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은 한국서예의 위상을 재조명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메세나'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주로 클래식 공연장에서이다. ‘메세나’(Mecenat)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문화예술, 과학, 스포츠 등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분야의 인물과 활동에 금전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는 활동으로, 고대 로마의 정치가 마에케나스(Maecenas)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기업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세속적인 투자마인드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업인의 원모심려가 서려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의 메세나 지형도를 엿볼 수 있는 책이 한 권 나왔다. 전경련이나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니라 한 언론매체에서 발간한 책이다. 파이낸셜투데이가 연재한 기사들을 모아 엮은 <메세나 코리아 29선>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29개 기업들의 문화예술 메세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기업과 문화예술의 상생의 기록인 셈이다.
국내 피아노조율사 심화교육과정 ⓒ삼성문화재단
<메세나 코리아 29선>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대기업과 그 산하 문화재단의 활동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들 기업의 면면과 활동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창업자와 오너들의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꾸준한 지원책이다. 대기업의 대외활동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혜택을 받는 당사자들에겐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 같은 시혜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이들 기업들이 보여주기 일회용 선심 이벤트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 박물관과의 협업이나 엄청난 국보급 문화재의 전시뿐만 아니라 장애예술인/ 지역문화 지원, 내팽개친 고문화에 대한 발굴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내밀고 있다.
올해로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삼성문화재단은 문화예술계의 대표적 메세나 재단이다.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프랑스 파리에는 시테레지던시에는 작업 작업실을 장기임대 한국작가의 파리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클래식 악기 연주가들을 위해서는 세계적인 현악기를 지원하는 삼성뮤직펠로우십도 운영하고 있다. 금호문화재단의 공연장 금호아트홀은 상주음악가를 선정 클래식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CJ문화재단은 스토리업, 스테이지업, 튠업 등 창작자 성장을 위한 맞춤형 인큐베이팅을 제공하고 있다. LG그룹은 마곡의 LG아트센터를 통해 세계적인 공연, 예술을 집중 소개하고 있으며, 구겐하임 미술관 협업을 통해 구겐하임 아트앤드테크놀로지이니셔티브, 국립현대미술관과 손잡고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영국 테이트모던과의 장기 커미션,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지원, 국립현대미술관 장기후원, 공공기관 국제교류플랫폼인 현태트랜스로컬시리즈까지 다양한 문화예술생태계조성에 힘쓰고 있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선정 아레테콰르텟 ⓒ금호문화재단
이들 말고도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상상 이상의 규모로 문화, 예술의 씨를 뿌리고, 온실의 적정온도를 맞춰주고 있다. 조나단 보로프스키의 ‘해머링 맨’이 버티고 서있는 태광그룹의 세화예술문화재단은 전통예술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비문부터 추사 김정희의 글씨까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서체 15선을 선정, 복원 출간하는 프로젝트 ‘한국서예 국보급법첩’을 발간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산업도시 울산을 기반으로 지역 작가를 조명한 전시부터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 세계적 거장의 공연 등을 꾸준히 펼치며 문화예술허브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게임업체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국외 국가유산 환수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복원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국가유산청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 중 해외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힌 것도 있다. 대한항공은 2008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시작으로 러시아 예르미타주박물관,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에 한국어안내 서비스를 시작했다. 마사지 체어 등으로 유명한 바디프랜드는 한국발달장애인문화예술협회 아트위캔과 손잡고 장애인예술지원에 나서고 있다. ‘토닥토닥앙상블’이라는 장애인 팝밴드를 결성하여 정기적인 연주를 지원하고 있다.
참, 이 책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은 고 김우중 회장(대우)이다. 서울역 앞 ‘대우빌딩’에서도 ‘대우’의 이름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김우중 회장의 문화/학술분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대우학술총서’이다. 김 회장은 1978년과 1980년 200억 원이 넘는 사재를 출연해 대우재단을 설립했고, 1983년부터 대우학술총서를 출간했다. 두껍고, 어렵고, 힘든 학술분야 책을 꾸준히 번역, 출간해 오면서 ‘학술 분야의 씨앗’으로 자리매김했다. 어쩌면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그 기업보다, 그 기업가보다 더 영생을 누리며 우리에게 혜택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메세나 코리아 29선> (김영재 임광기 지음/ 파이낸셜투데이)
파이낸셜투데이에서 문화부 기자로 있는 김영재 기자가 발로 뛰면 쓴 <메세나 코리아 29선>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이 소개되어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이들 기업 말고도 더 많은 기업들이 유무형의 문화지원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이 책에는 30개도 아닌, 29개의 예시를 들었지만 문화에 관심 있는 기업들, CEO가 많을수록 대한민국은 백범 김구가 꿈꾸던 문화강국에 한층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토대가 탄탄한 그런 문화강국 말이다. 기업들이 진정성 있게, 알맞은 지원을 꾸준히 해주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이 책의 30번 째 목록에, 그리고 40번째, 50번째, 100번째 목록에 이름을 올릴 기업들이 계속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박재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