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 감독
결국 이몽룡은 의사가 되어 춘향이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결론을 알고 <춘향전>을 읽기 시작한다면? ’독자‘가 이 웹소설의 결말을 알고 작품 속에 뛰어든다면? 영화 <더 테러 라이브>로 숨 막히는 테러현장으로 관객을 몰아넣었던 김병우 감독이 싱숑의 웹소설 <전지적 독자시점>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제, 웹소설을 읽은 사람들은 ’김독자‘가 지하철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와 ’유중혁‘이 충무로역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있다. 김병우 감독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개봉을 앞두고 감독을 만나 그 비책을 들어보았다. 영화는 23일 개봉했다.
Q. 오랜만에 감독으로 돌아왔다. 소감부터.
▶김병우 감독: “7년 만에 새 영화로 돌아왔는데 관심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조금 고무된 상태이다. 이 작품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너무 어렵고, 할 게 많을 것 같았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꼭 만들고 싶었다. 완성해서 시사회에서 볼 때 문제를 잘 풀어낸 느낌이 들었다.”
Q. 각색 과정에서의 문제점은 어떤 것이었나. 원작 팬이 많을수록 창작자의 고민을 깊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김병우 감독: “매체의 차이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연재물인 웹소설은 작가가 한 번 쓴 것을 수정할 수 없다. 예전의 신문 연재소설의 경우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의 필력이 는다. 작가의 성장과 스토리의 성장이 동시에 보인다. 영화는 끝없이 고치는 과정을 거친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퇴고를 거듭하고, 찍을 때도, 편집할 때도 계속 들여다보며 수없이 수정을 한다. 소설은 특성상 사건이 계속 나열되며 다음 회를 보게 만든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떻게 만족감을 만들어내는가가 관건이다. 처음에는 헤맸다. 이것도 재밌고, 저것도 재밌고. 이걸 중간에 빼면 말이 될까. 그러다가 어떤 하나의 구심점이 될 키워드를 찾기로 했다. 원작의 빛나는 가치 중 하나가 ’함께 하는 연대‘라는 키워드였다. 문학작품에서는 문장에서뿐만 아니라 행간을 파악하고, 문단 사이에 숨어있는 작가의 의미를 유추한다. 어쩌면 원작자가 기술하지 못한 것까지 추정하고 나름의 상상을 할 수 있다. 연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더 재밌게 만들어 그 키워드가 빛나도록 했다. 작업을 하면서 그런 게 한 덩어리가 되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
Q. 원작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을 위한 접근은 어떤 식인지.
▶김병우 감독: “원작을 보신 분이라면 각자 의견이 있을 것이다. 이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저도 <원피스> 실사드라마 나왔을 때 ’이게 말이 되냐‘ 그랬으니까. ’나만의 독자인데 니들이 뭔데 고치냐?‘는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만큼 원작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할 때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려 텍스트의 문학성을 제대로 전달하려고 했다. 영화는 영상과 사운드가 합쳐진 결과물이다. 그렇게 관객에게 감정과 이야기가 전달되는 것이다.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 실제 공간에서 등장인물이 되어, 자기 목소리로 연기하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관객에게 긴장감을 전달하고자 했다.”
Q. ’김독자‘는 극중 작가에 ’최악이다‘고까지 말한다.
▶김병우 감독: “극중 김독자가 그만큼 그 작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악플을 남기려고 했을 것이다. 이건 영화 후반부에 나오기 때문에 단순한 악플로 해석될 여지는 없다. 개봉 전 시놉시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김독자‘는 10년 넘게 그 소설을 사랑했고, 그런 결말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인물에 대한 감정을 깊게 만들려고 했다. ’멸살법‘(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한 독자의 마음이 인물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된다.”
Q. 원작과 관련해서는 원작 팬들이 좋아하는 ’배후성‘이라는 개념, ’이순신‘ 성좌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쉽다는 것이다. 그게 전독시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김병우 감독: “방대한 원작을 2시간에 담는 작업이었다. 이 작품은 원작의 아주 초반부만 다루고 있다. 원작을 보지 않은 분들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교통정리가 필요했다. 배후성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전에 언급해야할 게 많다. 그걸 순차적으로 보여야한다. 가장 친절하게, 부드럽게, 알아야할 지점을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지 고민했다. 배후성 문제나 일부 인물이 제외된 것은 실제 원작에서도 아직 크게 부가되지 않는 지점까지 담긴 것이다. 이야기가 충분히 펼쳐진 이후에는 그것이 부각될 것이다. 그걸 미리 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정보 범람이 될 수도 있으니. 이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그 다음 상황을 말씀 드릴 수 있을 것이다.”
Q. 원작에서는 이지혜(지수) 캐릭터의 도구는 칼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총으로 바뀐다.
▶김병우 감독: “무기는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전투장면을 시각적으로 펼칠 때 원작에서는 칼이라는 무기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액션 장면에서 비슷한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무기만으로 캐릭터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게 변수를 준 것이다.”
Q. <오징어게임> 때문에 ’게임‘이라는 요소의 장점이 퇴색한 면이 있다.
▶김병우 감독: “나도 <오징어 게임>을 재밌게 보았다. 그 작품이 처음 나왔을 때에도 기시감이 있었다. <배틀 로얄> 장르물 같이. 따지고 보면 이런 장르는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오징어게임>은 그것을 십분 잘 활용한 것이다. 원작에서도 그런 장르를 사용하는 시퀀스가 있었다. 어느 게 먼저 나왔는지 따지는 것은 조금 무의미하다. 대중들은 노출된 순서로 보실 테니. 이 영화가 가지는 온전한 재미를 받아들이길 기대한다.”
Q. 안효섭이 연기한 ’독자‘ 캐릭터가 너무 밋밋하지 않은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초반부에 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해 회사 출입구 문을 계속 잡아주는 모습이다. 이렇게 착한 사람이 계속 매력적일 수가 있을까.
▶김병우 감독: “그 인물이 착하다기 보다는 어디서라도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독자‘를 생각했다. 안효섭 배우와 처음 나눈 이야기도 ’보편성‘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이 영화가 더 의미가 있다. 독자를 포함해서 같이 여정을 떠나는 5명은 서로를 몰랐던 사이이다. 유상아(채수빈)도 그랬을 것이다. 같은 회사에 다녔지만 아마 서로 전화번호도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만나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렇게 해야만 빛나지 않을까.”
김병우 감독
Q. 안효섭 이라는 배우에게 평범함을 기대한다?
▶김병우 감독: “보편성이란 것을 잘 표현할 사람이 누구일까. 그 배우의 출연작을 면밀히 보았다.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외적으로 수려한 배우인데 평범함을 잘 표현하더라. 특별함을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 캐스팅이 중요했다. 현장에서 너무너무 잘 해주셨다. 안효섭 배우는 액션 장면에서 대역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아주 작게 나오는 장면에서도. 감독 입장에서 ’배우가 하면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요?‘ 했더니 바로 와이어를 매고 열심히 잘 하시더라. 너무 좋았다.” (그래도 평범성보다는 특별함이 도드라진다) “우리가 기대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가져야할 보편성이란 게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이 주인공이니까 따라가면 되구나 하는 느낌을 즉각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앞으로 풀어야할 사건이 산더미같이 있으니 초반에 잘 잡아야한다. 그게 문을 잡아주는 그 모습 하나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Q. 원작에서 표현된 김독자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김병우 감독: “시나리오 초고에는 있었다. 영화의 흐름에 따라 캐릭터들이 가진 사연이 각각의 사건의 구심점으로 작동해야한다. ’연대‘라는 키워드와 크게 관련이 없는 장면은 압축시켜 밀도를 높여야했다. 다이어트와 배제를 시킨 것인다. 시나리오 초고에는 인물에 대한 표현이 많았다.”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
Q. 유중혁(이민호)은 3회차 회귀를 한다. 처음 그 세계관에 뛰어든 독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해석해 달라.
▶김병우 감독: “극중에서 독자에게 하는 유중혁의 대사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호 배우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판타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인물로 집중했다고 말한다. 그건 맞다. 배우는 캐릭터에 몰입하면 된다. 장르를 만드는 것은 감독인 제가 해야 하는 일이다. 유중혁은 수없이 회귀를 한 사람으로 이 세계관의 최강자인 셈이다. 그런 유중혁이 사회초년생인 독자를 마주했을 때 어떤 식으로 말을 할까.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유중혁이 출연하는 분량이 적으니. 그래서 그가 등장할 때마다 확실히 이야기의 구심점을 잡고, 중량감을 만들어 놓아야했다. 이야기의 중심을 ’김독자‘에게서 뺏어 와서 유중혁에게 몰아주어야하겠다고 생각했다.”
Q. 이지혜 캐릭터를 연기한 지수에 대해.
▶김병우 감독: “이지혜의 등장 시점은 영화 시작하고 절반 지나서이다. 시나리오에서 그 타이밍에 새 인물이 나오면 안 된다. 이야기를 최대한 끌어올리고 정리해 나가야하는 시점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등장과 동시에 관객이 즉각적으로 그 인물을 인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지혜 캐릭터는 분량이 적지만 관객이 충분히 인지할 정도였다면 성공한 셈이다.”
Q. 방대한 원작을 영화로 만들었다. 시리즈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김병우 감독: “애초에 시리즈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시나리오 작업하면서 온간 어려움, 난관들을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이런 판타지를 가장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은 극장이라고 생각한다. 극장에서 보는 것이 제가 제일 잘 하는 것이기도 하다.”
Q. 도깨비 캐릭터에 대해.
▶김병우 감독: “도깨비 캐릭터를 구현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제일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도깨비는 상충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초반에 등장할 때는 미스터리한 존재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가 독자의 비밀친구가 되고, 후반에는 깨발랄한 모습도 보인다. 이런 상충된 이미지를 하나로 만족시키기가 어려웠다. 나머지 괴수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한 방향이라서 만들어내기가 쉽다. 도깨비는 사람과 소통하는 캐릭터이기에 감정까지 표출해야 한다. 완성된 것에 만족한다.”
Q. 차기작인 넷플릭스 <대홍수>도 재난상황에 내몰린 인물이 나온다. 이런 상황극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는지.
▶김병우 감독: “글쎄. 특별히 재난장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시작은 항상 평범한 것 같다. 세트에서 찍은 영화를 많이 했다. 처음에는 세트가 차분하게, 잘 지어져 있지만 끝날 때가 되면 다 망가뜨리고, 부숴놓는다. 연유는 모르겠다. 무언가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창밖에 보이는 특수한 상황이 나에게 다가온다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전지적 독자 시점' 언론시사회
이민호, 안효섭, 채수빈, 신승호, 나나, 지수, 권은성 등이 출연하는 김병우 감독의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지난 23일 개봉되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