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노 가즈아키
소설 '13계단', '제노사이드', ‘6시간 후 너는 죽는다’로 국내에도 팬을 거느린 일본작가 다카노 가즈아키(高野和明)가 신작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지난 20일, 서울국제도서전 참석에 앞서 서울정동의 한 식당에서 한국 취재진을 만나 작품 세계를 밝혔다. 1964년 도쿄에서 태어난 다카노 가즈아키는 영화감독을 꿈꿨으며,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1년 『13계단』으로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안녕하세요. <13계단>이 출판된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저의 단편집이 한국에서 출간되어 감격스럽다. 한국독자가 제 작품을 즐겨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고 소감을 밝혔다.
Q.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다카노 가즈아키: “작년에 <6시간 후 너는 죽는다>가 한국에서 영화화 되면서 한국에 왔었다. 출판사에서 저의 미발표 단편들을 출판하고 싶다고 제안하기에 일본에서는 단편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일본에 돌아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놀라더라. 한국독자들이 제 작품을 이렇게 사랑해주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국 독자들과 만나면 왠지 처음 만나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Q.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를 책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이 말이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다카노 가즈아키: “일본에서는 ‘죽은 사람은 입이 없다’(死人に口なし)는 말이 있다. 죽은 사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무고한 죄를 입어도 해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들이 말을 하는’ 이야기이기에 관용구 표현을 바꿔 사용했다. 그 단편을 표제로 정한 것은 출판사의 조언에 따른 것이다.”
Q. 장편을 쓸 때 단편을 쓸 때 차이가 있는지.
▶다카노 가즈아키: “저에겐 길이만 다를 뿐 차이가 없다. 작품을 시작할 때는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재미가 있는지 만을 생각한다. 스토리가 재밌는 설정인가?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나머지는 따라온다. 수록된 작품들의 공통된 주제가 있다면 재미이다.“
Q. 그럼, 그 ‘재미’있는 스토리는 어떻게 얻는가.
▶다카노 가즈아키: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저도 잘 모른다. 아이디어가 언제 번뜩하고 나올지. 어느 날 아이디어 떠오르면 저만의 테크닉으로 이야기를 쓴다. 책을 쓸 때는 철저하게 준비한다. 장편의 경우라면 최소한 20권 이상, 상자 7개를 채울 정도로 조사한 적도 있다. 문헌 자료를 조사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전문가를 찾아간다. 그러면 대체로 해결이 된다. 그리고 제가 직접 무언가를 해보기도 한다. 댄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직접 춤을 춰보며 확인했다.”
Q. 수록된 작품들은 유령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실제 글을 쓸 때 기이한 일을 경험해 봤는지.
▶다카노 가즈아키: “글세~. 소설을 쓰다보면 우연의 일치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 수록된 <아마기 산장>은 숲속 깊은 곳의 한 비밀스러운 집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룬다. 그 작품을 쓸 때 소설의 배경이 된 그 장소에서 행방불명된 사람을 수색한다는 뉴스가 나오더라. 신기하지만 우연의 일치가 가끔 있다.”
Q. 글을 쓸 때 특별한 습관이나, 작가로서의 루틴이 있는지.
▶다카노 가즈아키: “주로 아침과 밤에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서 PC앞에서 일을 하고, 밤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뉴스 보고, 책 보고, 다시 밤에 집필한다. 글을 쓸 때는 단 것이 먹고 싶어진다. 다 쓰고 나면 생각이 없어지고.”
다카노 가즈아키
Q. 강력 사건을 다루면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다카노 가즈아키: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는 것은 어릴 때부터 미스터리를 좋아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보면 살인에 관련된 이야기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다. 마치 게임 하듯이 조사를 한다. 저도 그런 느낌으로 작품을 쓰고 싶다. 그런데 막상 쓰다보면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게 된다. 미스터리를 즐기는 것,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매력적이다. 사람들은 남 몰래 좋은 일 하는 사람 이야기보다 남 몰래 사람 죽이는 이야기에 더 반응을 보인다. 아마 독자의 마음에서는 위험한 일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이야기, 심리를 끌어올린다. 독자들이 읽고 싶은 장르를 쓰고 있는 것이다.“
Q. 작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은 어떤 것인가? 범인이 이상하다거나, 범죄가 독특하면?
▶다카노 가즈아키: “글을 쓰는 사람이 된 후 첫 번째 관심은 스토리이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하느냐이다. 캐릭터는 내가 그 사람이 되어 공감이 되게 하려고 한다. 사건의 진상이란 것은 열심히 노력하다가 간신히 해결하는 경우가 재밌다.”
Q. 공포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사람과 유령 중 어느 게 더 무서운지 같은.
▶다카노 가즈아키: “ [KN의 비극]을 카페에서 쓰고 있을 때였다. 책 내용에서처럼 누군가 제 앞에서 발작하고 쓰러졌었다. 그때 가장 공포스러웠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이건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해야할 듯 했다.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순간, 그 때가 무서운 순간이다. 유령과 인간. 실제 무서운 것은 인간이다. 실제 피해를 주는 것은 인간이기에. 유령과 인간은 선이 있다. 그 선을 넘는 것을 본능적으로 무서워하는 것이다. 친한 사람이 죽어 유령이 되었다면 만나고 싶다.”
Q. 일본에서는 이런 추리소설, 미스터리 분야가 발전한 것 같은데.
▶다카노 가즈아키: “저는 그런 생각을 안해 봤는데 해외독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제가 어릴 때 추리퀴즈 맞추는 것이 인기였다. 범행현장에서 발자국 지우는 법, 사람을 찌른 칼을 없애는 법 같은. 아마 한국에서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그런 추리책을 많이 낸다면 미래엔 그런 분야가 발전할 것 같다.” (하하)
Q. 한국의 추리,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다면?
▶다카노 가즈아키: “조예은의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었는데 이야기가 새롭고,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영화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순수한 소설로 기능해 좋았다.”
Q. 살인을 다룰 때, 초반에 범인을 밝히는 경우와 끝까지 숨기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게 작가로서 매력적인가.
▶다카노 가즈아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에서는 일찌감치 살인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미스터리 계에서는 이런 서술방식을 ‘도서’(倒敍)라고 한다. 그런 방식으로 미스터리 장르를 써보고 싶었다. 사이코패스가 나오면 그 심리를 기본으로 해서, 그 위에 이야기를 올린다. 그리고, 또 하나 현실세계에서는 보통 자신의 부족한 부분, 잘못된 일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 부정부패가 일어났다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당사자에게 어떤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작가로서 폭넓은 관점에서 가해자의 심리를 살펴본다.”
Q. 소설로 다루고 싶은 미제사건이 있다면?
▶다카노 가즈아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한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건에 관심이 있었다. DNA로 범인을 찾았다는 뉴스를 보고 안심했다. 일본에서는 연말 밤에 일가족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이 하나 있다. 아직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인데 범행방식이 상당히 비정상적이다. 왜 그랬을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 뭔가 구체적으로 다루고 싶은 것은 없다. 매일의 관심사가 달라지니. 하지만 살아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제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Q. 영화감독을 꿈꿨었고, 시나리오도 썼다. 창작자로서 영화와 소설의 차이가 있다면.
▶다카노 가즈아키: “영화는 외부에서 보는 것만 묘사할 수 있지 내면까지 들어갈 수는 없다. 소설은 인물의 내면에 대해 말로써 설명할 수 있다 다만 조심하지 않으면 설명으로만 가득하게 된다. 인물의 내면을 움직이는 장면이 있다면 장르에 맞게 묘사해야한다. 소설은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묘사만으로 충분히 박력 넘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다. 독자보다 앞서가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등장인물이 항상 같은 감정선상에 있도록 해야한다. 영화는 청각과 시각에 호소하고 소설은 오직 말로 승부를 건다. 오감으로 느낀 세계를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해서 독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글을 쓴다.”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는 작가로 남고 싶은지.
▶다카노 가즈아키: “수록된 <발소리>를 10년 지나 읽으면서 어떻게 내가 이런 걸 썼을까. 지금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다. 언제 완성될지는 예상을 못한다. 일본에서는 작가들이 나이가 들면 도덕적인 이야기, 훌륭한 이야기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려고 한다. 젊은 사람들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쓸 것이다. ‘이 사람은 왜 이런 바보 같은 이야기를 썼지?’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겠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쓴 아서 코난 도일을 좋아한다.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모험담처럼 펼쳐진다. 오락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는 다카노 가즈아키 작가의 취미는 “영화감상, 독서, 음악감상”이란다.
[사진=민음사 제공]

