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성 감독
‘범죄도시’(1편)는 다소 늦은 나이에 장편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강윤성 감독의 입봉작이다. 46살에 내놓았던 작품이 큰 흥행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어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로 이른바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었다. 하지만 곧바로 플랫폼을 바꿔 디즈니플러스 <카지노>로 다시 각광받았다. 그리고, 디즈니플러스와 다시 한 번 손잡고 <파인:촌뜨기들>을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파인:촌뜨기들>은 윤태호 작가의 웹툰이 원작이다. 1970년대 신안 앞바다에서 오래된 자기그릇이 발견되고 ‘골동품’을 도굴하기 위한 ‘파인’들의 음모와 모략과 배신과 드잡이가 이어진다. 강윤성 감독을 만나 <파인:촌뜨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파인>을 시작하게 된 것은.
▶강윤성 감독: “이게 10여 년 전에 ‘다음’에서 연재될 때 다음 회차를 기다리며 본 작품이었다. 제작사가 연출 제안을 해왔고, 제가 너무 좋아했던 작품이었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원작은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 그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의 욕망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원작이 가진 그 힘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Q. 웹툰을 포함하여 원작이 있는 작품의 경우는 웬만큼 잘 만들지 않으면 원작 팬들의 원성을 사는 경우가 많다.
▶강윤성 감독: “활자나 그림으로 된 원작을 영상화할 경우 팬들이 나름 생각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실망하는 부분이 있다. <파인>을 영상화하면서 원작을 훼손하지 않기로 했고,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그리고 원작에서 그리지 못한 빈 공간을 채워나가겠다고 생각했다.”
'파인: 촌뜨기들'
Q. 원작자인 윤태호 작가의 조언은 없었나.
▶강윤성 감독: “작업을 하면서 한두 번 뵈었다. 영상화 작업을 온전히 저한테 맡겨주셨다. 다 만들고 보여주니 좋아하셨다. 특히 양정숙(임수정) 캐릭터에 대해서 원작을 그릴 때 굉장히 날카롭고 돈에 집착하는 표독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는 훨씬 설득력 있게 그렸다며,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Q 바다 장면은 어떤 식으로 촬영했는지.
▶강윤성 감독: ”해상 장면은 리얼리티를 위해 바다에서 촬영해야한다고 그랬다. 겉으로 보이는 큰 그림은 풀샷이다. 나머지는 안전을 위해 수조에서 찍었다. 바다 속 모습을 담기 위해 논의를 많이 했다. 서해 바다를 정확히 구현하기 위해 해조류, 물고기, 해류 속도 등 리얼리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어떤 룩을 보일지 고민을 했다. 그 바다는 앞이 잘 안 보이는 뻘이라서 탁도에 신경을 썼다. 쉽지가 않았다. 바다에서 찍은 것을 보니 우연히 건져 올린 좋은 샷이 있었다. 노을이 되는 시간이 딱 걸렸을 경우이다. 정말 신안 앞바다는 조류가 심해 컨트롤하기가 쉽지 않았다. 배 한 척이 서 있는 것은 어떻게든 찍겠는데, 두세 척이 있으면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웠다.“
Q. 많은 배우들의 연기의 향연을 펼친다. 캐스팅의 주안점은?
▶강윤성 감독: ”원작을 보고 기획할 때,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살지 않으면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그들 모두를 다 잘 보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희동(양세종), 관석(류승룡), 정숙(임수정) 위주로 진행되지만 나머지 인물들을 다 집어넣어도 산만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Q. 목포 인물 중에 벌구를 연기한 정윤호에 대해서는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도 있다.
▶강윤성 감독: ”정윤호 배우는 소개받았다. 제가 아는 것보다 열정이 10배, 100배 넘치더라. 작품에 대한 의욕도 엄청났다. 처음엔 목포경찰서의 심홍기를 생각했었는데 만나보니 얼굴에서 벌구 이미지가 있어보였다. 며칠 지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친구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와따 여기가 파인 사무실이여~’하며 벌구가 되어 있었다. 그 때가 일본 콘서트 할 때인데 벌구 캐릭터에 익숙해지려고 하더라. 친구나 스태프와 전화할 때에도 사투리를 쓰고, 건달처럼 행동했다. 원래 그런 성격 아닌데 말이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부담이나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열정 곱하기 열정’인 사람이 준비를 많이 하더라. 리딩할 때 혼자 대본을 다 외서 하더라. 그런 사람 처음 본다. 왜 성공했는지 알겠더라.“
'파인: 촌뜨기들'
Q. 처음 보는 배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행운다방 레지 선자를 연기한 김민과 잠수사 복근의 김진욱이다. 어디서 이런 괴물 배우를 구했는지.
▶강윤성 감독: ”오디션을 봤었다. 공정성을 위해 5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선자 역에 올라온 최종 후보 중 유일하게 몰표를 받은 배우가 김민이었다. 당시에는 단편영화에도 출연해본 적이 없는 영연과 학생이었다. 김진욱 배우는 연극연출자로 친분이 있었다. 오디션 보고 있을 때 허동원 배우가 나에게 장문을 문자를 보냈다. 김진욱이 연출도 잘하지만 대학로에서는 연기도 잘한다면 한 번 꼭 봐달라고. 그래서 대본 보내주고 영상 하나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셀프연기 영상을 찍어 보내더라. 작품에 나오는 그 캐릭터였다. 너무 좋았다. 그래서 하게 된 것이다. 복근이 캐릭터는 연기 초반에만 해도 저렇게 가도 될까 했는데, 인물 자체가 좋아서 의도대로 가자고 그랬다.“
Q. 임수정의 연기는 어땠나. 사랑스러우면서 ‘팜므파탈’같은 이미지를 잘 구축했다.
▶강윤성 감독: ”연기를 워낙 잘하시는 탑 레벨 배우이니. 이런 연기를 해본 적이 없어서 독특한 것이 나올 것이라 기대를 했었다. 처음엔 양정숙 느낌이 덜 났다. 회차가 진행되면서 양정숙이 만들어지더라. 나중에 편집하면서 그 연기에 깜짝 놀랐다.“
강윤성 감독
Q. 배우들의 연기는 최고이다. 각자 어떤 식으로 연기를 조율한 것인가.
▶강윤성 감독: ”이야기를 쓰고, 캐릭터를 만들 때 배우들을 그 안에 가둬 두려고 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역할을 맡기로 결정 나면 그 배우의 스타일에 따라가려고 한다. 내가 생각한 연기의 느낌이 안 나오면 그 인물에 맞춰, 다음 촬영 때부터 바꾼다. 내가 연출하는 촬영장은 매일같이 쪽대본이 나온다. 대사를 바꾸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배우들은 자기 방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연기하기에 편할 것이다. 그 때 ‘내 방식으로 들어와 줘’라고 말하는 것도 어색할 것이다. 이 작품은 인물도, 그림도, 배경도 하나씩 잡혀나가는 것이다. 대신 매 신 웃겨야한다, 재밌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유머나 라이브 느낌을 넣으려고 했다. 주인공 한 사람의 대사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그 상황이 믿어져야한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인물과 상황이 말이다.“
”배우들이 서로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다들 연기를 잘 하시는 분이고, 혹시 내가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느낌으로 촬영에 임한 것 같다. 현장에서 자기 연기만 생각하는 분이 있는데 그런 사람과 하모니를 이루긴 어렵다. 오디션 볼 때도 그런 걸 본다. 자기 연기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배우들은 준비하는 것도 좀 다르다.“
Q. 배우들의 외모는? 양세종 배우는 조금 푸근한 느낌이 든다.
▶강윤성 감독: ”외모에 대해서는 신경 안 쓴다. 배우가 살이 쪘거나, 배가 나왔더라도 그냥 찍는다. 외형적인 캐릭터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카지노>의 최무식에게 ‘날씬해야하고, 신경이 예민하고,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파인: 촌뜨기들'
Q. <파인> 속 인물은 다들 악인이다. 하지만 연민이 많이 간다. 악인/악당/빌런을 어떻게 다루는지.
▶강윤성 감독: ”원작 자체가 시대상황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사람을 죽이라고 오더 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완전히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집단주의 사고가 있었다. 나라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인권(개념)도 없고, 정의스럽지도 않은 때였다. 그 사람들이 욕심은 좀 더 큰 집,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 하고, 개도 키우고 싶은 것이다. 더 큰 배를 갖고 더 먼 바다에 나가고 싶고, 소작농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런 것들이다. 원작은 그런 시대의 인물상을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과해지면 폭력적인 언어나 행동, 묘사가 나오게 된다. <파인>은 그런 점에서 잘 묘사한 것이다. <카지노>도 같은 욕망이지만 현 시대의 욕망이 더 과격해지고, 욕망의 크기도 커졌다. 물론 한층 잔인해졌고.“
Q. 그런 인간의 욕망에 관심이 있는지.
▶강윤성 감독: ”그것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재밌었다. 몰랐던 세계를 그렸기에. 내가 궁금하면 관객도 궁금할 것이다. 이야기를 진행하는 기준이 항상 그렇다. 관객들이 궁금해 하고, 여태 잘 몰랐던 세계를 다루고 싶었다. 그리고, 절대 메시지를 던지지 말자는 것이다. <카지노>를 하면서 ‘도박은 위험해요’라거나 <파인>에서 ‘욕망의 끝은 이래요’식으로 가르치지 말자는 것이다.“
Q. 윤일상이 음악을 맡았다.
▶강윤성 감독: ”<카지노>때 한번 호흡을 맞췄었다. 윤 음악감독은 음악적 천재이면서 지금도 매일 악기를 다루고 작곡을 한다. 이번 작품을 위해 기타도 배우더라. 시대극이어서 트로트나 뽕짝을 생각하겠지만 ‘웨스턴’ 음악을 한번 해보자고 그랬다. 미국 남부지방 음악. 기타 치면서 말이다. 기타 사서 연습하고 직접 녹음했다. 그런 노력이 엿보일 것이다.“
Q. 부산에서 온 레슬링 선수조차 이상한 악인이다.
▶강윤성 감독: ”그들을 깡패로 그리지 않은 게 좋았다. 여기엔 건달이 없다. 좀도둑은 있지만 그냥 ‘촌뜨기’들이다. 파워가 제일 센 레슬링 선수들은 그냥 스포츠맨이다. 배에서 그릇의 가격을 듣고는 ‘우리 이제 삥 안 뜯어도 되나요,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 그런다. 운동만 열심히 하려는 순수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운동하려고 수금도 하고, 자갈치시장에서 짐도 날랐던 사람들이다.“
Q. 흥백산업의 천황식 회장(장광)은 곧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지 않는다.
▶강윤성 감독: ”사람의 목숨은 질기다. 덧없이 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 사고가 나더라도 꽤 오래 사는 경우가 많다. 관석(류승룡)도 마지막에 어떻게 되나? 트럭 뒤에 매달렸다가 뛰어내렸을 것이다. 다리 정도는 부러졌을지 몰라도.“
Q. ‘시즌2’에 대한 생각은?
▶강윤성 감독: ”윤태호 작가가 왕릉 도굴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 구체적으로 짠 이야기는 아니고. 경주의 왕릉 이야기가 재밌을 것 같다. 문화재반출 사건과 연결할 수도 있고. 그래서 작품 마지막에 그런 장면을 넣은 것이다.“
Q. 차기작은 무엇인가.
▶강윤성 감독: ”<파인> 끝내고 AI(에이아이)를 활용한 중편영화를 찍었다. <중간계>라고 가을에 개봉될 것이다. 변요한, 김강우, 양세종, 방효린이 나온다. 배우들이랑 촬영했고, 크리처가 등장한다. 에이아이가 합성하는 방식이다. “
”데뷔하기까지가 어려운 시간이 많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극복을 잘하는 것 같다. <범죄도시> 다음에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이 잘 안됐다. 그 뒤에 네 편을 준비했었는데 다 엎어졌다. 그러다 <카지노>가 잘 된 것이다. <파인> 준비할 때는 디즈니가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영화가 엎어질 때마다 다음 날 바로 다음 작품에 매달렸다. 좌절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계속 몇 년을 쉬지 않고 일하는 것 같다. 좀 지치기도 한다.”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