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네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어. 늘 짓는 웃음 뒤에 얼마나 깊은 우물을 가지고 있는지."
사랑한다고 해서 서로를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는 건지도 모른다.
'도둑잠'(연출 최상열)은 헤어졌던 연인이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며 다시 한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성장 로맨스 드라마다.
홍주(김보라 분)는 헤어 디자이너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샵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을 하지 못했던 그는 현실과 고군분투한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지내던 고시텔은 리모델링을 시작했고 샵에서 지내던 그는 결국 들키게 돼 갈 곳이 없어진다. 돈도 다 떨어진 그는 문득 전 남친인 이남(동하 분)을 떠올리게 되고 그가 집을 비운 사이 그의 집에 들어가 몰래 살게 된다.
그중 결혼으로 그만두는 선배 디자이너가 생겼고 홍주는 선배의 공석을 메꿀 초급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밤새도록 커트 연습을 하던 홍주는 깜빡 잠에 들게 되고 이남이 돌아오는 시간까지 짐을 치우지 못하며 결국 이남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게 됐다. 그 과정에서 놀란 이남은 홍주를 귀신으로 알고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 펜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등 충격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보였다.
진정된 이남은 홍주를 보고 "너가 여기 왜 있는 건데?"라고 화를 냈고 홍주는 월급날까지만 버티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비밀번호는 왜 안 바꿨냐"는 홍주의 말에 "비밀번호 네 생일인 거 까먹을 정도로 아무 의미가 없어서"라고 차갑게 냉대하는 이남은 홍주의 부탁을 거절한다.
'도둑잠'은 아직 서로에게 감정이 남은 홍주와 이남의 이야기를 통해 헤어진 연인의 성장기를 보여준다. 홍주에 대한 걱정에 결국 이남은 그가 머무는 것을 허락했고, 그렇게 시작된 기막힌 동거 생활은 그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를 몰랐던 과거를 되짚는다. 홍주가 이남에게, 그리고 이남이 홍주에게 반했던 점들에 대해 대화하기도 하고, 둘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휴일에는 함께 청소를 하기도, 장을 보러 가기도 한다.
사귀었을 때보다 서로를 더욱 깊게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된 그들은 비로소 상대방을 이해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타인을 모두 알 수 없듯 그들은 서로의 삶에 완전히 들어갈 수 없었던 한계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점을 향해 걸어나간다.
"우리가 왜 헤어졌더라?"
꿈에 대해 신나게 말하는 홍주를 향해 이남은 "헤어지자고 할 때는 뒤도 한번 안 돌아보더니, 버티기도 하는구나"라고 말한다. 그의 표정은 씁쓸하면서도 홍주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져 있다. 비로소 그는 홍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사랑이 낳은 결과물이 어떠하든, 서로를 이해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함께 살게 됐지만 서로를 간과했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알아가며 그들이 해왔던 사랑의 가치를 되짚는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들은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로를 다 알지 못해도 사랑은 그 곳에 계속 존재했었다고.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KBS '드라마스페셜 2020-도둑잠'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