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른 감독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는 시네필의 시선을 사로잡는 놀라운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었다. [코리안판타스틱:단편2]에 묶여 공개된 조바른 감독의 14분짜리 단편 <층>도 그런 작품이다. 커플이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는 아파트. 위층에서 알 수 없는 소음이 시작된다. 아내에게 등 떠밀려 올라간 남편. 문을 열고 나온 남자가 험상궂은 표정을 짓자 그냥 발걸음을 돌린다. 하지만 위층으로부터의 소음은 심해지고, 참았던 남편은 결국 분노가 폭발, 복수의 활극이 시작된다. 마치 ‘킬 빌’의 전사처럼. 층간소음을 진원지였던 그 좁은 방은 이제 처참한 살육의 현장이 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조바른 감독은 ‘층간소음’의 판타스틱한 최종해결법을 보여준다. 조바른 감독을 만나 이런 황당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물어보았다. 부천시청 3층에 마련된 프레스룸 인터뷰공간에 조바른 감독과 두 배우(박태산,이종은), 그리고 프로듀서(허영진)가 함께 등장했다.
Q. 영화 시작 전에 “그는 강한 사람이다”이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그런 명제를 던져놓고 시작한 이유는?
▶조바른 감독: “전혀 강하지 않은 남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중간부터 액션을 갑자기 잘한다. 단편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냥 그런 명제로 시작하면, 장르 특성상 어울릴 것 같았다. 그 남자에게는 양면성이 있다. 아내의 등쌀에 떠밀려 나선다. 그러면서 일을 해결한다. 나약한 남성상이자, 내면에서는 들끓는 왜곡된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
Q. 단편이라 설명을 좀 해 달라. ‘40명을 죽인 여자’가 복도에 잡혀 있던 그 여자인가? 무슨 사연이 있는가.
▶조바른 감독: “단편이지만 내가 생각한 바는 그 여자는 유명한 킬러이다. 조직의 보스를 살해한 사이코 킬러이다. 조직원들이 복수를 위해 어렵게 붙잡아 고문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층간소음이 생겼던 것이다. 아마 약을 먹였을 테고. 시간이 흘러 정신이 돌아온 그 여자가 이제 다시 복수에 나선다.”
영화 '층' 스틸
Q. 갑자기 뜬금없이 TV에서 흑백영화가 나온다.
▶조바른 감독: “그 장면에 이어 얼굴을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병으로 내려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무조건 연결되어야한다. AI로 그 장면을 구현하면 너무 가짜일 것 같아서, 저작권이 풀린 옛날 영화를 찾은 것이다. 그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 난다.” (그 때 TV속 대사가 ‘엄마..’운운한다) “결국 아내나 엄마가 상징하는 바가 있다.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다.”
Q. 내레이션을 영어로 하다가, 뒤에는 또 뜬금없이 일본어 대사가 나온다. 무슨 악취미인가.
▶조바른 감독: “아, 한국과 영국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영국은 대표적인 다국적 다문화의 나라이다. 나도 어릴 때부터 ‘트랜스내셔널’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이번 단편을 찍을 때부터 자연스레 그런 관계성이 떠올랐다.”
Q. 이번 BIFAN에서 GV를 진행했다. 관객들이 질문은 어떤 것이었나.
▶조바른 감독: “딱히 어려운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질문도 어렵지 않았다.” (그럼,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이렇게 어렵지 않은 영화를 만든 것인가?) “결국은 뫼비우스의 띠를 생각했다.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타인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위에서 소리가 들리는데, 해결하려고 보니, 내가 아래층으로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뫼비우스 띠 모양 같았다. TV장면에서 킬러를 소개할 때 층간소음과 관련된 뉴스를 보여줄까 생각하다가 포기했다. 이 상황을 액션으로 풍자하면 어떨까. 마치 폭력의 뫼비우스처럼. 절대적 선은 없는 것처럼.”
Q. 영국에서는 층간 소음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는 아닌가?
▶조바른 감독: “영국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못 들어보았다. 한국에서 층간소음 문제가 많은 것은 아마도 건설할 때의 문제인 것 같다. 싸게 만들다보니 특유의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닐까. 요즘 층간소음 문제를 다룬 대중작품이 쏟아지는 것 같다.”
Q. 이종은 배우는 어떻게 이 작품에 캐스팅 된 것인가. 액션 연기가 어렵지 않았는지.
▶이종은: “제작자와 알던 사이였는데 이 작품을 추천해 주었다. 작품에서 마지막에 총을 쏘는 장면이 있는데 침대 위에 서서 기관총을 쏘아야했다. 바닥이 안정적이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는 군필자가 많잖은가. 많이 알려주시더라.”
Q. 연기가 처음인가? 원래 연기자를 꿈꿨는지.
▶이종은: “단편, 독립영화는 몇 작품 출연했는데 상영이 제대로 된 게 없다. 본업은 의사이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꿈꿨었다. 연기를 하면서 위로를 받는 게 있다.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었고, 연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종은 배우는 작년 티빙의 <환승연애3>에 출연했었다)
Q. 박태산 배우는 ‘남편’ 역으로 화려한 액션을 펼친다. 이 영화의 액션감독이기도 하다. 액션은 어떻게 배우게 되었는지. 충무로의 유명한 액션스쿨 출신인가?
▶박태산: “중국 소림사에서 3년 정도 살았다. 무술을 배우고 싶어서. 중국 허난성의 그 소림사말이다. 어릴 때 액션에 제일 영감을 받은 것은 단연 성룡이다. <마담 오케이>에 출연하면서 <킬 빌>을 봤는데, 그게 제 스타일임을 직감했다. 재키 찬에 타란티노 스타일의 액션이다. 조바른 감독이 추구하는 액션의 방향이 비슷한 것 같다. 제안을 주셔서 참여하게 되었다.”
▶조바른 감독: “박태산 배우는 독립영화계에서는 유명하다. 액션 잘하는 여배우는 안지혜이고, 남자배우는 박태산이다.” (둘 다 조바른 감독의 전작 <검풍아 불어라>에 나온다)
영화 '층' 현장 스틸
Q. <검풍아 불어라>를 찍고 나서 충무로 주류영화를 찍을 줄 알았는데, 단편을 만들었다.
▶조바른 감독: “영국에서 장편을 준비하다가 무산되었다. 그래서 단편을 하나 찍었다. 그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 1등 상을 받은 것이다. 런던 티켓을 취소하고 한국에 있게 되었다. 급하게 만든 게 <검풍아 불어라>였다. 그리고 독립영화 쪽에 쭉 있게 되었다. 찍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엎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뭐라도 찍고 싶었다. 솔직히 상업액션영화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 내가 더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오기가 있었다.”
Q. 2017년 BIFAN에서 상 받은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나.
▶조바른 감독: “<진동>이란 가슴 따뜻한 코미디이다. 아내를 떠나보낸 할아버지가 아내의 방 청소를 하다가 자위기구를 발견하고는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화가 나서 집어던지는 그것이랑 필사의 사투를 벌인다.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서 할아버지를 쓰다듬어준다. 몽골 배우가 출연하는 영국영화이다. 지금 왓챠에서 볼 수 있다.”
Q. 박태산 배우의 경우는 어떤가. <오징어게임>(시즌3)에도 출연했으니 글로벌 배우이다.
▶박태산: “무술감독을 12년간 했다. 최근에 <히트맨2>에 나왔었고. 올 하반기에 내가 출연한 <보스>란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다. 처음 연기를 시작한 게 액션영화였다. 그런데 이게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삶인가 의문이 들었다. 작년에 할리우드에 두 달 정도 갔었다. 조바른 감독과 <층>을 찍으면서 내가 진짜 잘 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보았다. 액션을 잘 할 수 있고, 액션 디자인을 남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있다. 배우로서 어떻게 액션연기를 펼칠지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처럼 저도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다. <오징어게임>은 오디션을 통해 출연했었다. 그때 100킬로까지 증량해서 친구들도 못 알아볼 정도였다.”
** 박태산 배우는 <오징어게임>시즌3에서 ‘202번 남’으로 출연했다. 출산한 준희(조유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의 활약을 펼치는 현주(박성훈)의 칼에 죽는다. **
Q. 극중에서 박태산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는 파워가 넘쳐난다.
▶조바른 감독: “<베이비 드라이버> 보고 생각한 것이다. 음악을 들을 때 도파민이 돈다는 설정이다. 음악이 너무너무 중요하다. 생뚱맞은 느낌보다는 액션의 스타트를 끊어주는 기능을 한다. 조성진이 작곡하고 연주하고 노래한다. 오랫동안 같이 작업한 음악감독이다. 피아니스트와 동명이인이다.”
BIFAN GV현장 (조바른 감독 - 박태산 - 이종은)
Q. 감독이 생각한 액션 연출의 방향이 있다면?
▶조바른 감독: “기존의 한국 상업영화를 보면 컷이 많다. 컷이 많아지는 순간 가짜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찍지 않으려면 배우들이 연기를 잘해야 한다. 최소한의 컷으로, 액션의 움직임을 담아보려고 했다. 다행히 <층>에서는 관객들이 빨려 들어가는 액션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액션은 멋있게 보여야한다. 액션을 찍는 방식이 대화 방식과 비슷하다. 팔 다리의 움직임을 본다. 액션 신 찍을 때 촬영감독과 함께 모니터에 비치는 배우들 얼굴을 많이 봤다. 마치 대화 장면을 찍듯이 액션을 연출했다.”
Q. 액션 연기 준비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조바른 감독: “박태산 배우의 ‘독션’이라는 액션팀이 있다. 액션을 잘하는 배우들이다. 매일 10시간 씩. 합숙하면서. 촬영이 이뤄지는 공간을 그대로 체육관에 선을 그어두고 그 공간 내에서 액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연습했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연습해서 NG가 별로 없었다. 복도 장면은 남산의 아파트이고, 실내 장면은 인천의 폐 펜션을 빌려 청소하고 찍었다. 촬영은 3일 만에 끝났다. 후반작업은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Q. ‘독션’이 무엇인가? (조바른 감독, ‘독한 액션’ 아니었나?)
▶프로듀서: “아니다. ‘독보적 액션, 독창적 액션’이다. 12년 전부터 액션을 위해 만든 단체이다.”
** '독션'은 무술감독 박태산(본명 허욱진)과 프로듀서 허영진 형제가 만든 액션전문 교육아카데미이다. **
Q. 액션연기를 할 때 부상의 위험성에 대해.
▶박태산: “인생의 반을 액션연기를 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많이 배웠다. 하다 보니 어떤 장면에서는 ‘저건 다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 리허설 때 상대를 코를 때렸다. 그 친구 코뼈에 금이 갔다. 감독님은 이걸 캐릭터로 승화하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손흥민 마스크가 떠올린 것이다. 액션영화를 찍을 때 절대 안전한 것은 없다. 그래서 더욱 안전하게 찍어야한다. 관객들은 냉정하게 실제 액션처럼 펼쳐지는 것을 원하다보니 배우들의 안전에 더 유의하며 그 방법을 찾아야한다.”
Q. 벽에 걸린 그림은?
▶조바른 감독: “소품팀에서 준비한 그림 중에 하나를 고른 것이다. 원래는 뭉크의 <절규>를 걸어두고 싶었는데. 그것에 가까운 그림이다.”
Q. 향후 계획은?
▶박태산: “내년에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조바른 감독: “태국영화 [괜찮아요? 프리랜서](2015)의 한국 리메이크판 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원작을 너무 재밌게 봤다. 그리고, 각본을 쓴 10부작 SF도 준비 중이다. 인공지능 고객만족팀 이야기이다. 글로벌OTT도 도전할 것이다.”
▶이종은: “드라마를 한 편 찍었는데 하반기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 계속 오디션 보고 있다. 앞으로 계속 연기를 하고 싶다.”
조바른 감독의 팔에는 ‘Remember the Past’ 타투가 있다. “<불어라 검풍아>를 찍고 나서 후회되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 ‘과거를 잊지 말자’고 새긴 것이다.”고 밝혔다.
한국관객이 <층>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미장센단편영화제에 출품했다. 이건 미장센 스타일이다. 좋아하지 않을까요?” 조바른 감독의 도전은 계속된다.
[사진= <층> 조바른 감독, 프로듀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