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복서
창작뮤지컬 한 편이 대학로 무대에 올랐다. 사연이 있는 복서의 이야기이다. 1962년의 이야기는 25년 전,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무대가 옮겨간다. 나라 잃은 울분을 주먹에 실어날리는 항일드라마인가? 제목 <조선의 복서>는 우선 그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소극장 무대에는 샌드백이 달려있는 체육관이 보인다. 그 공간은 링으로 사용될 것이다. 한쪽에는 책상이 있고, 타자기가 놓여있다. 마리아는 신문 연재소설을 쓰고 있다. 아버지 최요한을 주인공으로 한 ‘권투 활극’이다. 때는 1937년. 조선권투구락부를 주름 잡고 있는 사람은 이화이다. 어느 날 요한이라는 자가 나타나서는 결투, 아니 경기를 청한다. ‘항상 이기는 경기만 해온’ 이화는 손쉽게 요한을 다운시킨다. 그런데 요한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계속 그곳에 나타나 시합을 청한다. 그렇게 요한은 권투를 배우고, 승부를 익힌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서로를 닮아가는 친구가 된다. 조선총독부가 복싱금지령을 내리자, 둘은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향한다. ‘조선인 출입금지’라는 상황에서 요한을 어렵게 기회를 얻어 그곳에서 ‘조선의 복서’가 된다. 하지만 곧 어두운 그림자가 생긴다. 스포츠맨십의 승부가 아니라 승부조작의 오명을 뒤집어쓴다. 그리고, 다시 1962년. 소설가 마리아는 자신이 쓴 ‘최요한의 이야기’가 잘못 되었다며 연재중지를 당한다. 마리아는 연재를 중단시킨 종로경찰서 장명을 찾아가 따지다가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된다.
뮤지컬 <조선의 복서>는 이화와 요한의 만남, 마리아와 장명의 조우를 통해 1937년과 1962년의 이야기를 이어준다. 엄혜수와 서진영이 만든 넘버들은 105분의 작품을 꽉 채운다. 링에서 펼쳐지는 권투를 더욱 박진감 있게, 승부에 올인하는 선수들의 심장소리만큼 극장을 울린다. ‘맨주먹의 복서’는 챔피언이 되지만, 나라를 잃은 상황만큼 슬픈 2막을 맞게 된다. ‘피와 땀과 눈물’이 범벅인 된 링과 모국을 떠나야하는 나라 잃은 운동선수의 이야기가 묵직한 드라마를 전해준다. 이야기의 주인공, 당사자는 알 수 없었던 ‘그날의 진실’은 무엇일까. <조선의 복서>의 이야기는 마치 뮤지컬 <그날들>처럼, 관객에게 마지막 승부와 장명의 진술을 끝까지 지켜보게 한다.
조선의 복서
뮤지컬 〈조선의 복서〉는 한양대학교가 주관한 ‘2023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창작뮤지컬 멘토링 프로그램(Into the Creation!)을 통해 첫발을 내딛었고, 한국뮤지컬협회 주관 ‘2024 뮤지컬 융합 창작랩(MU:LAB) 쇼케이스’를 통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엠비제트컴퍼니의 프로듀싱 아래 지난달, 대학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경성의 조선권투구락부에서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는 이화 역에는 송유택, 이종석, 김기택이, 그리고 그에게 끝없이 도전하며 내일을 꿈꾸는 요한은 신은총, 이진혁, 박준형이 링에 오른다.
오직 ‘아버지’ 요한의 명예회복을 위해 글을 쓰는 작가 ‘마리아’ 역은 류비, 한수림, 이한별이 맡았다. ‘요한의 비밀’을 알기에 소설의 연재를 중지시키는 경찰관 ‘장명’ 역에는 이한솔, 박상준, 김재한이 출연한다.
인터미션 없는 짧은 공연이지만 소극장 무대를 꽉 채우는 복싱 장면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창작뮤지컬을 보는 즐거움을 더하는 뮤지컬 〈조선의 복서〉는 11월 9일까지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조선의 복서' ▶작가:엄혜수 ▶작곡:서진영 ▶연출:장우성 ▶안무: 채현원 ▶음악감독:김희은 ▶제작:엠비제트컴퍼니 ▶출연: 송유택 이종석김기택 (이화)/ 신은총 이진혁 박준형(요한)/ 류비 한수림 이한별 (마리아)/ 이한솔 박상준 김재한 (장명) ▶대학로 자유극장 2025년 9월 9일~11월 9일 ▶12세이상관람가/105분(인터미션 없음)
[사진=㈜엠비제트컴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