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간의 사랑은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다. 때로는 누구보다도 가깝지만, 때로는 누구보다도 먼 사이인 부녀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험난할 때가 많다.
지난 11월 28일 방영된 KBS '드라마 스페셜-그곳에 두고 온 라일락'(연출 박기현)은 트로트 모창 가수와 그의 딸이 거짓투성이 연극에서 벗어나 진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가까운 가족일수록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상처를 가장 잘 아물게 만드는 것도 가족 간의 사랑임을 보여준다. 부녀간의 절절한 사랑이 바탕이 된 작품을 탄생시킨 박기현 PD를 만나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Q. 작품을 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이번 ‘드라마 스페셜’에 참여한 PD들 중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갓 입봉한 PD들이 멜로나 파격적인 장르를 그려내는 감각을 따라가기에는 자신이 없고 젊은 정서가 어떤 것인지 간접 경험은 했지만 잘 몰랐다. 그러다 ‘그곳에서 온 라일락’ 대본을 보게 됐고 부녀간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것이 좋았다. 결혼을 늦게 해서 딸이 하나 있다. 부녀 관계에 대한 애틋한 생각이 있었는데 때마침 대본에 그런 부분이 표현이 되어있었다. 젊은 PD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Q. 현재 대한민국이 트로트 열풍에 빠져 있다. ‘그곳에 두고 온 라일락’에서 트로트 가수인 라일락의 히트송 ‘쏘리쏘리해’가 등장하기도 한다. 연출할 때 그런 점도 영향을 미쳤나.
트로트는 매력 있는 장르다. 트로트와 가족 이야기, 이 두 주제가 섞여 있는 대본이 마음에 들었다. 대본을 보며 한 가지 고심했던 부분은 가수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이었다. 당대 최고의 히트 가수였고 그걸 따라하는 모창 가수가 있을 정도면 나훈아를 따라하는 ‘너훈아’ 정도 아니겠는가(웃음). 라일락이라는 가수를 실제로 인기 있는 가수처럼 보이게 하려면 노래가 좋아야 했다. 제작비도 많지 않고 제작 기간도 짧아서 쉽지 않았지만 음악 감독님이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 ‘쏘리쏘리해’는 듣자마자 귀에 딱 들어왔다. 뮤직비디오는 정말 후배 조연출PD들의 피와 땀이 깃든 결과물이다. 바쁜 스케줄에도 추가 촬영까지 감행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 후배들한테 정말 감사하고 있다.
Q. 드라마 ‘또 오해영’을 비롯한 전작들에서 아버지 역할을 맛깔나게 연기해오던 이한위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했다. 이한위 배우를 라일락, 라진성 역으로 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인 2역인 라일락과 라진성 역을 소화해야 하는 배우의 경우, 캐스팅 할 때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까지 잘하는 사람을 뽑아야 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 트로트 프로그램을 봤는데 이한위 배우가 나오더라. 평소에도 일을 하고 싶었던 배우였다. 운명적으로 그렇게 만나게 됐다. 여기저기서 찾는 분이라 많이 바쁘신데 이번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했다.
Q. 극중에 등장하는 젊은 배우들 또한 연기가 인상 깊었다. 이러한 진주들을 어떻게 발굴했는지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설정환과 정유민은 드라마 ‘꽃길만 걸어요’라는 전작에서 함께 작업했던 친구들이었다. 오디션을 보다가 때마침 설정환 생각이 나더라. ‘꽃길만 걸어요’에서는 정유민이 설정환을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는데 왠지 이번 작품에서는 두 사람을 커플로 붙여보고 싶었다. 설정환 배우는 코미디 연기도 되고, 눈빛도 좋고,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지고 있다.
홍지윤 배우 같은 경우도 전부터 일을 같이 하고 싶었다. ‘나쁜 녀석들’에서 드러나지 않는 조연으로 나왔는데 매력적이었다. 언젠가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오디션에 참석해줘서 기뻤다. 알고 보니 홍지윤 배우의 친언니가 배우 홍지희였다. ‘꽃길만 걸어요’에도 출연한 배우였고 신기했다. 이런 경우도 그렇고 정말 운이 많은 일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량이 ‘모사재인 성사재천(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나 그것이 이루어지느냐는 하늘에 달려 있다)’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나. 그 말이 요즘 와 닿는다. 하늘이 내린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Q. 엔딩에서 부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나.
해피엔딩보다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꿈을 다시 찾게 되고 딸도 사랑은 잃었지만 새로운 시작을 마주했다. 마치 영화 ‘비긴 어게인’과 비슷하다. 나 또한 두 사람의 미래가 궁금했다. 시청률이 더 잘 나왔으면 4부작 드라마로 확장해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모창 가수가 아닌 오리지널 가수 라진성으로 새롭게 도전해서 가요 프로그램 같은 데 출연을 하는 이야기나 ‘로키’의 서사 같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구 회 말 투 아웃에 터지는 역전 만루 홈런 같은 해피엔딩이 이뤄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작품 자체도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딸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니 그런 것들이 앞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Q. 부녀의 성장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시청한 가족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면?
요즘은 가족 전체가 같은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가 적다. 부모님은 안방에서 TV를 보고 어린 자녀들은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 식이다. 연출자로서 욕심일 수도 있지만, 전 연령대가 봐도 무리가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가족 전체가 모여 같이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을 것 같다.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박기현PD, ‘드라마스페셜 2020-그곳에 두고 온 라일락’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