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감독
10일 개봉하는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가족에게조차 결코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가진 엄마의 이야기이다. 그 엄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아들, 아들의 여친, 아들의 여친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사연이 펼쳐진다. 작품 속 배경은 강원도 춘천이다. <철원기행>, <초행>의 김대환 감독은 춘천의 강원고를 나왔단다. <춘천, 춘천>과 <겨울밤에>를 만든 친구 장우진 감독은 춘천고 출신이다. 영화를 보면 갑자기 그들의 출신이 궁금해질지 모른다. 개봉을 앞두고 감독을 만나 ‘비밀’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비밀’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정하(장영남)의 비밀은 언제부터인지. 남편의 마지막 말 중에는 ‘처신을 잘 해라’라는 대사도 있었는데.
▶김대환 감독: “지선(옥지영)을 만난 것은 3~4년 전, 본격적으로 사귀고 이사 온 것은 1년 전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 10년 전에는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다.“
Q. 이야기의 흐름이 이안 감독의 <음식남녀>(1994) 같았다. 반전의 효과 같은 게 말이다.
▶김대환 감독: “이 영화 출발할 때 그 작품이 중요했다. <결혼피로연>(1993)도. 그리고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도 염두에 뒀다. 영화적 구성으로는 <완벽한 타인>을 참고했고.” (우와, 영화광팬 이었나보다. 그런 영화까지 언급하고) “요즘 씨네필과 비교하면 ‘광’이라고 하기엔 그렇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제일 처음 본 게 채널 돌리는 텔레비전에서 명절에 보았던 <이.티>이다. 그 때 영화란 걸 처음 봤다. 엉엉 울면서 봤었다. 아버지가 영화를 좋아하셔서 하루에 한두 편씩 비디오를 빌려오셨다. 영화 보는 것 좋아했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
Q. 보통 이런 영화는 가족의 성장기, 가족담을 투영한다. 부모님이 어땠는지.
▶김대환 감독: “우리 부모님은 금슬이 좋았다. 너무 좋아서 문제였다. 물론 가부장적 모습도 있었다. 극중 문철(박지일)처럼 괴팍하지는 않았지만 그 시대에 살아온 것이 대부분이 그러했을 것이다. 두 분 다 교직에 계셨다. 고지식한 양반 같은 느낌일 것이다. 아버지는 중고등학교, 어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
Q. 편견이겠지만 꽤 바른 생활, 올곧게 자랐겠다.
▶김대환 감독: “사고 친 것은 없지만 영화를 하니까 부모님 속을 좀 썩인 것 같다. 단편영화를 부모님 돈으로 찍었다. 꼭 갚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아직 못 갚았다.” (그래서. 극중에 부모님 직업이 교사였는가? 전작 <철원기행>에서도 ‘선생님’이다) “감독입장에서는 선생님 설정을 또 가져온다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캐릭터 구성과 관계들로 봐서 교직 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을 것이다. 관료 같은, 공무원 같은 이미지에, 학생과 학부모와의 관계도 형성된다. 직장을 다루면서 동료 외에 다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인 것 같다.”
Q. 가족관계, 가족이라는 질긴 인연, 굴레를 어떻게 시나리오에 담았는지.
▶김대환 감독: “시나리오를 시작할 때 키워드는 ‘재혼, 엄마, 춘천, 봄’이었다. 재혼에 관한 이야기를 제 입장에서 상상해 보았다. 우리 엄마, 아빠가 재혼한다면? 이혼을 하든 어떤 상황이든 저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 새로운 분과의 관계가 서먹하고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저도 결혼했으니 그런 게 뭐 그리 불편할까. 그 당시 어떤 기사를 보았다. 두 자녀를 가진 이혼한 여성,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인데 흥미로웠다. 인터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없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입장은 있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를 바라보는 것 말이다. <캐롤>에서는 완벽한 두 사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설정을 보면 ‘엄마’이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새롭게 제시되는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정하가 그런 상황에 있다 보니 파급력이 커지려면 상징적인 상황이 존재해야할 것이다. 문철 캐릭터에 대해서 보자면, 그런 사람이 사돈이라면? 그런 사람과 한 집에 있는 사람은 어떨까 상상을 해보았다. 의대를 간 딸은 어떻게 자란 것일까. 진짜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집을 탈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제 나름, 상상으로 만든 것이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
Q. 시나리오는 쉽게 써지던가?
▶김대환 감독: “초고가 금방 나오긴 했다. 투자를 알아봤지만 아무래도 코로나 터지고,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다가 영진위 지원이 이뤄지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초고는 서너 달 만에 썼지만 완고하기까지는 1년 정도 걸렸다.” (시나리오를 많이 써두었는지?) “아니다. 두 개 정도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Q. 왜 정하는 미술선생님일까. ‘그림’ 때문에?
▶김대환 감독: “그림도 있지만 내가 봐왔던 중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은 같은 교직원이면서도 확실히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선생님이신데 장발을 한다거나, 학교에 가마를 만들어 도자기를 굽는다거나.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 정하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자유로움, 속세에 덜 묶여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Q. 정하와 어른들은 ‘하고 싶은 것 해라’거나 ‘애들 하게 그냥 둬라’고 말한다.
▶김대환 감독: “사실 그게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정하도 학생에게 그러길 바랐고, 아들에게도, 자기에게도 말이다. 그렇게 바라지만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알고 있다. 조언이면서 자기에게 하는 다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도 그렇게 말을 하지만 스스로에게 맞지 않다는 양가적인 지점이 있다. 유학 보내놓은 아들, 지원을 했는데 그걸 접고 유튜버를 한다니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그런 상황을 통해 ‘내버려둡시다’, ’알아서 할 것이다’고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Q. 배우들은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각각의 역할에 적역이었다고 생각한다.
▶김대환 감독: “너무 잘 된 캐스팅이었다. 류경수와는 친분이 있었는데 시나리오 나오자마자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류경수와 누가 가장 어울릴까 생각해보니 장영남 배우가 떠올랐다. 예전부터 좋아한 배우인데 흔쾌히 응해주셨다. 박지일 선배가 연기하는 문철은 도드라지고 선명한 캐릭터이기에 이런 전형적인 캐스팅에 흥미가 없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양반이나 고위층, 지식인을 주로 맡다가 이런 역할에 흥미를 느끼시고 도전하신 거다. 박지하 배우는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진짜 현지인처럼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부탁드렸다. 옥지영 배우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의 기억이 남아있다. 비주얼 적으로 보아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스테파니 리는 드라마 <스타트업>을 잠깐 봤는데 미국에 살던 사람 같았다. 화상으로 미팅을 했는데 춘천사람이더라.”
Q.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봉준호 감독이 GV에도 나섰다. <기생충>을 윤색했다는데, 어떤 인연인가. 조감독 출신인가?
▶김대환 감독: “그건 아니다. 2014년에 <철원기행>으로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갔을 때 봉 감독님이 심사위원이었다. <옥자> 준비 중이었고 다음 영화가 가족영화라면서 제가 만든 가족영화를 보고는 준비 중인 작품을 이야기했다. 초반 설정이나 공간, 가족들이 침투하는 방식을 썼다. 그 이후는 완전 다르다.”
Q. 만드는 작품이 모두 춘천, 홍천, 철원 등 강원도이다. 계속 여기서 찍을 것인가.
▶김대환 감독: “그렇진 않다. 가보지 않은 곳도 담아보고 싶다. 우리나라에는 미지의 공간이 많다. 휴전선 위쪽, 그 공간은 그 누구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공작> 같은 작품이 매력적이다. 상상의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곳에선 찍을 순 없겠지만.” (계속 가족이야기를 할 것인가?) “가족영화는 여기까지이고, 다음에는 장르영화를 하고 싶다. SF일수도 있고, 스릴러가 될 수도 있고.”
영화 '비밀일 수밖에'
Q. 파국일 수도 있고, 해법의 첫 걸음일 수도 있는 부분이 노래방(기계) 장면이다. 이 부분에서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을 부르며, ‘그림’이 등장하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김대환 감독: “각 캐릭터의 매력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 신에서는 하영(박지아)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만 보여주는 것보다는 이 사람도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려고 했다. 하영이 남편과 캐나다로 떠나가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대학생이었거나 갓 졸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원했을까. 아마도 강변가요제에서 수상하기를 원했던 노래 실력을 가졌을지 모른다. 신나게 부를 수 있는 곡을 찾아보라고 했다. 몇 곡을 후보로 받았는데 이게 가장 잘 어울렸다.”
Q. 정하의 집에 대해서. 그리고 후반부 문철이 산에서 헤매는 장면은?
▶김대환 감독: “정하는 왜 이곳에 살까 생각해 보았다. 아파트에 살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지선과 함께 있으려면 아파트보다는 외지에 살고 싶을 것이다. 더 재밌고, 신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즈음에 문철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자신에게 부끄럽기도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그냥 거기에 있기 싫다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정처 없이 산으로 가는 것이다. 아마도 문철에게 무의식의 지점이었을 것이다. 그가 살았던 곳은 시골이었고, 어릴 적 추억들이 있을 많은 공간. 아버지도 생각나고,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이 나올 수 있겠다고 지점이다.”
Q. 봉준호 감독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았다고 했는가.
▶김대환 감독: “기술시사 섭외하면서 너무 재밌게 보셨다고 하더라. 배우들의 앙상블 연기를 칭찬하셨다. 신나게 보셨다고 하더라.”
김대환 감독
Q. 곧 개봉한다. 지금 심정은.
▶김대환 감독: “이게 세 번째 영화인데 긴장도 된다. 오랫동안 준비한 영화인데 요즘 영화시장이 침체되어있어 걱정이다. 영화 보신다면 새로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을 것이고, 추억거리와 생각할 것도 많으실 것이다. 가족에 대해 새로운 사유를 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극장에 많이 오시기 바랍니다.”
김대환 감독이 개인적인 추억과 성장담을 토대로 계속 춘천과 강원도에서 작품을 찍기를 기대하는데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이걸로 가족이야기는 마감이다. 가족3부작이 완성된 것이다.” 아쉽다. (덧붙여, 절친 장우진 감독은 지금 신작을 강원도에서 찍고 있다고 한다)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엄마가 예비사돈의 요란법석 방문으로 예측할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김대환 감독의 강원도 춘천의 힘 ‘비밀일 수밖에’는 10일 개봉한다.
[사진=(주)슈아픽처스, (주)AD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