서 댄 킬리언은 ’러닝맨‘ 프로그램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다. “리처즈 씨처럼 타고난 말썽꾼을 제거하기 위해 네트워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게임을 6년째 진행하고 있는데 생존자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고.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도망가는 동안, 생존해 있는 동안 시간당 100달러를 가족이 받는 것이다. 그렇게 30일을 버티면 상금으로 10억 달러를 받게 되는 것이다. 대신 [프리비]를 시청자 중 그를 목격하고 신고하면 100달러가 주어지고, 그 신고가 ’사냥‘으로 이어질 때는 1000달러가 지불된다. 적어도 여기까지는 공정(?)한 게임의 룰 같지만 실제 네트워크는 훨씬 사악한 쇼를 펼친다. 벤 리처드와 그의 불쌍한 가족들 악마로 묘사한다. 그를 보면 무조건 신고하도록. 온 국민, 전시청자 서바이벌게임이 펼쳐지는 것이다. 별다른 유흥거리가 없는 사람에겐 최고의 오락인 것이다.
벤 리처드는 도시를 떠나 북쪽으로, 캐나다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과정이 엄청난 고난의 길인 것은 당연할 것이다. 변장도 하고, 임기응변의 수도 내보지만 도처엔 목격자와 경찰이 깔려있다. 과연 벤 리처드는 30일을 버틸 수 있을까.
스티븐 킹이 1982년 발표한 <러닝맨>은 암울한 미래상을 보여준다. TV예능쇼의 진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잔인함을 극대화한다. 방송사는 시청률을 위해 최고의 스릴러를 제공하고, 시청자는 맹목적으로 그 프로그램에 중독된다. 공기오염과 최악의 거주환경에서, 별다른 즐거움이 없는 빈곤층의 유일한 해방구가 되는 것이다.
스티븐 킹이 그리는 미래상은 그다지 ’미래스럽지‘는 않다. ’공기부양차‘가 그나마 미래의 모습일 뿐, 나머지는 지금이랑 똑같다. 방송을 이용한 우중화 정책이나 계급화된 사회의 모습이. 이 작품을 통해 ’미디어의 타락‘은 곱씹어볼만하다. 마지막엔 어떻게 되냐고? 소설과 곧 개봉될 영화로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스티븐 킹이 1982년에 쓴 소설에 2001년의 모습이 재현된다는 것이다)
참, 소설 <러닝맨>은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흐만(Richard Bachman)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작품이다. 당시 필명을 쓴 이유에 대해 작자는 “활동 초기에 출판업계에서는 1년에 한 권의 책만을 독자들이 받아들일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생계형 작가였던 그는 리처드 바흐만 이라는 필명으로 그 허들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이 이름으로 네댓 권의 소설을 출판했다. 이 책은 ’마이너스100‘에서 시작하여 ’마이너스1‘, 그리고 ’마이너스0‘까지 챕터가 구성된다. 마치 카운트다운 하는 것처럼 긴장감이 있다.
▶러닝 맨 (원제: The Running Man) ▶저자: 스티븐 킹 ▶번역: 최세진 역 ▶출판사: 황금가지/ 2025년 9월 12일/ 344쪽/ 17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