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지 감독
이번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는 다채로운 소재와 다양한 장르로 무장한 200여 편의 장/단편 영화들이 영화팬을 손짓해서 불러 모았다. [엑스라지2]에 묶여 소개된 단편영화 [위빙]은 오직 복싱만을 생각하는 ‘여자1’이 스치듯 지나가는 ‘여자2’의 살가움에 잠깐 정신 줄을 놓았다가, 링 위에서 참담한 승부를 거친 뒤 각성하는 이야기이다. 복싱 이야기이며, 사랑 이야기이며, 성장담인 셈이다. <위빙>을 연출한 최민지 감독을 만나 영화이야기와 영화감독의 꿈에 대해 들어보았다.
Q. 먼저,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린다.
▶최민지 감독: “대학을 나와서 작년 한예종 석사과정(전문사)에 들어가 영화를 배우고 있다. 초급 워크샵 때는 휴대폰으로 찍었다. 원작을 하나 골라 카피 수준으로 배우는 것이다. 복싱 이야기를 찍고 싶었다. 그래서 <분노의 주먹>(마틴 스코세이지 감독,1980)을 찍었다. 찍으면서 무술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감독으로서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이번 중급작품 워크샵 할 때는 무술감독을 섭외했다. 지도교수님 소개로 김태엽 관장님을 모실 수 있었다. 복서 출신이며, 무술감독으로 활동 중이시다. 단편은 원래 안하시는 분이신데 시나리오 보고 흔쾌히 함께 해 주셨다. 체육관에 가서 배우들 동선 체크하고, 촬영감독이 앵글 맞춰보고, 배우들이 관장님 지도하에 1주일 간 훈련을 했다.”
영화 '위빙' 스틸
Q. 배우들은 복싱을 처음 접하는 것이었나?
▶최민지 감독: “주인공 수현을 연기한 석희 배우는 1년 정도 복싱을 했다. 그런데 링 위에 올라가 스파링한 경험은 없었다. 누굴 때려본 적이 없었다. 민경을 연기한 박정인 배우는 아예 복싱 경험이 없었다. 기본기가 없어서 내가 다니는 복싱장에 데려가서 기본기를 하루 가르쳤고, 무술감독님으로부터 1주일 간 호된 훈련을 받았다.” (민경 역은 그렇게 복싱 잘 하는 캐릭터가 아니잖은가? 어설프게 나와도 될 것 같은데?) “극중에서 완전 초짜이지만 프로를 준비 중인 수현에게 딱 한 번 훅을 제대로 날리는 장면이 있다. 관객들을 설득시키려고 훈련을 시켰다. 수현이 경기하는 상대 선수는 장혜수라고 제가 다니는 체육관에서 타이틀을 준비하던 사람이었다. 이 영화 찍고 얼마 뒤 한국여성라이트플라이급 챔피언이 되었다.”
Q. 감독님도 복싱을 하셨는지.
▶최민지 감독: “고3때 처음 복싱을 접했다. 원래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수영, 농구, 달리기 등. 고3때 학교에서 복싱을 하고는 그 매력에 빠졌다. 원래 여자 농구동아리를 오래 했고 스스로 농구에 미쳤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복싱에 더 미친 것이다. 대학가서 실전무술동아리도 했었고. 저도 한 달 뒤 프로데뷔전 치를 예정이다.” (오해할 것 같은데, 외모로 보면 전혀 농구할 사람, 복싱할 사람으로 안 보인다. 농구를 어떻게?) “저는 몸싸움 하는 스타일이다. 강백호 스타일로 수비하고, 부족한 키는 점프력으로 커버한다.”
Q. 영화감독의 꿈은 어떻게 영글었는가.
▶최민지 감독: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한 것 같다. 하지만 시네필을 절대 아니었다. 영미소설 읽는 것을 더 좋아했다. 글쓰기 좋아했고. 대학 1학년 때 교양 영화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푹 빠진 것 같다. 아시아영화들, 중국, 대만, 홍콩, 일본 영화를 보고 분석하는 것이었다. 영화를 찾아보게 된 계기는 고민이 있을 때, 안 풀리는 것이 있으면 영화에 나오는 그런 캐릭터를 찾게 되더라. 영화 속 캐릭터가 고민하는 것을 보고는, 그 캐릭터를 온전히 느끼고 위로를 받았다. 영화는 창작의 영역이니 실제 내가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영화 창작의 주변부를 돌며 대리만족을 하였다. 학교 다닐 때 디자인을 부전공했기에, 졸업하고 신문사 영상제작 인턴을 했다. 그런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영화학교갈 준비를 하면서 KAFA든 한예종이든 학생들이 영화 찍는 것 있으면 무작정 스태프로 지원해서 배웠다. 제가 따로 영화제작 경험이 없다보니 그렇게 영화를 배운 것이다. 그들에게 물어보면서. 그렇게 배회하다가, 한예종에 들어간 것이다.”
영화 '위빙' 스틸
Q. 그럼, <위빙>은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지.
▶최민지 감독: “처음부터 복싱 이야기였다. 제가 복싱에 처음 나갔을 때의 경험이다. 경기장은 어두컴컴하다. 천정에서만 빛이 내리 쬔다. 한 대 맞으면 고개가 이렇게 순간 들린다. 빛이 번쩍 보이는 그 순간을 경험하면서 뭔가 영화로 엮을 수 있지 않을까. 처음 경기에 나갔을 때 인천이었다. 시합전날 저렴한 숙소에 하루 자는데, 옆방에선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다음 날 긴장되고, 호흡도 제대로 못하겠더라. 나보고 계속 ‘호흡 해’, ‘호흡 해’ 그러고. 그런 과정이 절묘하게 애정행각과 합쳐진다면? 발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걸 글로 썼던 것이다.”
Q. 그게 복싱이랑 어떻게 연결되나.
▶최민지 감독: “왜 굳이 아프고, 피나는 그런 힘든 복싱을 하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이성적인 논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기 때문이다. 근데 그건 사랑도 마찬가지지 않나. 프로 복싱 데뷔전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복싱은 정말 외롭고, 처절하고, 뜨거운 운동이라는 것이다. 링 위에 올라간 순간,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서 싸워줄 수 없고, 상대와 1대1로 겨뤄야 한다. 상대 눈을 응시하고, 상대 손짓, 발짓을 기민하게 보고, 상대와 시합 내내 폭발적인 타격을 주고받고, 서로 둘러붙어 안기도 하고, 밀치기도 한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계속 반복한다. 답답할 때도 많고, 아프고, 왜 이걸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근데 매일 그렇게 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과정이 어쩌면 사랑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지 않나 싶다.”
영화 '위빙' 스틸
Q. 그럼, 이 이야기는 성장담인가.
▶최민지 감독: “난, 복싱의 껍질을 쓴 사랑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수현은 아마 처음 사랑을 해봤을 것이다. 수현이는 자기의 정체성을 숨겼을 것이고. 복싱장에 가보면 그곳은 남자의 공간이다. 수현은 그 공간에 소속되거나 잘 섞이질 못했다. 민경이 따라 술집에 갔을 때도 섞이지 못했다. 복싱 경기를 하며 얻어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
Q. 제목 ‘위빙’에 대해
▶최민지 감독: “수현의 흔들리는 마음, 불확실한 상황을 그가 연습하는 ‘위빙’ 기술로 표현하고 싶었다. 위빙은 상대 주먹을 피하는 수비 기술이지만, 그와 동시에 반격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수현이는 처음 해보는 사랑, 처음 준비하는 복싱 시합에서 흔들리는 순간들이 많다. 크게 한 방 먹기도 하고(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처도 받지만, 결국 꿋꿋이 나아간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수현이 민경이에게 끌려가는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고백하고, 복싱 시합에서도 계속 수세에 몰리다가 중요한 순간에는 공격적으로 과감히 상대 선수에게 파고들며 자기 공격을 펼친다. 자기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Q. 그래서 그 경기에서 수현이 이겼나요?
▶최민지 감독: “그건 관객의 평가, 상상에 맡기고 싶다. 영화 마지막에 수현은 혼자 열심히 복싱을 연습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다음 시합에서는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Q. 민경이란 캐릭터에 대해. 복싱을 배우러 체육관에 온 것 같지는 않다. 목적이 불순해 보인다.
▶최민지 감독: “시나리오를 단편 길이에 맞게 수정하다 보니, 민경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이 많이 깎여 나갔다. 촬영 들어가서까지도 민경이가 너무 평면적인 인물로 보일 것 같아서 어떻게 보완할지 고민하다가, 수현과 민경이 레즈바에서 나누는 대화 씬이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았다. 민경이가 자기 꿈을 수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부분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쓴 대사다. 현장에서 연출부 스탭이랑 정인 배우님이랑 모여서 이야기 나누다가, 조연출님이 카마리 해변이라는 이름을 던져주었고, 정인 배우님이 실제로 좋아하시는 기로스 음식이라는 디테일을 넣게 되었다. ”
Q. 학생 작품이고, 독립영화이고, 단편영화이지만 술집 장면이나 경기장 장면은 나름 사람이 많이 나온다.
▶최민지 감독: “여름방학 때 찍은 것인데 인력이 필요하면 품앗이 하면 된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도 있고. 시합장의 관중은 지인들, 동기들, 동기의 지인들, 관장님 관원 등 할 수 있는 한 다 동원했다. 감사하게도 중학생 열 명은 끝까지 있어주었고 열심히 호응도 해 주었다.”
Q. 크레디트를 보니 제작지원이 ‘동원육영재단’이라고 나온다.
▶최민지 감독: “작품 준비하면서 제작지원이라는 지원에는 다 응모해봤지만 모두 탈락했었다. 촬영 끝나고 나서 그걸 보았다. 촬영 끝난 작품도, 아직 외부 공개 되지 않은 작품이면 지원 가능한 것이었다. 덕분에 어느 정도 제작비 커버가 가능했다.” (요즘 외부 제작지원은 어떤가?) “갈수록 줄어가는 상황이다. 제작지원을 하는 기관은 많은데, 많이 축소되는 것 같다. 반기별로 하는 걸 연간으로 한다든지.”
Q. 개인적으로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최민지 감독: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 감정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영화. <패왕별희> 같은 작품. 그 시대와 서사가 절절하게 다가왔다. 예술성으로 다 버물린 감독이 대단하다.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최민지 감독
Q. 좋아하는 복싱 영화는?
▶최민지 감독: “‘분노의 주먹’, ‘밀리언 달러 베이비’ 그리고 최근 일본영화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미야케 쇼 감독)”
Q. 요즘 읽은 책은?
▶최민지 감독: “영화학교 들어오면서 책은 덜 읽고, 영화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언니가 소개해 준 책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김홍중)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를 최근 읽었다. 두 책 다 소설은 아니다. 인류학자와 사회학자가 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도 영화랑 비슷한 것 같다. 절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윤이형 작가의 <붕대감기>가 그렇다. 그 책에는 다양한 여성들의 서사가 나온다. 연대와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위빙>에서는 그런 걸 활용하지 못했다. 관계성에 마음이 간다.”
“꾸준히 창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움직임’에 끌린다. 오랫동안 운동하는 걸 좋아했고, 어릴 때 부모님 따라 자주 이사하며 자랐기에 그런 모양이다. 환경이 달라지면 움직임에 관심이 생긴다. 운동, 춤, 자동차를 타는 행위 등. 그런 움직임에 캐릭터가 영향을 받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이 크다.”
BIFAN에서 처음 소개된 최민지 감독의 <위빙>은 아마 하반기 서울여성국제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1월 프라이드영화제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진=최민지 감독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