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킬 미 나우'
● 아들은 장애가 있고, 아빠는 아프고, 관객은 고통스럽다
2010년 개봉된 <섹스 볼란티어>를 보신 분이 있는지. 조경덕 감독의 페이크다큐 스타일의 독립영화이다. 중증장애인의 성적 욕망을 해소시켜주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선 놀랍거나 마음이 불편해질지 모른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한 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안겨줄 논쟁적 연극이 한 편 무대에 올랐다.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Brad Fraser)가 2013년 쓴 <킬 미 나우>이다. 우리나라엔 2016년 초연 무대를 가진 뒤 꾸준히 재공연된 작품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조이는 중증장애인이다. 오늘도 싱글대디 제이크가 조이를 욕조에 담그고 몸을 씻겨준다. 어느 날 아들이 발기한 것을 보고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다. 성(性)에 막 눈을 뜬 지체장애 아들이라니. 아이는 누가 ‘괴물’같은 자신을 안아주겠냐고 말한다. 팔이 비틀어진 아들은 ‘자위’조차 못할 신세이다. 작가였지만 아들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모두 포기한 제이크의 고민은 깊어진다. 어느 날 자신마저 쓰러진다. 단순한 과로 정도로 생각했지만 심각한 상태이다.(‘척추관협착증’이란다) 제이크의 집을 자주 찾아오던 이모 트와일라, 제이크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애인 로빈, 그리고 언젠가부터 조이의 옆에서 친구가 되어 주는 라우디까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하던 이들에게도 고통은 점점 커진다. (라우디는 ‘태아알코올증후군’의 정신장애인이기도 하다)
<킬 미 나우>는 아들 조이의 아픔과 아버지 제이크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 그 고통을 한 가족이 온전히 뒤집어쓰기에는 세상이 너무 야속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친구이기에, 애인이기에 고통을 나누고, 슬픔을 반분한다. 물론 완전히 해소할 수도 없고, 갑자기 행복해질 수도 없을 것이다. 막 성에 눈을 뜬 청소년 장애인의 문제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가슴에 응어리를 쌓기 시작하더니 붕괴 직전으로 이끈다. ‘안락사’ 이야기까지 집어던지는 것이다.
연극 '킬 미 나우'
휠체어에 앉힌 채, 비틀린 손과 팔로 디지털 패드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조이. 육신의 고통에서 새어나오는 욕설은 관객은 바로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장애인인 아이가 커가면서 그 아빠는 “이제 우리 아이가 할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늘어났다”며 슬퍼한다. <킬 미 나우>는 작은 무대, 단출한 출연자들. 지극히 단순한 인간의 욕망을 다룬다. 단지, 그 인간이 일반적이지 않을 뿐이다.
극의 첫 장면이 아빠가 조이를 씻겨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몸이 불편한 조이가, 몸이 아픈 아빠를 씻겨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부자(父子)는 욕조에서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작가가 되려고 했던 아빠가 쓴 책.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고 쓰여 있다.
이 연극의 결말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아빠 제이크가 없는 조이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어쩌면 전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상황일 것이다. 하늘 아래, 사람들의 이야기 <킬 미 나우>는 배우들의 열연과, 어두운 객석에서 숨죽이며 마지막까지 이들의 결정과 선택을 지켜보며 속으로 흐느꼈을 관객이 함께 빚은 슬픔의 드라마이다. 욕조에는 노란 오리가 있고, 객석의 백조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연극 '킬 미 나우'
▶연극 〈킬 미 나우〉▶원작: 브래드 프레이저 ▶각색:지이선 ▶번역: 김승완 ▶연출: 오경택 ▶출연: 이석준,배수진(제이크) 최석진 김시유 이석준(조이) 전익령 이지현(로빈) 이진희 김지혜(트와일라) 허영손 곽다인(라우디) ▶연극열전10_여섯 번째 작품 ▶공연: 2025년 6월 6일~ 8월 17일/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