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전에 사람 아니냐? 부모 되려고 사람 아니어도 되는 거냐?"
부모 노릇, 자식 노릇, 가족 구성원에게 부여된 역할 중 이토록 슬픈 역할이 있을까. 마치 견뎌야 마땅한 중력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우리는 이 잔인한 무게를 어떤 방식으로 짊어져야 할까.
KBS '드라마 스페셜 2020-나들이'(연출 유관모)는 치매걸린 금영란 할머니(손숙 분)가 과일 트럭 장사꾼인 방순철(정웅인 분)과 세대를 뛰어 넘은 친구가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금영란은 평소 자신의 동네에서 과일 장사를 하는 방순철에게 잔소리를 일삼는 인물이다. 그렇게 평소와 같이 방순철에게 쓴 소리를 건네던 그는 병원에 간 후 뜻밖의 치매 판정을 받게 된다. 충격에 빠진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치매에 걸렸던 어머니로 인해 고통 받았던 그는 자신도 그렇게 변할까 봐 두려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금영란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방순철의 포도상자 박스에 적혀있는 원산지인 원주라는 이름을 보게 되고, 자신을 원주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둘은 원주로 나들이를 떠나게 된다. 그 뒤로도 둘의 인연은 이어지게 된다. 장사의 달인으로 신문 기사에도 난 금영란은 방순철이 과일을 가지러 갈 때마다 따라가며 흥정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나들이'는 부모가 된 두 자식의 교차하는 시점을 통해 '부모라는 존재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금영란은 말 끝마다 자식 자랑이 끊이지 않지만 현실은 자식에게 전화 한 통 먼저 받지 못하는 어머니다. 하물며 오랜만에 찾아온 자식은 금영란에게 자신에게 줄 돈을 왜 형에게 줬냐며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결국 금영란은 "나 네 엄마야. 네 지갑 아니야"라며 울분을 토해낸다.
방순철의 사연 또한 애잔하다. 그는 오랜 기간 출판사 사업에 몰두하다 사업이 망한 이후 이혼했다. 여전히 가족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진 그는 딸과 아내에게 몰래 찾아가 과일을 갖다 놓지만 그들은 외면하기만 한다.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와 "돈 주세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 노릇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딸에게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금영란에게 찾아가 돈을 빌리려 하지만 금세 자기 자신의 모습에 자책감을 느끼고 자리를 떠난다.
'나들이'를 통해 비친 둘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극중 어머니의 산소에 찾아가 우는 금영란, 그리고 효자 노릇 못하고 부모를 먼저 보냈다고 덤덤하게 말하는 방순철의 모습은 때로는 부모로, 때로는 자식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들의 애잔한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두 입장에 동시에 이입하게 만들며 부모라서 마땅히 해줘야 할 것이라 여기던 어린 날의 투정 또한 회상하게 만든다.
"뭐 못해주면 부모 못하는 거냐?"
극중 대사에서도 나왔듯, 부모는 자신의 살을 찢고 나온 이들에게 오장육부까지 떼어줄 수 있는 존재다. 돈이 없어 부모 노릇을 못한다고 여겨 우는 방순철의 모습, 그리고 자식이 달라는데 어떻게 배기냐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금영란의 모습은 우리가 부모에게 느끼는 당연한 지점들, 마땅히 해야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이기적인 부탁이었는지를 깨닫게 만든다.
그러니 '나들이'를 통해 그런 자신의 모습을 과거 한 켠에서 조금이라도 되돌아봤다면 지금 당장 부모님에게 따뜻한 전화 한 통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나들이'라는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려는, 늦지 않은 교훈일 것이다. (KBS미디어 정지은)
[사진= KBS '드라마 스페셜 2020-나들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