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독립영화, 만화영화, TV드라마, 천만 영화, 티빙, 넷플릭스 등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쉬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작품을 내놓는 진정한 작가주의 감독이 바로 연상호 감독이다. 그가 한 템포 쉬는 듯 내놓은 작품이 <얼굴>이다. 이 작품은 2018년 그래픽 노블로 먼저 출판되었고, 2억 원이라는 초초저예산으로 13번의 촬영 회차로 완성시켰다. ‘넷플릭스 기준’에 ‘무너져가는 한국영화계’에 이런 제작방식이 어떻게 가능할까. 연상호 감독을 만나 2억 원의 비밀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베일을 벗는 ‘정영희의 얼굴’에 대해서도.
Q. 이런 제작 방식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연상호 감독: “배우들이 작품이 좋아서 참여했기에 만들 수가 있었다. 기존 방식으로 <얼굴>을 영화로 만들려면 어느 정도는 개런티를 주어야할 것이다. 그러려면 20억 원은 되어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투배사(투자/배급사)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얼굴>이 관심을 가질 만큼의 성과가 있었으면 한다. 제작방식이 다른 형태로 진화해야한다. 이런 모델이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은 확실히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익 배분은?) “결국 순제작비 투자사이기에, 그 지분을 스태프에게 나누기로 했다. 얼마의 수익이 나더라도 배분할 것이다. 마음의 빚이 있으니까.” (그 빚을 다 갚으려면 어느 정도 관객이 들어야하나?) “한, 천만?” (하하하하)
Q. 2억 원에 13회차 촬영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나?
▶연상호 감독: “제일 큰 것은 촬영 회차와 관련이 있다. 그동안 영화를 하면 보통 50회차에서 80회차 정도 촬영을 했다. 그런데 아시아의 전설적인 영화를 찾아봤다. 에드워드 양(양덕창)이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가 회차가 그렇게 많지 않더라. 그런 것에서 용기를 얻고 시작한 면이 있다. 올해 나온 작품 중에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와 토론토에서 본 <세계의 주인>을 재밌게 봤다. 그쪽(독립영화)에서도 얼마든지 압축적인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투배사가 그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의지가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회차는 정확히 말하자면 12.5회차이다. 마지막 회차는 점심 전에 끝났다.”
영화 '얼굴'
Q. 공장을 어떻게 구현했는가. 제작비가 많이 드는 공간인데.
▶연상호 감독: “1970년대 모습이다. 공장 골목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기타노 타케시가 나온 <피와 뼈>(최양일 감독,2004)를 보면 어묵공장이 나오는데 보이는 골목이 그 영화의 모든 공간이다. 그 곳에서 몇 십 년의 서사가 다 보인다. 골목 하나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세팅해서 촬영했다. 비슷한 분위기의 공장을 찾았다. 낮과 밤 장면을 모두 낮에 찍은 것이다. 내부 장면은 세트로 만들었다.”
Q. 이런 제작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는지.
▶연상호 감독: “재밌는 영화를 만든다는 게 무엇일까. 딸애가 초등학생인데 유튜브를 많이 본다. 그게 재밌더라. 퀄리티가 안 좋은데 아이들은 그런 재미로 보는 것이다. 위기감을 느꼈다. 나는 웰메이드로 만들어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있었던 게 아닐까. 그 무렵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데 <얼굴>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의 콘텐츠로 충분히 재밌게 몰입할 수 있었다. 예산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하는 사람으로서 그들과 경쟁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재연 드라마처럼 나오면 어쩌지. 창피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두려워한다는 것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각오하고 만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스태프와 배우들이 합류하면서 그런 걱정이 없어졌다.”
Q. 기존 영화제작방식에 비해 어떤 재미가 있던가.
▶연상호 감독: “이거 중독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영원히 상업영화로 못 돌아갈 것 같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영화동아리하는 것처럼 같이 회의하며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큰 영화를 만들 때의 재미도 있다. 힘들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영화 '얼굴'
Q. 원작 그래픽노블과 영화의 차이는.
▶연상호 감독: “주제의식에 포커싱하려고 했다. 배우들이 들어오면서 캐릭터가 풍성해졌다. 제일 큰 것은 정영희라는 인물이 더 주체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희생자 입장이 도드라졌고, 마지막에 자기의 흔적을 남기는 느낌이었다면, 영화에서는 구체적인 인물이 되었다. 임영규의 손의 흉터에 대해 말하는 장면과 마지막에 사진을 얻게 되는 과정이 달라졌다. 그 사진을 백주상(임성재)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큰 변화는 박정민이 1인 2역을 한다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임동환이 엄마를 닮았다는 대사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아빠를 닮았다는 것이 투영되어있다. 시니컬한 면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1인 2역은 대단한 아이디어이다. 박정민이 준 것이다.”
Q. 아들 임동환에 대해서는?
▶연상호 감독: “원작(만화)에서는 임동환의 전사도 어느 정도 수치심을 가진 인물로 설정했었다. 영화에서는 관객과 비슷한 관점을 인물로 설정하려고 했다. 임동환의 선택이 관객이랑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했기에 뒤에 가서 관객이 느끼는 점이 더 커질 것이다. 만화보다 더 집중력 있는 형식으로 수정했다.”
Q. 연출의 변화가 있는지.
▶연상호 감독: “제가 이전에 작품 할 때는 나 자신이 대중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이 작품 기획할 때는 그걸 감안해서 내가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생각보다 대중성이 있더라. 내가 대중성이 있는 것인가? 요즘 들어 바뀐 모양이다.”
Q. 70년대 성과주의의 그늘을 이야기한다. 그게 외모 지상주의와 연결되는데.
▶연상호 감독: “70년대 성과주의를 효과적으로 이야기하려고 불가능한 미션을 이루는 상징적인 인물을 먼저 생각했다. 시각장애인이면서도 시각적 예술로 일가를 이룬 인물을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그와 정반대되는 인물로 임영규의 약점이 될 수 있는 인물을 만들었다. ‘얼굴이 어떻게 생겼다’는.”
Q. 그래픽 노블이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연상호 감독: “대본 형태로 먼저 작업한 것이다. 영화로 만들기 위해 투자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여러 차례 거절당했다. 이렇게는 영상화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그래픽노블 작업을 한 것이다. 그 뒤에도 영화화 시도는 했었는데 잘 안되었다. 그러다가 꼭 돈이 없어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한번 해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Q. 원작 작가의 말에는 ‘<얼굴>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연상호 감독: “나만 만족하는 이야기를 내놓은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아내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더 진전된 것이다. 그 때 본 것이 엄청 슬펐다. 아내가 (영화로) 한 번 해 봐라고 했던 것 같다. ‘1억으로 해볼까?’ 가능할 줄 알았는데 아무리 압축해도 2억이더라.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모바일로 찍을 생각도 있었다는데?) “1억으로 하려면 핸드폰으로 찍어야했을 것이다. 다행히 회차가 짧아 촬영감독도 카메라 렌탈로 협조가 잘 되었다.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
** 연상호 감독인 본 <그것이 알고 싶다>는 ‘찹쌀공주와 두 자매-여수모텔 살인사건’(2024.05.18.방송)이란다 **
영화 '얼굴'
Q. 기존의 상업영화 방식과는 다른 제작 방식이다.
▶연상호 감독: “기획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것은 투자배급사들이 작품의 ‘호불호’를 줄이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게 흥행에는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란다. 울퉁불퉁한 것을 깎아내는 방식인데 나는 그게 재미가 없더라. 영화는 모난 구석이 있어야한다. 이것저것 깎다보면 서로 비슷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아쉬운데 영화산업이란 게 쏠림현상이 있다. 모난 걸 자르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게 십몇 년 지속되어왔다. 이제 그런 관점을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모나더라도 말이다. 지금 모든 문화의 형태가 팬덤 문화이다. 광적으로 좋아하는 추세이다. 그런 문화는 뾰쪽한 게 없으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비슷하게 둥글둥글하고, 호불호가 없는 것은 지양해야할 것이다. 지금이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정영희의 얼굴에 대해, 마지막에 공개되는 것에 대해.
▶연상호 감독: “만화책을 냈을 때도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얼굴은 어떤 얼굴이냐’는 질문. 이미 봤음에도 말이다. 어떻게든 규정짓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규정 짓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 기조를 유지하고 싶었다. 영화에는 배우들이 나온다. 이야기의 전개가 엔딩에 이르면 이게 극이 아니라 현실로 넘어올 때이다. 배우의 얼굴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람의 얼굴이기를 바랐다. 관객에게 한 편의 영화의 끝이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모습이었으면 했다. 저도 규정짓지 않은 얼굴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과연 그게 어떤 모습일까. 누구의 얼굴도 아니면서,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얼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다. 당시 사람들의 평균 얼굴 모습을 모아 베리에이션 한다든지, 여러 얼굴의 카드를 앞에 두고 이것인가 저것인가 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식으로.”
Q. 그 얼굴 없는 정영희를 신현빈 배우가 연기했다.
▶연상호 감독: “신현빈과는 세 번째 작업이었다. 배우입장에서는 폐를 끼치는 캐스팅인 셈이다. <계시록> 찍을 때 박정민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얼굴이 안 나오는 역할을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얼굴이 나와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 신현빈이 대본 읽어보겠다고 했고, 하겠다고 한 것이다. 아마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캐릭터를 어떻게 구현해야할지. 제일 놀라운 것은 편집하면서 어는 순간부터는 그 배우의 얼굴이 안 나온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몰입을 했다. 처음 임영규와 만나는 신에서 배우가 목소리를 좀 더 컨셉츄럴하게 했다. 얼굴이 안 나오니 촬영할 때도 조금 달랐다. 촬영감독과 시선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화면에 어떻게 담아야하는지 콘티 연출 방식을 바꿨다.”
Q. 권해효와 박정민이 마지막 합을 맞추는 연기는.
▶연상호 감독: “박정민이 연기한 임동환 연기가 좋았다. 그 장면에서 박정민은 리액션밖에 할 게 없다. 아버지 임영규의 대사를 듣기만 하는데, 그 지점에서 감정이 미세하게 다르게 표현한다. 정확하게 표현했다. 박정민은 감독 이상으로 대본을 잘 읽는 배우이다. 대본에서 어떤 점을 부각해야 작품의도에 부합하는지를 빨리 파악하는 배우이다. 서사와 문학성이 잘 훈련된 배우이다. 그러니까 출판사도 하는 모양이다. 작품을 읽는 데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Q. 현장은 어땠는지.
▶연상호 감독: “사람이 많지 않아서 기동성이 좋았다. 연출부도 단출하고 모니터도 조그만 것 하나면 됐다. 한국영화는 현장편집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시간도 없고 해서 현장편집 없이 했다. 그래서 기동성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여름에 촬영하는 걸 안 좋아하는데 이번에 회차가 짧으니 너무 좋았다. 테이크 갈 때도 시간을 줄여 기동성 있게 앵글 바꾸면서 진행했다.”
Q. 회차를 줄인다는 것은?
▶연상호 감독: “에드워드 양 작품을 많이 봤다. <큐어>도 그렇게 하더라. 백주상이 임영규와 술 마시는 단란주점 신은 장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허름하더라도 에어콘이 다 있으니. 그걸 CG로 E다 지울 수도 없고. 그래서 백주상 집에서 술 먹는 것으로 찍었다. 영화를 하다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다. 촬영 회차는 프로듀서가 합리적으로 짰다. 예산범위에서. 독립영화도 그런 식이겠지만, 이건 참여방식이 다르다. 보조출연자나 스태프도 모두 기존의 상업영화를 하던 사람이다. 원칙이 있어야한다. 물론, 모든 영화를 이렇게 찍을 수는 없다. 영화산업의 트렌드를 정하는 것이다. 대중이 원하는, 팬덤이 가능해질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이렇게도 한국영화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뾰족하더라도, 코스트가 낮아져야할 것이다.“
연상호 감독
Q. 정영희 얼굴이 마지막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의 결말은 어떤가?
▶연상호 감독: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보는 내내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이야기해야 논쟁의 시작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폭발력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든 유튜브든 어떤 방식이든 창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쓴다거나, 다른 것을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다음 작품도 도전이다. 일본의 감독과 작업한다. 일본의 배우와 일본감독,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큰 도전이다. 겁을 집어먹기 보다는 뭔가 하려는 것이 창작의 동력이다.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연상호 감독은 작품을 끝내고 기자들과 라운드 인터뷰를 하면 항상 일일이 서명한 자신의 작품(만화책)을 선물한다. 이날은 <블랙 인페르노>라는 소설책을 내놓았다. 연상호 감독과 류용재 작가가 원안을 쓴 오성은 작가의 책이다. “글쎄 이런 책이라면 저예산으로 해 보고 싶다. 이 책 나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책이다. 내용이 어둡다. 제 돈으로 하지 않으면 투자 받기 어려울 것 같다.” (저예산으로 찍고 싶은 작품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의 <얼굴>은 훌륭한 영화이다. 연상호 감독의 모든 창작물이 흥미롭다. <얼굴>대신, 언제 영상화가 이뤄질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블랙 인페르노> 연상호 감독의 글을 대신한다.
“이 작품은 내가 만들어내 어두운 구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내가 이야기를 만들 때 느꼈던 공포와 호기심을 가지고 이 비극의 끝을 바라봐주길 바란다. 그리고 독자가 다다른 마지막 풍경에 오랫동안 시선을 거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치 ‘얼굴’의 마지막 사진을 두고 하는 이야기 같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