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손오공] 스틸 (1968)
영화는 [모나리자]처럼 한번 만들어져서 영원히 벽에 걸려있는 장식품이 아니다. 세월이 지나며 퇴색되고, 오염된 필름은 디지털복원 과정을 거쳐 화려하게 부활하여 다시 한 번 관객에게 다가온다. 지난 주 막을 올린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기간에 오래된 필름을 디지털로 복원시키는 마법의 과정이 공개되었다.
지난 4일 오후, 부천시청 1층 로비에 위치한 소극장 판타스틱큐브에서는 [2025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복원 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1941년 만들어진 중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철선공주](鐵扇公主)와 1968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장편 애니메이션 [손오공]의 복원 과정을 소개하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두 작품 모두 중국 사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인 [서유기] 속 이야기를 극화한 공통점이 있다. 포럼에서는 아시아 애니메이션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두 편을 중심으로 디지털 복원 과정을 소개하고 이들 작품이 지닌 역사적, 기술적, 예술적 가치를 다각도로 조명한다.
2025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복원 포럼
한태식 중앙애니매이션 대표가 맡은 첫 번째 발제는 한국 애니메이션 <손오공>과 박영일 감독에 대한 탐구 시간이었다. <손오공>은 1967년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 감독)의 성공 이후, 세기상사가 신동헌 감독과 결별한 후 새로운 연출가로 박영일 감독을 선택해 제작한 네 번째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박영일 감독은 세기상사를 통해 60분 이상 분량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6개월 이내에 완성시키는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이 발제를 통해 박영일 감독의 생애와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 성과 등을 소개했고, 박 감독이 어떤 방식으로 당시의 기술적 제약을 돌파했는지, 그가 추구한 애니메이션 언어는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봤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한국영상자료원의 조해원 디지털복원팀장은 <손오공>의 필름 복원 과정을 중심으로 디지털 복원 및 아날로그 보존의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했다. 1968년 개봉 당시 67분 분량이었던 <손오공>은 필름 일부가 유실돼 51분 분량으로 복원됐다. 이 자리에서 4K 스캔을 비롯한 복원의 과정이 소개되었다. 이번 작업은 단순한 영상 복원을 넘어 필름 매체 고유의 질감과 시대적 분위기를 후대에 온전히 전달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복원된 <손오공>은 한국 애니메이션사의 귀중한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다.
2025 애니메이션 필름 디지털복원 포럼
세 번째 발제는 리타오 중국전영자료관에서 디지털자료관리부에서 근무한 중국 국가 1급 감독 리타오의 <철선공주>의 복원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중국의 완(萬)씨 형제(萬籟鳴/萬古蟾)가 감독한 <철선공주>는 불경을 얻기 위해 서역기행을 떠난 삼장법사 일행이 불길이 거센 화염산을 마주치게 되고, 칠선녀의 파초선으로 돌파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타오 감독은 <철선공주>의 영화사적 의미를 소개한 뒤, 필름 복원의 과제와 융복합 협업 문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1941년 만들어진 <철선공주>은 중국 경극의 요소와 전통회화기법인 수묵산수화 기법이 이용된 것과 함께 당시 중국에도 알려진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키마우스’와 카툰 캐릭터 ‘베티 부프’(Betty Boop)로 차용되었다고 소개했다. <철선공주>는 4K 디지털 복원 및 5.1 채널 서라운드 제작 등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복원 과정을 비롯해 중국 내외 복원 전문 기관과 협업한 성공적 사례로 기록된다.
이번 포럼은 단순한 기술적 성과의 공유를 넘어 ‘복원’을 통해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시대와 기술, 문화적 맥락을 넘나들며 살아 움직일 수 있는지를 성찰하는 자리가 되었다.
한편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13일까지 부천시 일대에서 개최된다.
[사진=한국영상자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